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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와 돌멩이 Feb 06. 2024

그저 보여주기만 할 뿐

내면 작업 12


24.02.06




제주도의 어떤 학교에 입학한 상황이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나는 3인실에서 지내게 된다. 룸메들은 모두 낯선 남자들이다. 중간에 학교에 가기 위해 차를 렌탈해야 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꿈 속에서 나는 운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또 학교로 오가는 길이 차 없이는 무척 먼 거리라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 (중간 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이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예술가들이다. 약간 미국식 기숙사 생활? 같은 느낌으로, 이 기숙사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는 파티? 상황에서 이들이 예술가라는 걸 알아본다. 나는 그들에게서 '예술가'라는 판단을 하지만, 그에 어떤 감상이 느껴지는데 이를 표현하기가 참 쉽지 않다. 나 또한 예술가이지만 그다지 억지로 드러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이때의 감상을 그나마 묘사해 보자면, 예술가에 대한 어떤 선망이나 낭만이 일절 없는, 그저 '예술가'구나라는 느낌에 가깝다. 실제 현실과 비교했을 때,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에게서 모종의 환멸감을 느끼는 편인데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으로 예술가라고 느껴지기 않기 때문이다. 다만 오래된 예술 형태-특히 예전 인도 다큐에서 나타났던 예술가들-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상에 가깝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 사람은 이런 걸 하는군' 하는 식으로 생각한다. 이후 학교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간다. 범죄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지만 왜인지 '은행 털이' 같은 느낌의 중범죄 같다. 나는 도망치는 과정에서 이 범죄가 뉴스에 전면적으로 보도되지는 않을까 염려한다. 이 범죄의 파급력이 중대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동하면서 내가 직접 차를 운전하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나는 어딘가로 가기 위해 걷고 있었다. 어딘가를 가로지르기 위해 길을 걷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황량한 대학가나 번화가, 설비는 마쳤으나 유동 인구가 없는 듯한 깔끔한 길 등을 걸었다. 그러다가 어떤 한 또래 남자를 만나서 동행하다가 고등학교 친구 2명이 나타나 합류한다. 그들 3명은 따로 같이 살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집에 초대되는 장면이다. 우리는 어떤 마차? 전차? 같은 걸 탄 뒤 좌석에 앉아 농담을 주고받는다. 고등학교 친구 2명은 나와 무척 친숙하고, 남은 한 명은 나와는 초면이라 낯설고 어색하지만 이미 내 친구들과는 같이 사는 사람이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어떤 농담을 했는데 자기들이 사는 걸 가리키고 '우린 2부 리근데? ㅋㅋㅋㅋ'라고 빗대며 다같이 깔깔거렸다. 꿈 속에서 나는 내가 거주하던 상황이 1부 리그, 그러니까 친구들에 비하면 상위라는 걸 알아차린다. 이후 뭔가 전기 충격기로 장난치는 장면이 있었던 거 같다. 마치 위험한 장난감처럼, 나도 전기 충격기에 한 대 얻어맞았던 거 같다. 그러다가 낯선 친구가 나에게 간지럽히는 장난(유년 시절 때 아이들끼리 서로 하던 그런 장난처럼)을 하고, 나는 웃으면서 간지럼을 못견디겠다고 하지말라면서 힘을 주는데 남은 친구 둘이 내 사지를 붙들고 고문을 하듯 간지럽히기를 하다가 꿈에서 깬다.






내일은 어머니의 항암 치료가 끝난 최종 검사를 하러 가는 날이다. 오늘 하루는 책을 읽으며 보내려고 했는데, 무기력해서 거진 유튜브만 보게 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충주시 홍보맨을 하루종일 보게 됐다. 


