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작업 34
25.10.09
무의식이 뭔가 진행시키고 있다. 이 '뭔가'는 내가 꿈을 기술할 때 자연스럽게 지시되는 그 뭔가로 느낌이 참 묘하다. 의식으로 글을 쓸 때는 '뭔가'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데, 꿈에 있어서는 말버릇처럼 계속 나오는 게 신기하고도 의아하다.
지금 이 글은 직관에 맡겨 쓰게 됐다. 그간 반복된 나의 상징 세계에 대한 정리를 한 번 해 볼까 한다. 몇 가지 변화를 좀 적어두자면, 8월 말? 아니면 9월 중순부터 나의 환상 이미지는 색+형상이라는 표상들이 아닌 사람 얼굴의 집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난 이걸 '집단 정신을 향한 준비'로 받아들였다. 또 꿈에서는 본격적으로 '남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전 꿈에서도 남자는 나타났고, 늘 나와 어떤 관계를 맺었지만 이번 무의식 주기부터는 뭔가 다르다. 이건 아니마와의 다음 통합을 위한 다음 단계로 느껴진다.
사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난 집단 정신으로부터 늘 거리를 두고 살았고 당연히 그런 집단 정신에 스스로 동화되는 걸 경계하고 정동을 일삼아 처리해 왔다. 지금도 이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 무의식은 이제 준비가 됐다고 알려주니, 어쩔 수 없다. 집단 정신... 이는 나의 환상 이미지가 왜 사람 얼굴의 집합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지와 접지를 형성하는 듯 하다. 슬슬, 바깥으로 나갈 준비가 된 거 같다.
꿈에서 내가 무의식 시공간에 들어가면 그곳은 늘 폐쇄된 공간으로 나타났다. 난 일반적으로 메타 인지라 부르는 '자기 관찰' 능력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꿈에서 나의 무의식 경계를 인식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이 능력이 덜 발달되었다면 아마 이 경계들이 인식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능력은 자신의 '의식'이 어디까지이고 또 그 너머에 대한 유연한 태도 없이는 지속될 수 없는 자세를 빚어낸다. 이로 인해 꿈에서 어떤 무의식 공간으로 갔을 때 그곳에서 벗어나는 힘과 만나 경계를 파악하는 체험으로 나타나는 거 같다.
이 경계가 선명하게 드러난 가장 최근의 꿈은 몇 개 있지만, 굳이 순서를 잡으면 '런지 총' 꿈이다. 이때 나는 폭력적 아니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벽을 타고 오르다 천장까지 막혀 있는 경계를 확인한다. 당시 그 꿈에서 내가 벗어나는 길은 이 폭력적인 아니마에 종속된 남자들을 게이트로 통과하는 길 뿐이었다. 그 결과는 나의 죽음이었다. 여태 기억나는 꿈 전체를 통틀어 내가 꿈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꿈은 몇 차례 있었다. 기억나는 꿈 중 가장 최초의 꿈은 군대 시절 꿨던 꿈으로, 내 목이 잘려 나가떨어진 목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나오는 감촉과 동시에 목이 잘린 내 몸을 바닥에서 바라보다 서서히 죽는 꿈이다. 난 꿈에서 죽음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다가도 최후에 당도했을 때는 늘 죽음을 수용했다. 즉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런 에고의 죽음은 깨고 난 이후 내 현실 정신에 있어 어떤 '죽음-부활'의 감각을 활성화시킨다. 자기로부터의 변용은 늘 이런 자신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에고의 죽음과 폐쇄된 무의식 세계로의 진입은 뭔가 수상한 상관이 있어 보였다.
