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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회고

by 사과와 돌멩이


키보드를 바꿔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그래봤자 한 달이지만... 한 달 늦은 회고를 이제야 쓴다.


2024년은 구름판같은 해였다. 정신의 열등함에 직접 몸을 던져보기도 하고, 그래서 내 정신의 약점도 다룰 수 있게 됐다. 융을 읽은 뒤로 자기 관찰 능력을 천천히 갈고 닦았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매일 조금씩 무언가를 바꾸고 적용하는데, 서서히 정신 자정이 돌아오는 기분이다. 예전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진전이다. 다만 본격적인 '머리'는 아직 쓰지 않고 있다. 시스템을 의식하며 일종의 지도를 넓히는 중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키보드를 의식하고 있어서 글을 피부처럼 쓰지는 못하고 있다. 손에 익기까지 얼마나 걸릴 지 감이 없다. 한 글자 한 글자 의식하며 쓰는 기분이라 마치 어릴 때 처음 붓글씨를 배울 때라든지 연필로 글자를 그릴 때라든지 같아 낯설기도 익기도 하다. 그래도 이 속도가 좋다. 반갑고 정성스러운 기분이 든다.


24년은 오래 묵은 애증이 해소되는 해이기도 하다. 9년이나 쩔쩔매던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시는 부지런하지 못했고 시적 기술도 늘지 않았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그래도 정신의 뿌리가 다시금 되살아났으니 삶으로 보면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나의 2024년은 약 2월 중순부터였는데, 어머니의 항암이 그때 끝났기 때문이다. 3월부터 약 8월까지 두고 두고 써먹을 열등함 발달의 시간을 의도치 않게 가졌고, 이후로는 시를 쓰거나 책을 읽었다.


2024년의 책은 당연하게도 O.S.Wauchope의 'Deviation into Sense'다. 워쵸프가 있기에 야스나가 선생이 있고, 그의 책은 나에게 실로 통쾌한 구멍을 내줬다. 가능하면 한국인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 외에 나카이 선생이라던지 야스나가 선생 그리고 기무라 빈 선생 등 일본 정신병리 학자 세 명이 내게 인상깊다.


여담이지만 이전부터 인간 정신의 이해도를 확장시켰으나 융을 읽고 워쵸프를 읽으니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더 멀어진 기분을 자주 느끼곤 했다. 그런 친구나 사람과 말을 조금이라도 주고 받으면(혹은 원치 않게 인식하게 되면) 나는 익숙하고도 거북한 감정을 느끼곤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긴 한가 보다. 시대가 아무리 요구한다 해도, 사회가 아무리 자기 자신으로 향하도록 한다 해도 본성과도 같은 (과거의 '영혼'이었던) 정신은 문자 그대로 진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여하간 1년 1년 흐를수록 또래 인간은 원래 그랬지만 점점 더 섞이고 싶지 않아 진다. 더불어든 느슨한 익명개인주의든 이들과 한 문화에서, 지구에서 같이 산다는 의미를 갖기란 역시 쉽지 않다. 지금까지 잘 해온 것으로는 이제 역부족인 기분이다. 내 정신이 변했기에 대처도 발달시킬 필요가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잘 변하지 않지만 변하는 사람들, 변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배우는 감정이 있다. 이는 매달린 쇠구슬 같아서 붙잡고 있는 힘은 초연이나 체념이고, 몸부림치는 쇠구슬은 바로 생명이다.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다가도 가까워지는 운동 속에서 난 이전보다 덜 혼란스럽고 덜 괴롭다. 그렇지만 인간들의 변태적 가학성 혹은 카타르시스로 포장하는 관음증은 무리다....


나라는 성향이 있어 기울게 되는 마음의 순간들이 이전보다 잘 관찰되는 건 분명 성장의 지표이기도 하다. 또래 사람들이나 일반 사람들에게 점점 흥미와 관심이 떨어지는 건 나로서 최선을 다 한 결과라 별 감정은 없다. 2024년까지 삶을 살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인간 정신의 본질이 '구도'라는 것이다. 나는 이걸 옛 사람들이 영혼이라 부른 걸 알아차린다. 영혼이 사라진 사회, 시대, 사람들의 세상은 벌써 오래전 나온 한탄이다. 앞으로 살면서 그런 구도자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또래 중에선 정말 본 적이 없어 기다리고만 있다. 만나면 반갑다 못해 그리울 것이다. 도시에 사는 구도자라니.