 근래 들어 의식에 무의식이 흘러들어온 일상을 보내는 기분이다. 어머니 일을 도와드리다 가벼운 추돌 사고도 냈고, 요즘 왜인지 꿈을 많이 꾸게 된다. 최근 꿈 꾸는 걸 의식하다 보니 희미한 리듬이 포착되는 거 같아 지금의 이 상태가 달리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은 언어로 선명히 붙들고 싶지 않아 흘러가게 냅두고 있지만, 분명히 어떤 태도에 따라 꿈이 많아지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꿈 기록은 정말 쉽지 않다... 아직도 잠에서 깨면 의식적으로 '기록해야지'가 습관으로 떠오르지 않고, 꿈의 잔상들을 곱씹는 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잃게 되는 꿈들이 쌓인다. 위에 기록한 꿈은 오늘 아침에 꾼 꿈이다. 이전에 일상의 의식화를 단련시킨 이후로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의식으로 연결시킬 수 있게 되어선지, 꿈에서 나타나는 여러 이미지들이 대충 무얼 보여주고 있는지 난해한 편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가 무대로 나타난 건 최근에 '일본 여행'을 상상함과 동시에 현재 거주하는 곳에서 최대한 떨어진 + 바다로 둘러싸인 '섬' 등등이 조합된 결과라고 포착된다. 학교에 입학하는 건, 사실 내가 들추고 싶지 않은 나의 어떤 거부된 욕망이다. 이걸 충분히 의식하고는 있지만, 현실 검열로 억압했던 수 년의 세월이 뒷받침되어 간간히 꿈 속 무대로 나타나는 편이다. 


 차 운전은 확실히 본격적으로 차를 몰기 시작한 이후로 나타난 정황이다. 그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으나, 23년도에는 정말 많은 장면에서 차를 운전하고 그랬다. 처음 운전을 배울 때도, 면허를 따고 운전을 할 때도 줄곧 나는 무의식과 동조하며 운전을 했기 때문에 꿈에서 나타나는 건 무척 자연스럽다. 다만 이번에 처음으로 주행 중 교통사고를 냈던 건 최근 들어 분명 희미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느껴졌던 걸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결과다. 내가 느끼기론, 무의식과의 줄다리기에서 힘을 살짝 놓았던 게 패착이었다. 사고를 낸 이후 첫 운전을 할 때 나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평소 운전할 때 '거부했던 운전 스타일'로 최대한 방어 운전을 하며 경부를 탔다. 그때도 무의식과 같이 운전을 했기 때문에, 이번 꿈에서 운전을 하지 않고 '걷다가' 친구 3명, 그러니까 나의 다른 인격들을 다 같이 만난 뒤 그 친구들이 사는 곳이 '2부 리그'라고 했던 것이다. 1부, 2부 리그는 LCK에서 나온 용어를 나의 무의식이 갖다 쓴 건데, 스포츠의 '경쟁 구조'와 도로의 '속도', 그리고 나의 직관 태도가 상징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무의식이 보여주기 편한 걸로 일단 갖고와 보여준 것이다. 쉽게 말해, 나는 남들보다 한 수준 내려오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비로소 나의 인격들과 같은 방향으로 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직관'에 있어서 이 태도 수정이 이뤄진 거 같다. 비유하면, 조금 고삐를 잡았달까.


 고등학교 친구들과 범죄를 저지른 건,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는 겨울 방학 때 강제로 학교로 나가 자습을 하던 시기 친구들과 야자를 째고 학교 담을 넘어 도망가던 그때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뭐... 실제로 내 삶이 그랬다. 죄를 저질러 봤자 고작 학교 담을 넘어 피시방에 가서 친구들이랑 게임하는 거였다. 그게 꿈에서 '은행 털이' 급의 범죄였다(꿈에서 그런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걸로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만큼의 범죄'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죄를 저지른다'는 감각이 나의 현실 도덕 감수성에 그런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후 나타난 고등학교 친구 2명은, 사실 이때 학교 담을 넘을 때 있던 친구들은 아니지만(꿈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도 없었지만) 20대가 넘어서도 꾸준히 교류하던, 특히 철학과 수학을 같이 공부했던 친구 2명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에게 마음을 많이 썼었고, 그만큼 무의식화가 진행되었기에 자주 나의 '그림자' 혹은 다른 인격 기능으로 의인화되기도 한다. 무의식 입장에서 꿈을 통해 무언갈 보여주고자 할 때 써먹기 좋은 가면인 것이다.