'폐쇄된 공간'. 이 공간은 무의식 세계로, 들어갈 때는 인간 초월적 힘을 발휘해야 했다. 혹은 그 힘을 내가 발휘하지 못할 때는 이미 그 곳에 당도해 있지만 내 힘으로 그 세계를 들어간 게 아니라서인지 늘 위협적인 체험을 한다. 즉 무의식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도망치고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힘은 막대하다. 난 아직 이 세계로부터 안전히 드나들지 못한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꿈 중 아니마들이 내게 이 세계로 자발적 이동을 제안하고 도와주고 요청하는 꿈은 몇 번 있었다. 당장 기억나는 꿈만 해도 4개다. 이 세계는 왠지 반복적으로 꿈에서 '러시아' 혹은 '추운 곳'으로 나타난다. 참 신기한 상징이다. 내 꿈에서 나타나는 이국은 크게 두 곳이다. 하나는 러시아, 다른 하나는 일본이다. 일본은 내 무의식에 있어 명실공히 아니마의 세계다. 일본은 내게 아니마들이 날 도와주러 소환되는 세계다. 거대한 아니마의 분신의식 꿈은 이 세계의 한 진실을 잠깐이라도 보여준 꿈이 아니었을까. 내 꿈에서 대체로 일본은 여자들이 나타나 날 돕고 보호해준다. 반면 러시아로의 초대도 하는데, 난 아직 그곳에 갈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러시아는 북쪽, 추운 지방, 어두운 세계, 통찰의 검정, 정신의 혹한 등으로 내 꿈에서 변주된다. 이 세계로의 진입을 가장 멀리까지 한 것은 고작 주변부 뿐이었다. 예전 꿈에서 그 중심부에 무엇이 있는지 나타난 적이 있다. 그곳 중심부는 나선형의 소금 갱도를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성역이었다. 당시 나는 음식 먹느라 본격적인 이동조차 하지 않았다.
음식 또한 내 꿈의 단골 주제다. 난 꿈에서 음식을 자주 먹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해 음식을 차리고 구하고 마련한다. 만약 아니마가 뭘 먹고 싶다고 하면 난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음식을 구하는 데 온 정신을 쏟는다. 이 내용들은 모두 꿈에서의 나이므로 내 의식으로 꾸며낼 수 없는 내 정신의 뿌리다. 현실의 나는 그저 이런 무의식에서 나타나는 내 모습을 '사회문화적으로' 바꿔 행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충실히 말이다. 만약 내 아니마가 음식 준비에 힘이 부칠 때는 늘 나의 모성들이 집단으로 나타나 도와준다. 일본에서도 찾아와 요리를 해준다. 내 꿈에서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은 늘 다정하고 날 보호해주고 베풀어준다. 나이든 남자가 열등하게 나타난 적은 있어도 나이든 여자가 열등하게 나타난 적은 아예 없을 정도다. 내 꿈에서 나이든 여자들은 늘 지혜롭고 따숩고 음식을 해준다. 이 상징이 의미하는 바는 내게 단순하다. 현실의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일의 크기와 강도가 매우 클 수 있는 능력이다. 주로 음식 먹이는 걸로 이 능력을 1차적으로 쓴다. 사실 나라는 인간의 인격 성장은 바로 이 여성성의 그릇으로 말미암은 게 아닐까 추측한다. 내 정신의 뒷배인 그랜드 마들은 무척 든든하고 또 늘 날 도와준다.
다만 나의 두 번째 아니마는 다른 얘기다. 올해 상반기까지 내 정신의 화두는 이 두 번째 아니마였다. 이 아니마는 첫 번째 아니마와 다르게 감정적 공격을 일삼는, 내게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여자였다. 난 이 여성성을 통합하기 위해 의식적으로도 노력하고 또 내 무의식도 이를 위해 준비해왔다. 그러자 점차 꿈에서 이 두 번째 아니마를 보살피고 지켜주고 관계를 맺는 체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만 최근에 이르러서야 알아차린 게 있다. 이 두 번째 아니마와의 통합을 위해 이제는 폭력적인 남성성을 다뤄야 한다. 현재 이 문제가 나의 화두다.
이미 내 정신의 1차적인 통합을 완수했기 때문에 날 돕는 꿈 속의 남자와 여자가 늘 나타난다. 8월 말부터인가 내 꿈은 다른 진행을 내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양상은 대체로 내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진행시키는 정황이다. 이전까지는 도움을 받아 뭔가를 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진행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특히 꿈 기록을 거의 안한 9월 꿈들이 대체로 그랬다. 꿈에서 내가 뭔가 진행하고 주도적으로 하는 내용은 대체로 누군가를 돕고 이끌고 치료하는 내용이다. 내가 왜 그런 능력을 갖고 발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할 수 있으니까 한다. 즉 꿈에서의 난 속으로 '이걸 도와야 해'라거나 '이걸 알려야 해'라거나 '내가 해줄 수 있어'라는 식의 판단과 더불어 행동으로 이어진다. 실천한다. 그래서 뭔가가 나아진다. 현실의 나는 이런 전환을 보고서는 이런 생각을 한다. '밑작업이 끝났구나, 이제 움직일 때가 왔구나'.