2023년에 마음먹은 대로 책은 많이 읽지 않았다.


분석 심리학 강의 - C. G. 융

상징과 리비도 - C. G. 융

내면작업 - 로버트 A. 존슨

칼 융 분석 심리학 - C. G. 융

인간과 상징 - C. G. 융 외 (융과 프란츠 챕터만)

융합의 신비 - C. G. 융

전환시대의 문명 - C. G. 융

수행성의 미학 - 에리카 피셔-리히테 (피드백 고리 자동 형성성 발견)

꿈 분석 - C. G. 융

꿈 해석 - C. G. 융

앎의 나무 - 움베르또 마뚜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

프로필 사회 - 한스 게오르크 묄러 외 1

무질서의 효용 - 리처드 세넷

디지털 졸업장 공장 - 데이비드 F. 노블

관찰자의 기술 - 조나단 크래리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 - 폴 오닐

모던 타임스 - 자크 랑시에르

축제의 사회사 - 김홍열

매혹과 열광 - 한스 U. 굼브레히트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 - 존 어리

기술과 전향 - 마르틴 하이데거

감정적 자아 - 데버러 럽턴

모든 인간은 망상한다 - 마츠모토 타쿠야

공간적 사유 - 마이크 크랭, 나이절 스리프트(개설-비평)

공간을 위하여 - 도린 매시(피상성/즉시성)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 마뉴엘 카스텔 (네트워크 은유는 안나오고, 역사적 인식의 재료로는 재밌을 듯)

도시와 창조계급 - 리처드 플로리다 (사물이 된 창조자-도시 간 관계)

방송의 세계화와 문화정체성 - 데이비드 몰리 (추후 스크린-정체성 재독)

자아와 방어 기제 - 안나 프로이트

복잡계 개론 - 윤영수, 채승병

Abstraction and Empathy - Wilhelm Worringer

Touching Feeling - Eve Kosofsky Sedgwick (Chapter 4)

<징후와 색인하는 인간>을 기초로 하는 인간 형성론 - 키쿠치 소타

시간과 자기 - 기무라 빈

사람과 사람 사이 - 기무라 빈(2장)

징후 기억 외상 - 나카이 히사오(1부)

Deviation into Sense - O.S.Wauchope

정신과 의사의 사고방식 - 안영호

자아 장애 설명: 야스나가의 "팬텀 공간 이론"을 통한 정신분열증 이해 - 츠토무 쿠마자키 외 1

따돌림이 있는 세계에 사는 그대에게 - 나카이 히사오

팬텀 공간론 - 안영호

팬텀 공간론의 발전 - 안영호

정신의 기하학 - 안영호





상반기에 읽은 책은 정말 까마득하다. 1년이 아니라 3년 5년 된 거 같다. 워낙 모드 전환을 자주 해서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근래 책을 하나도 읽지 않고 있어서 그런지 몹시 멀게만 느껴진다. 12월 중순까지는 그래도 야스나가 선생 책을 정리했는데 먼 일 같다. 그래서인지 별 할 말이 안 떠오른다.


