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작업 33
25.07.29
꿈 #1
중학교 때 알게 된 한 친구를 해외에서 만났다. 이곳은 이국적인 어떤 곳인데 난 곧 이 곳을 떠나기로 했다. 오늘이 그 날이다. 이 친구는 여기서 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 전에 뭔가 만났던 기억도 난다. 그 후 난 집으로 돌아와 거리를 산책했다. 그러다 어떻게 해서 다시 이 친구의 가게에 도착했다. 이 친구는 자신의 여자 동생에게 선물을 한다며 어떤 옷을 내게 보여줬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여기가 카페이자 책방이란 걸 알게 된다. 그때 한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이 남자는 책방에 들어와서 뭔가 찾더니 날 알아보며 ‘여기가 그 책방이죠?’ 물었다. 난 예전에 책방 운영을 한 적이 있었고, 그 책방인 줄 알고 찾아온 것 같았다. 난 그때 일했던 건 맞지만 여긴 다른 책방이라고 말해줬고, 그 남자는 어떤 책을 사서 떠났다. 그 후 갑자기 막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카페도 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막 들어와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직원들도 갑자기 출근을 했다. 그 직원 중 한 명은 현실에서 내 친구의 아내로, 예전에 내 친구와 같이 몇 번 놀았던 기억이 있던 여자였다. 손님이 너무 많고 카페가 뭔가 어수선했다. 일하는 직원들이 뭔가 일이 서툴러 보였다. 난 일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한 뒤 서둘러 주문 들어온 거 언제 나오냐고 물었고, 나온 음료를 보니 뭔가 이상했다. 무슨 작고 낮은 접시, 거의 컵 받침 같은 접시에 음료가 표면장력처럼 찔끔 담겨져 있는 것이었다. 총 3잔이었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얼그레이 라떼? 그리고 뭔가 이것저것 있었다. 난 빨리 서빙을 하는데 이게 좀만 움직여도 곧 넘칠 거 같아 불안했다. 테이블에는 여자 3명이 있었고 난 음료를 주며 친절하게 응대를 했다. 또 내가 보기에도 뭔가 음료 양이 터무니없이 적어서 분명 실망할 거라 생각이 들었고, 또 서빙하다 음료를 조금 흘리고 말았다. 난 여자들에게 부족하시면 더 가져다 드린다고, 마치 내가 주인인 것처럼 말했다. 내가 핸들링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음료를 가져다 주고 돌아오니 갑자기 친구가 날 불렀다. 그리고는 뭔가 줄 게 있다며 옆 공간으로 날 데리고 갔다. 그 곳에서 나에게 한 열쇠를 줬다. 그리고는 앞에 있는 문을 열어보라고 했다. 난 나에게 주는 선물인가 속으로 생각했고, 이 열쇠로 이 문을 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열쇠를 넣으니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한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화장실 타일로 된 공간이 확 드러났다. 샤워기도 있었기에 여기가 화장실인거라 생각했다. 더 들어가니 안 쪽으로 같은 타일의 빈 공간이 나타났다. 하늘색의 차가운 공간. 난 속으로 ‘아 이 공간을 내가 쓰라고 선물해 준 건가? 앞으로 기간 동안 나 시 쓰는데 쓰라고?’라고 생각하며 친구에게 농담으로 “야, 여기가 이렇게 넓으니 카페가 좁지! 난 왜 카페가 좁나 했네!”라고 말했다.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꿈에서 깼다.
꿈 #2
어떤 영화를 보는 장면이 있었다. 노팅헐 선세스? 정확한 제목이 아니다. 오래된 낯선 영화를 보게 됐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난 한 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뭔가 창 너머로 한 여자 아이를 본다. 이 여자 아이에게 뭔가 손짓을 했던 거 같다. 난 초능력이 있었다. 멀리서 손으로 건드릴 수 있는 능력이었다. 내가 건물 밖에서 이 능력으로 창문을 닫았던 거 같다. 그 후 학교 안에 들어가니 교실에서 이 여자 아이를 만났다. 나의 학생이었던 거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였다. 이 여자 아이는 무척 특별한 아이였다. 이 아이도 초능력이 있었는데 뭔가 마음을 먹으면 뜻대로 되는 그런 능력이었다. 난 이 여자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줬다. 그러다 이 여자아이가 교실 뒤 편에 있는 어떤 장치에 지문 인증을 하며 뭔가 등록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이건 까먹었다. 그 후 같은 교실에 있던 보다 고학년 여자 아이가 나에게 뭘 물었다. 난 속으로 아는 게 없어 자신이 없었다. 근데 뭔가 가르쳐야 되는 입장이다 보니 최대한 아는 걸 알려주려 했고, 그런 식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그러다 정신분열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는 문장이 나오자 난 이 단어는 오늘날 자주 쓰이니 외우면 좋다는 말을 했다. 그후 treat라는 단어의 용법을 보다 내가 이거 ‘다루다’는 뜻도 있을 거야,라고 여자 학생에게 알려줬고 그 여자 학생은 찾아보더니 그런 의미가 있다며 나에게 ‘오~ 샘 잘 아네요’라고 말했다. 그런 대화를 하다 꿈에서 깼다.