중요한 건 그 방향성이 서서히 '집단'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집단이 내게 러시아와의 어떤 관련이 있는 듯하다. 아래는 8월 17일에 꾼 신비한 꿈이다.
25.08.17
밤 꿈
집 근처 뒤쪽 공터 같은 어떤 비밀스러운 장소에 비밀스러운 탑이 있었다. 마치 게임 속 화면처럼 그 곳은 모험하는 곳이었고, 정말 게임 화면처럼 어떤 사각형의 폐쇄된 느낌이었다. 게임 화면은 만들어진 공간이고 끝이 있다. 마치 그런 공간이었다. 이곳은 내게 모험의 장소 같았다. 나와 여자친구는 이 모험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문득 원래 가던 루트가 아니라 위로 쭉 올라가면 뭔가 새로운 길이 나오지 않을까 호기심에 혼자 거기로 가 위로 막 날아가봤다. 여기서 나는 현실이지만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핸드폰 같은 기기로 마치 영화 아이언맨의 비행 방식처럼 손바닥을 아래로 향해 어떤 추진력을 받아 균형을 이룬 채 날아가는 식의 능력이었다. 난 이 능력으로 그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위로 끝까지 가보려 했다. 더 이상 위로 갈 수 없는 지점까지 오자 왼쪽으로 다시 끝까지 가다보니 모르던 비밀 장소가 나타났다. 난 모험을 하듯 흥미로워하며 이 장소로 갔더니 게임에서 다음 맵으로 이동되는 포탈처럼 어떤 다른 장소로 이동됐다.
그곳은 낯설지만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듯한 새로운 미지의 세계였다. 여기로 오기 전에 난 여자친구에게 핸드폰 문자로 여태 가 본적 없는 길로 한번 가보려 한다고 말했던 거 같다. 여튼 새로운 장소에 왔더니 히피같은, 고대-중세 판타지에서 묘사되는 ‘새 인간’들이 막 무리지어 있었다. 모두 여성으로 보였다. 또 그들 속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몇몇의 머리 위에는 마치 게임 속 유저들처럼 아이디로 보이는 듯한 흰 글씨의 어떤 문자가 있었고 난 그게 이 사람의 아이디라는 걸로 파악했다. 이곳은 기상천외한 기분을 나로 하여금 느끼게 했다. 또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순간적으로 핸드폰을 봤었는데 마치 통신망으로부터 벗어나면 끊기는 신호로 ‘비행기 모드’가 뜨는 것처럼, 근데 뭔가 초음속 비행기 형상의 아이콘이 뜨면서 그런 모드로 넘어가는 걸 봤다. 이걸 보면서 난 순간적으로 ‘엄청 빠른 속도로 이곳이 돌아가고 있구나’를 느꼈다.
여튼 도착해서 이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이들이 날 덮치려 달려들었고 난 비행하는 능력으로 위로 올라가 이들을 피해 이 장소를 벗어나려 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이 장소를 벗어나려 했다. 왜인지는 알 수 없는데 난 처음 비밀 장소를 호기심으로 찾으려 할 때 마치 어릴 때 살던 동네를 발견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처음에 모험의 장소라고 말한 곳도 예전에 이미 다 훑었던 곳이라 더 이상 새로운 게 없을 거라는 그런 장소지만 안 가본 곳을 가보는 모험의 흥분을 느꼈었다. 여튼 그런 감정 상태로 이 장소를 위태롭게, 흥미진진하게 빠져나오자 여기가 어떤 오래된 탑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마치 중세시대 종교적인 탑을 연상하는 건축 디자인이었다. 이곳을 빠져나와 언덕 아래로 날아가다 어떤 벽을 넘어서니 도심 속 거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맞았다. 이곳은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뭔가 그 동네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밤이라 어두컴컴했지만 도심의 길거리라 가로등이 있었다. 난 사람들 머리 위 쪽으로 비행하며 이 동네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들은 내가 비행하는 걸 보면서도 막 그렇게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나도 나의 행동이 얼마나 희안한지를 알았지만 크게 연연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동네를 막 살펴보고 이동하다 서서히 돌아가야 한다는 기분을 느꼈다. 