올해는 시집을 완성하고 싶다. 거창해서 무리 같다. 책은 당장 읽고 싶은 게 없지만 일단 집에 있는 거 하나씩 볼 예정이다. 근래는 노화에 마음을 기울이는 중이다. 먹는 것부터 일상 생활 속 습관들을 하나 하나 교정 중이다. 2025년은 워쵸프의 가르침을 체화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일반 사람들을 더 이상 나의 영혼으로 맞댈 필요가 없어졌기에 가능하면 정신 여정에 진전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12월 말부터 꿈에 변화가 있었다. 일단 아니마가 두 명씩 나타나고 있다. 전까지는 그래도 한 명과 동행하거나 뭔가 관계가 생기곤 했는데 이제는 둘과 함께다. 그리고 이전까지 꿈의 반복 중 하나였던 막힘이 이제는 풀리고 다음으로 넘어가 두 번째 막힘에 당도하는 흐름을 보인다. 다만 무의식 앞에서의 방어형 공격성은 여전하다. 저번주였나. 어떤 배를 타고 물을 건너는 상황이었는데 배가 물에 잠기자 난 서둘러 배를 벗어나 그 배가 다시 물을 빼고 뜨도록 재시도를 하리란 걸 알아서 한 암초로 몸을 향했는데 처음에는 피라냐 같은 물고기 두 마리가 달려들어 본능적으로 그 물고기를 죽여야 한다고 느껴 손으로 잡아 죽였더니 다음에는 네 마리가 달려드는 꿈이었다. 환상에서는 내 몸을 먹도록 내어주는 게 가능하지만 꿈에서는 그런 내려놓음이 아직인 모양이다. 아마 의식의 마지막 저항선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12월 말에는 공포 꿈도 꾸었다. 이런 꿈은 진짜 오랜만인데, 나는 정신과 우호적으로 지내기 시작한 뒤로 무서움이란 감정을 꿈에서 거의 느끼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무대는 노량진이었고 우리는 한 파티처럼 그룹이었다. 우리 목적은 퇴마로 귀신을 정화하는 일이었는데 중간중간 흥미로운 스릴 장면이 나왔다. 여튼 꿈 마지막에 나는 건물 벽을 오르다 나만 입장되지 못하고 그만 떨어져 죽는 꿈이었다. 그 전에는 저번에 나에게 열등함을 쏟던 친구가 나오더니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를 식인하는 꿈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숲속 미로같은 곳에서 네명이서 네 곳의 문제를 푸는? 꿈도 있었다. 가끔 할아버지가 나온다. 아, 일본은 꽤 자주 나온다. 나와 일본은 뭔가 있는 게 분명하지만 지금으로써 알 길은 없다.


나이를 먹어가니 점점 세속과 무관해지는 거 같은 기분이 드는 2024년이다. 지금 내 상태가 그런 거 같다. 이전에는 그래도 몸을 기울여 섞일려고 했는데 이제는 이만하면 충분해 다시 돌아가려는 느낌이다.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결국 정신 중심이 돈이라는 인상을 받는 일이 잦다. 그렇지 않은 일반 사람을 만나본 지 너무 오래된 기분이다. 정신 불균형이나 자신의 열등함에 블라인드가 쳐진 사람은 태반이다. 저번 달 애정하는 친구를 몇 년만에 봤는데, 이 친구는 그래도 나와 대화를 해 줄 수 있는 친구로 여전했다. 삶이 버거워 정신이 꽤 망가졌지만 그래도 영혼이 남아 있단 걸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이 점점 정화되서 그런지 맑은 정신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밖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세상으로 내 에로스가 흘러도 되구나, 느끼지 않을까. 무의식도 분명 느끼고 즉각 뭔가 보여줄 것이다.


매해 회고를 쓰면서 느꼈었지만 올해는 뭔가 느낌이 좋다. 세상 만사는 그렇지 않을 것만 같아 별개지만 내 정신은 궤도에 오른 기분이다. 나라는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게 올해 일상 실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순조로워서 한 해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시집을 만들면 더할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감정을 태어나 처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꽤 오래동안 신체를 젊음으로 굴렸으니 남은 삶은 의식으로 굴릴 차례다. 재작년부터 식단을 시작하고 이제는 보다 발전해서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나의 현실에서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하나 개발 중이다. 담배는 좀 더 걸릴 것 같다. 아직 퍼즐 조각이 부족한 모양이다. 기후위기는..... 일단 내 정신은 가능한 최선을 찾는 중이다. 19년도에 비하면 다다음 단계에 와 있지만 노력 중이다. 이미 피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무얼 할지는 솔직히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주어진 생명을 소중히 대하는 정신들은 결국 할 일을 하루 하루 하고 있을 것이다. 내 본분 그러니까 나의 1인분은 분명해서 나 또한 수행 중이다. 빚진 자들이 나날이 늘어만 갈 때 결국 파산의 모습은 하나의 얼굴일 것이다. 21세기 도시에 사는 구도자라. 참 이상한 형용이다. 어디가서 말 못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아서이기도 하지만 굳이라서. 주어진 생명은 공평하다고 할 수 있으니 제각각 정신으로 살다보면 알 수도 있겠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동아줄처럼 '너무 멀리 왔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난 가야한다는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일까. 내 정신은 잠잠하다. 2025년은 세계와 안 맞게 믿음으로 살 것이다. 나의 사적 관계부터 나 자신까지. 그 너머는 내 페르소나 서비스로도 벅차다. 영혼은 영혼에게. 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면역이 강해진 정신은 어떤 일상을 살까나. 궁금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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