한동안 꿈도 잘 기억나지 않고 기록도 하지 않았는데 엊그제 뭔가 기억해야 할 꿈을 꾼 뒤 다음날 또 다른 꿈을 꿨다. 의식의 주기가 굴러가나 싶었는데, 한 3주? 정도 지나니 다시 무의식이 기지개를 펴는 듯 뭔가 진행시켰다. 그동안 딱히 이렇다할 의식적 진척이 없었기에 뭔가 쓸만한 내용이 막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1인분의 몫으로 살고 있을 따름이었다.
먹고 사는 일에 시 작업을 다시 뒤로 미뤘던 마음의 부채감이 이전보다 좀 덜 무겁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빚이 말끔히 청산된 건 아니었다. 여전히 나의 불안은 이 창작에 기생하며 하루하루 곰팡이처럼 증식하고 산다. 이 동거생활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이젠 지겹기도 해서 딱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데, 어쨌든 쓰는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또 쓰지 않는다고 해서 쓰지 않지만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즉 하루의 정신 중 쓰는 데 1할도 관여하고 있지 않다. 드문드문 영감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세를 잡고 글로 만들지도 않는다. 짧막한 메모를 남겨둘 뿐이다. 미래의 나에게, 언젠가의 나에게 보내는 그런 불시착 우편 같은.
나의 무의식은 내게 준비되었다고 말해준다. 이제 개시하라고 말이다. 나도 알아...라고 속으로 속삭여보지만 정말 아는 건 아니다. 정신의 예열을 다르게 하고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쓰고 싶은데 쓰지 않는 그 이격에 끼여 삶을 허탕치는 데 머물고 있는 건 아니다. 뭐. 맞기도 하다. 나의 변화랄까, 그런 건 드러나지 않게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는 걸 내가 알아볼 수 있다는 건 정확한 사실이다. 난 나의 정신적 공간을 나의 의식으로 다룰 수 있게 된지 좀 됐다.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또 그 다룬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란 참 까다롭지만, 적어도 내 무의식은 내게 말해준다. 그걸 보고 나도 동기화를 한다. 내가 알고 있던 걸 무의식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무의식에게서 일종의 허락-승인-통과 같은 느낌을 받으면 좀더 확신이 생긴다. 그때는 오롯이 내것이 된 기분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친구가 준 공간은 그런 기분이었다.
이 친구는 내가 중학교 때 학원에서 알게 된 한 친구다. 내 삶에 영향을 끼친 친구 중 한 명으로, 이 친구는 내게 책과 어른의 이미지를 주었다. 결혼식 때 본 뒤로는 막 연락하고 지내지는 않지만, 내가 여지껏 책을 읽고 사는 삶에 일종의 이정표가 되어줬던 친구가 이 친구였다. 성숙함과 어른스러움을 당시 중학교 2학년 때 내게 심어줬다. 친구 집에 있던 책 동방견문록은 내게 뭔가 상징적인 책 중 하나다. 물론 여지껏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또 지금 의식하는 건 좀 시기상조라고 생각되지만, 왠지 여자 아니마가 3명 무리로 나올 때가 꽤 잦다. 이전까지는 2명이었는데 어느 새 3명으로 늘었다. 단지 이 3명 여자 무리와는 별다른 관계가 발생하지 않는다. 즉 이렇다할 대화를 막 한다던지 꿈의 진행에 있어 중요한 역할로 나타난다던지 등의 관계가 발생하지 않고 약간 들러리 식으로 나타난다. 지켜보는? 근데 그 상황은 늘 화기애애하거나 좋거나 그렇다. 두 번째 아니마와의 관계가 어떻게 굴러간 건지는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 아, 7월 8일에 꿨던 꿈에서도 역시 아니마가 두 명 나왔는데 이 둘과 같이 여행을 갈까 고민하던 내용이 있었다. 물론 꿈에서 가지는 못했다. 기록을 보니 그 전날인 7월 7일에는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 전인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 꿈은 뒤로 갈수록 나의 치료자적 면모가 발휘되는 꿈이었다. 여튼 꿈에서의 나는 뭔가 막 하기는 하는데, 아직 현실과의 동기화를 그렇게 첨예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의식의 주기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의식을 막 쓰고 있는 나날을 보내는 건 아니다. 그래서 뭐 할 말이 없다. 꿈 기록용으로 이번 짧은 메모를 남겨 둔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나의 것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 그것이 내 것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이게 뭘 말하는지 좀 알겠다. 머리로만 알던 '비-자아'를 패턴적으로 말해 현실에서의 부분으로 활용하는 게 뭘 의미하는지 좀 알 거 같다. 이걸 몰라도 내가 나의 능력을 써먹을 수 있게 된 건 고무적인 일이지만, 방금 꿈을 다시 보며 알게 된 걸로 좀 더 분명해진 기분이다.
나의 무의식은 분명 개시 신호를 줬다. 아마 내 생애 처음으로 난 내 무의식보다 뒤쳐지는 방향을 가려고 하는 듯 하다. 늘 의식으로 앞지르려 했으니 이번엔 그저 세상만사 태도로 좀 지켜볼 심산이다. 기록은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