너무 멀리 오고 말았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와보고 싶던 곳이 맞지만, 오는 동안 겪었던 것들로 인해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 날면서 이동하다 서서히 돌아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위쪽을 보니 어떤 성벽과도 같은 게 높게 지어져 있었고, 난 거길 넘어 여기로 들어왔으니 저길 다시 넘어가자는 생각을 했다. 근데 내가 비행하는 능력은 무한한 능력이 아니었다. 어떤 핸드폰과 같은 기기로 나는 거라 배터리가 있어야만 날 수 있었다. 난 잠시 멈춰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고민을 하기로 했다. 맞은편에 한 아저씨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는 모습, 또 나와 눈이 마주치는 장면도 있었다. 난 이때 여자친구에게 먼저 문자를 보내 내 상황을 알리려했다. 여자친구에게 문자로 ‘지금 나 새로운 곳에 와 있는데, 배터리가 없어, 못 돌아갈 수도 있는데 돌아가볼께’라는 내용을 발신했다. 처음 여기로 넘어올 때 희안한 비행기 모드가 되었기에, 문자 발신이 안 될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문자는 발송 실패로 취소됐다. 성벽 쪽으로 보니 저 위로 날아가기에 과연 배터리가 충분할까 의심스러웠다. 왔던 길을 곱씹어봤을 때 과연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난 어쩔 수 없이 일단 여기를 파악하자는 생각으로 근처를 둘러보다 한 파출소가 언덕 중간에 있길래 거기로 향해 갔다.
파출소에 들어가니 야간 근무자와의 교대 시간처럼 보였다. 난 한 여자 경찰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먼저 이곳이 어느 동네인지 물었고 여자 경찰관은 내게 지도를 보여줬다. 이 지도는 내가 원래 살던 서울의 지도와 유사했는데 마치 원으로 구역이 나눠진 것처럼 각각의 구가 분리돼 있었다. 또 내가 원래 살던 곳이었다면 내가 오고 싶었던 동네는 한강으로 해서 밑 지역인데 여자 경찰관이 보여주는 지도로는 위 쪽에 있었다. 여튼 난 지도를 보며 순간적으로 내가 넘어온 성벽 같은 게 각 동네마다 둘러쌓여 있는 것이고, 이 동네는 마치 폐쇄된 것처럼 벽 안에 있고 다른 동네로 가려면 이 벽의 관문을 나가 다른 동네의 벽 관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식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때부터 난 속으로 ‘이곳은 내가 살던 세계와 또 다른 평행세계구나!’라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음으로 그럼 다른 동네는 어떻게 갈 수 있냐고 여자 경찰관에게 물었다. 그때 여자 경찰관은 지도를 거꾸로 봤다며 180도 회전시켰고, 난 더욱 이곳이 원래 살던 곳과 평행세계라는 걸 확신했다. 여자 경찰관은 내 질문에 답변했다. ‘뭐 휴가나 가족 친인척끼리 방문하는 걸로 가곤 하죠’라는 식의 답변이었다. 난 여기 사람들이 월세 전세 등 어떻게 사는지도 물었다. 그러다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걸 이 여자 경찰관에게 고백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여자 경찰관에게 전자제품 브랜드에 대해 물었다. 쓰고 있는 핸드폰을 가리키며 이거 어디 꺼냐고 물었고, 여자는 애플의 에폭시라고 했다. 난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우리는 아이폰인데 여기는 에폭시구나, 했다. 난 여기는 삼성전자 갤럭시가 없나요?라고 물었고, 여자는 ‘삼성?’이라고 의아해했다. 난 내 핸도폰을 보여주며 이게 삼성 갤럭시 모델이라고 확인시켜줬다. 또 날짜도 확인했다. 이곳은 8월로 똑같았다. 난 그 말을 듣고 ‘아, 곧 개강하는데 어떻게 돌아가지?’ 걱정을 했다. 난 이 평행세계에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마치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당장은 보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여자 경찰관에게 우스개처럼 ‘여기 노숙자 복지는 괜찮나요?’라고 물었다. 여자 경찰관은 괜찮다고 했다. 여기 파출소는 곧 근무 교대가 끝날 예정이었고 다른 경찰관도 내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 중 다른 여자 경찰관도 있었고 다들 근무 시작 전에 배를 채울 겸 뭔가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이들과 같이 대화를 하다 꿈에서 깼다.