 기숙사-예술가나 낯선 또래 남자 1명, 전기충격기, 간지럽힘 등은 내가 의식화할 수 있는 '연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저번 새끼 박쥐 만쥬도 그렇고, 최근 검은 뱀도 그렇고 내 삶에서 겪은 체험을 기반으로 연상할 수 없는 어떤 이미지가 나오면 그게 무얼 보여주고자 하는지 도무지 알아보지 못한다. 분명 '원형'이거나 '비합리적인' 연상으로 접근해야 될 터인데, 그건 지금 내 처지에 '무지의 영역'에 가까우므로 일단 보류할 뿐이다. 


 꿈 속에서 불편했던 순간은 죄를 짓고 도망갈 때 뿐, 다른 모든 상황에서는 모든 게 현실과 동일했다. 특히 어딘가로 가기 위해 걷기를 선택하며, 목적지로 방향만 설정할 뿐 구체적인 길은 '직접 걸어 확인한다'는 게 20대 초중반에 내가 취미로 갖던 '산책 태도'였다. 나는 사실 이전부터도 이런 방황 습관을 취미로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그게 버스 타기였다. 어느 날에는 그저 버스 맨 뒷자석에 담겨 종점까지 하염없이 타고 가는 걸 즐겼다. 당시에는 그게 '어떤 부담스러운 시간을 보내버리는' 걸로, 혹은 너무 피곤한데 버스에서는 그 피로를 풀 수 있어서 등등으로 느껴졌었다. 이런 일종의 태도가 20대 초중반에는 낯선 동네로 가 무작정 걷는 걸로 진화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정말, 정말 많이도 걸었다. 예를 들어 신촌에서 상도동까지 그냥 걸어 온다든가, 상수 한강에서 여의도-노량진까지 걷는다든가 등등. 또 실제로 산책을 빌미로 애초에 주말 하루를 통째로 잡고서 특정 지역을 종일 쏘다니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나에게 무척 인상 깊게 박혀 있다. 왜냐하면 그런 시간은 내가 무의식으로 보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실제 삶에서 내가 모종의 '편안함'이나 어떤 기이한 안락함을 느낄 때를, 나의 무의식은 꿈으로 재현해주고는 한다. 텅 빈 번화가나 사람 없는 정돈된 길 등이 그렇다. 이 부분에 대해선 분석할 수 있는 여지가 보이긴 하지만 아직 풀어내고 싶진 않다. 이건 '도시인'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어떤 무의식적 공명인데, 이성의 어휘로도 가닿을 수 있을 만큼 그 징후가 분명한 것들이기도 하다. 아마 일반인에게는 이런 설명이 좀 더 그럴듯할 거 같다. 북적북적한 쇼핑몰이나 공항, 서울역 같은 큰 대합실, 최근까지만 해도 인간들이 카페에서 누리는 '혼자만의 시간' 등등, 스타벅스가 브랜딩으로 밀고가는 '제3의 공간'이 바로 이 무의식이 공명하는 바로 그 '분위기'다. 이건 도시 출생들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고독한 편안함인데, 이에 대한 어휘는 아직 보급되지는 않고 있다. 여하간 이런 경험이 꿈에서 '텅 빈 도시의 안락함'으로 표현되는 건 무의식의 방식으로는 꽤 적절하고 또 유용하다.