이 꿈은 내게 진행의 확신을 들게 한 꿈이기도 했다. 이전까지 무의식 세계로 들어갔을 때 나는 늘 그곳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한 체험이 많았는데 이 꿈에서 처음으로 이곳에서 지내보자는 매우 자연스러운 태도가 나타났다. 즉 꿈 전반적으로 목숨의 위협을 아예 느끼지 않고 이 세계를 누렸다. 내가 꿈에서 농담으로 '노숙자 복지'에 대해 물었던 건 사실 진심이었다. 난 현실에서도 바닥으로부터도 삶은 가능하다고 진실로 믿기 때문에 꿈에서도 너무나 당연했다. 여기서 나타난 서울의 지도 상 전복은 다른 꿈에서도 나타난다. 즉 가야 할 곳이 '북쪽'이라는 걸 무의식의 문법으로 말해준다. 이 꿈은 무의식 세계를 자발적 생명으로 입장한 나의 첫 꿈이자 상징이다.
다른 세계뿐 아니라 아니마와의 관계에 있어 내가 주도적인 위치에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상징이 나타난 꿈도 있다. 아니마는 내게 안내자, 보호자, 베푸는 자, 매혹-유혹하는 자 등등으로 나타나는데 난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여자의 유혹에 몹시 예민하고도 경계하는 기본 자세가 있다. 즉 열등한 아니마가 날 유혹해 타락시키는 난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꿈에서 난 수상한 여자의 가면을 절대 믿어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 여자를 의심없이 봐도 난 절대 굽히지 않고 그 여자 뜻대로 되도록 날 허용해주지 않는다. 이게 때로 융통성없이 발휘될 때가 있다. 아니마는 내게 에너지를 줄 심산으로 섹스를 하자는 제안을 곧잘 하는데 난 늘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거절하거나 유보한다. 최근에서야 이 아니마들 간 구분을 의식적으로 알게 됐다. 딱 봐도 나를 도와주거나 안내해주거나 하는 아니마, 그러니까 내가 과거에 나도 모르게 통합한 나의 첫 번째 아니마들이 제안하는 섹스는 사실 유혹이 아닌 에너지의 보급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느낌 쎄한 아니마가 제안하는 성적 행위는 뭔가 정신 타락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꿈에서의 난 여자가 주는 것 중 음식만을 무방비로 받는 태도가 있다. 그러니까 꿈에서 여자가 나에게 뭔가를 줄 때 그게 음식이면 반드시, 의심없이 받는데 다른 거면 거의 안 받는다. (근데 생각해보니 나의 아니마가 아닌 여자가 내게 음식을 줄 리가 없어서 그런 거 같다.) 그럴 때는 애인의 얼굴로 내게 줘야 내가 그나마 받는다. 즉 신뢰하지 않는 여자를 난 매우 경계한다. 근데 그렇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들은 거진 모두 나의 첫 아니마들이다. 그걸 난 꿈속에서 '호감'으로 판단한다. 직감이다. 이 아니마들과의 관계가 요즘들어 내가 더욱 뭔갈 주고 돕고 해주려 한다.
25.10.05
꿈
앞 장면에서 난 집에 가족과 함께 있었다. 이때 왠지 모르게 똥을 참다 그만 똥을 조금 싸고 만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 바지를 벗고 속옷을 벗어 씻었다. 오른쪽 엉덩이 쪽에 똥이 묻었고 속옷과 바지에 좀 묻었다. 나는 그걸 빨며 뒷처리를 했다. 그때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 일정이 있었는데, 혹시 지금 늦지 않았나 시간을 확인했더니 오후 2시 4분이었다. 2시에 집을 나가야 했었나, 서둘러 확인해 보니 오후 3시에 출발하면 맞는 시간이어서 다행이었다. 그 후 거실에 나와보니 누나는 뭔가 준비한다고 양배추를 엄청 썰고 있었고 엄마도 뭔가 하고 있었다. 아빠도 있었던 거 같은데 보이지 않았다(실제 우리 가족 중 아빠는 14년 전에 죽었다).
그 후 난 어디론가 향했다. 이때부터 장면 순서가 정확하지 않다. 내가 어떤 휴양지 별장 같은 곳에 한 보디가드 한 명과 해변가 바닷가로 향했다. 바다에 들어가 놀다 점점 물이 차올라 땅에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그때 내 남자 보디가드가 수영을 할 줄 알아서 날 잡고 해변가 쪽으로 끌고 가주고 난 보디가드를 향해 발을 휘저으며 나아갈 수 있게 도왔다. 무섭거나 두려운 느낌은 아예 없었고 당연히 안전하게 벗어날 거란 상황이었는지 웃으며 이 곳을 빠져나갔다. 그 후 보디가드가 내게 자신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우스개로 말했고, 나도 기쁘게 말하며 현금 1만 원을 주고는 뭔가 보수를 더 주겠다는 식의 말을 농담으로 주고 받으며 한 건물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난 한 남자인 친구와 동행했다. 그 건물은 엄청난 그룹 회장이 주인으로 있는 빌딩이었다. 재벌가의 빌딩. 거기서 나와 내 친구는 이 빌딩의 주인인 어떤 남매를 각각 도와주게 된다. 내가 그 남매 중 남자를 도와줬는데 꿈에서 깨고 나서는 뭘 도와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도와주고 내 친구가 대신해서 내가 도와줬다는 걸 그 남매의 남자가 알 수 있게 일러줬다. 그 후 내 친구는 왠지 한국 연예인이었던 노홍철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친구가 이 빌딩에 있는 어떤 전시물의 배치? 조립? 뭔가를 도와줬다. 내가 도와줄 때도 내가 가진 어떤 전문적 능력을 발휘해 도와줬었고, 내 친구는 이 예술 작품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 예술 작품은 4개의 문으로 하얀색, 파란색, 검정색 그리고 남은 한 개의 문 색깔은 기억나지 않는다. 문 4개인 이 예술 작품을 내 친구가 이러저러한 지시를 내려 어떻게 조합하고 조립하는지 등등을 지시하며 이 예술 작품이 제대로 작동하고 전시될 수 있게 도움을 줬다. 그 장면을 난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작동하는 걸 실시간으로 보게 된다. 엄청 정교하게 기계 조립처럼 딱딱 되는 걸 봤는데 매우 신기하고 흥미로웠지만 글로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다. 여하간 내 친구가 그 작업을 완수했는데 그 작업의 주인은 앞서 말한 남매 중 여자였다. 작업이 끝나고 마치 보수처럼 어떤 샌드위치가 이 여자 책상에 한 비서에 의해 전달됐는데, 이 여자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뭔갈 하고 있어서 샌드위치에 별다른 관심을 갖질 못했다. 난 그녀의 뒷쪽 책상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와 내 친구가 누구인지, 암시적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아마 과거 10년 장면으로 넘어간 것 같은데 이 장면 순서는 정확하지 않다.
꿈에서 이때로부터 10년 전 나와 내 친구는 어떤 공부 모임을 같이 하고 있었다. 나와 내 친구 말고 2명의 여자를 초대해 같이 공부하는 모임이다. 나와 내 친구는 신문을 펼쳐놓고 각자 뭔가 하고 있었다. 그때 2명의 남자가 도착했다. 우리는 이 공부 모임이 2명씩 계속 초대해 그들과 같이 공부를 각자 하는 방식으로 주최한 입장이었는데, 이 2명의 남자가 첫 참여자들이었다. 근데 남자 2명이 도착한 뒤 나는 여자 2명을 초대한 것인데 왜 남자가 왔는지 의아해 물어봤다. 이 남자 중 한 명은 내게 ‘사실 이 남자는 내 친구고 같이 오기로 한 여자는 곧 올 거다’라고 말했다. 난 이 남자 2명에게서 호감을 느꼈다. 남자 2명은 오자마자 신문을 꺼내 뭔가를 하려고 했는데, 난 그 모습을 보고 우리 4명 모두 신문을 꺼내놓고 있다며 농담을 던졌다. 여튼 이후 남자 1명이 가고 여자가 왔는데, 이 첫 만남에서 만났던 남자와 여자가 바로 나와 내 친구가 도왔던 재산가 그룹 빌딩의 주인들이었다. 마지막에 내가 전화를 걸었던 여자가 이 모든 걸 물려받은 회장 딸이었다. 난 우리 인연이 10년 전 만났던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걸 암시하는 말을 건넸고, 그 여자는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됐다. 그 후 꿈에서 깼다.