 개인적으로는 자연물에 둘러싸일 때의 무의식화가 꿈에서는 아예 나타난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아무도 없는 야밤 산 속에서 빛 없이 혼자 등산을 할 때의 상황이라든가, 절대 누구도 다닐 거 같지 않은 가로등만 있는 길 너머의 암흑으로 걸어갈 때의 상황이라든가. 나는 이렇게 무의식의 공포가 전면화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걸 꽤 즐기는 편인데, 이상하게 꿈에서는 한 번도 재생된 적이 없는 거 같다. 이는 아마 융이 말해준 것처럼, 나의 의식으로 오롯이 받아들였기에 더 이상 무의식에서 드러나지 않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융은 꿈이 나침반이라고 했다. 나침반을 볼 줄 모르면, 꿈은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나침반을 볼 줄 모르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지금 희미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과연 융을 지팡이로 쓰고 있는가다. 사실 나는 지팡이 없이 걷는 걸 시도해야 할 때인데, 여전히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할 거라는 자신의 상태에 갇힌 건 아닐까 싶은 거다. 지팡이 없이 걷기 위해선, 지팡이 없이 걸어야 한다.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걷는 걸 위한답시고 여전히 지팡이를 붙들고 있으면, 난 아직 준비가 덜 됐어, 근육이 덜 붙었어, 지금 다치면 위험해 등등으로 여기고 있으면 결코 지팡이를 버릴 수 없다. 과연 내 상태는, 그런 걸까?


 기록을 따로 해두지는 않았지만, 근래 꿈을 꾸고 난 뒤 좀 더 내맡김을 배워야 한다는 직감이 있었다. 꿈은 그저 보여줄 뿐인데, 나는 꿈을 보고서 되려 '꿈'을 보려고 하고 있다. 꿈은 그저 보여줄 뿐이고, 거기서 본 걸 두고 나의 의식은 의식을 봐야 한다. 하지만 분명 믿어야 할 것은, '꿈을 봐 버렸다는 것', 꿈을 꾸기 전과 후는 다르다는 것. 이는 읽기와 같다. 읽어버린 이상,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사사키 아타루의 말마따나. 


 그저 보여주는 걸 그저 봐야 하는데, 여전히 내가 무언가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음이 곧 나의 불균형인 거 같다. 오늘의 무의식 투정도 그렇고, 최근 읽은 융의 책 속에서 부분적으로 발견되는 나의 진실들도 그렇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누군가 죄를 저질러 돌을 맞고 있을 때, 나도 돌을 맞아야 하는 것처럼 뜨끔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누명을 뒤집어쓸까 두려워하면서도, 오롯이 순결한 상태라는 건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인지 아주 조금이라도 죄의 부분집합이 있으면 그것을 보다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의식 상태가 보다 안정적인 순항을 - 그래도 태풍을 만나거나 표류를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 하고 있기 때문에 저런 '뜨끔'을 쓸데없는 신경증으로 확장시키지 않을 뿐이다. 양심이나 정직함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불필요한 신경증화를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 혹은 개성으로 여기는 이들이 세상에 꽤나 많다는 건 진실이다. 특히 예술가들 중에 그런 인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놀랍게도 성욕과 연결짓기도 한다. 인간이 참 이렇게 신비스럽고 대단한 생물이다. 창조력 하나 만큼은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그림자는 아직도 수두룩빽빽하다. 의식화 관련해서도 그렇고, 콤플렉스 관련해서도 그렇고, 다른 성향에 따른 개성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 줄다리기를 멈출 수 있으면, 분명 나의 방황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다른 차원으로 변할 거라는 기대가 있다. 이를 내가 선취해낼 수 있을까? 나의 나침반은 아직 그저 나일 뿐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 같다. 현실에서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러나, 분명히 다른. 그래서 내가 모르는 걸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는. 지팡이는 부러져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자신이 지팡이라는 것도 몰라야 한다. 그것을 사용하는 순간, 그건 나의 몸이니까. 일부니까. 그래서 지팡이를 아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몸이었던 지팡이가 '지팡이'가 되기 위해선, 분리되어야 한다. 내가 모르는 걸 알기 위해선, 안다고 나눈 걸 내려놓아야 한다. 이 연습이 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하게 될까, 싶다. 때로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참 신비로워지고, 이상해지는 거 같다. 다만 나는 그런 방식으로 창조력을 쓰고 싶지 않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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