꿈에서 여자로부터 도움을 받는 꿈은 자주 나타나지만, 남자로부터 도움을 받는 꿈은 상대적으로 적었었다. 이 꿈은 뭔가 나의 '남자'와 협업하고 의지하고 동행하는 어떤 걸 상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4개의 문이라는 몹시 중요한 상징적 통합의 수행이 먼저 나타난 꿈이기도 하다. 그걸 내가 한 게 아니라 나의 남자인 친구가 한 걸 난 탑 뷰(메타 인지)로 보는 상황인지라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 꿈을 꾸고 났을 때 난 확실히 '이젠 정말 준비가 끝났구나' 느꼈다.
아니마가 하지 못하는 걸 내가 대신 해주는 꿈의 연장이기도 하다. 내가 아니마를 직접 돕는 꿈은 보통 아니마에게 농담을 던져 말로 웃게 만들거나 서로 장난을 치거나 하는 분위기 속에서 관계를 만드는 내용이 동반한다. 음식을 주거나, 사주거나, 차려주는 건 늘상 있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꿈에서 아니마가 내게 뭔가 먹고 싶다고 말 한마디라도 하면 난 거의 눈 돌아가다싶이 그 음식을 찾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걸 구할 때까지 난 멈추지 않는다. 혹은 어린 여자애가 나올 경우 난 그 여자 아이를 보호하고 지키는 데 전력을 다한다. 아주 가끔 아픈 여자 아이나 버림받은 여자 아이가 나오는 데 그땐 내가 보호자로 나타난다. 아이가 아니더라도 고통받는 여자, 피해자인 여자 등 뭔가 당하고 있는 여자가 나타날 때 난 치유자-보호자로 움직인다. 이때 거의 반드시 나타나는 상이 바로 '폭력적 남성'이다.
이게 지금 나의 화두다. 난 과거 꿈에서 폭력적 남자가 나타나면 거진 죽여버리거나 나의 힘을 발휘해 그를 제압하거나 힘으로 짓눌러온 패턴이 있다. 폭력적 남자가 꿈에서 나타나는 건 1년에 몇 번 안 될 정도로 흔치 않은 상인데, 최근 들어 자주 나타나고 있다. 또 나의 태도가 변했다. 이전에는 마치 정당방위식으로 내가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속으로 '어디 먼저 하기만 해라 조져버릴 거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상대 남자가 하는 순간 난 무슨 허락이라도 받은 듯 나의 공격성을 확 꺼내는 게, 과거 나의 공격성 핸들링이었다. 그러니까 먼저 나의 공격성을 꺼낼 일은 없는데, 상대 남자가 폭력적인, 공격적인 사람일 때 나의 공격성이 올라오고 그 화살이 내게 향하는 순간 난 더 거세게 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아니마의 정신 작업을 하고 난 후로 폭력적 남자를 치유하는 나의 모습이 나타나는 꿈을 꾸고는, 최근에는 폭력성을 규칙 위에 올려 정신적인 순환으로 다루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과거에는 야만은 야만으로, 라는 나의 태도가 이제는 야만을 통합으로, 라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야만으로 다룰 때는 참 많은 남자를 죽였다. 그들이 먼저 전쟁을 걸었기에 정말 무참히 목을 베고 몸을 절단했다. 내 안의 공격성은 내가 극도로 거부하는 '잔인함'의 거울이다.
이게 무의식이라는 상징 문법으로 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다음 꿈이 있다.
25.10.03
꿈 (새벽 2시 20분에 깬)
친가의 가족들이 있는 시골 낯선 곳에 갔다. 나와 누나가 같이 갔고, 거기엔 남자 동생들이 많았다. 모두 오랜만에 보는 거라 내가 잘 알아보지 못했다. 남자 아이들이 5~6명 있었다. 나에겐 모두 친척 동생들이었다. 이곳은 분명 시골인데 실제 시골 집이 아닌 어떤 별장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오랜만에 본 친척 동생들은 어릴 때 봤던 모습들 없이 모두 다 커버려 내게 좀 낯설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저녁을 먹고 밤이 되었다. 난 뭔가 약간의 허기짐을 느껴 이따 누나랑 차 타고 시내로 나가 햄버거를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할 마음이었다. 난 남자 동생들과 잘 어울렸다.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지만 맏형으로써 동생들을 챙기고 신경써주고 그랬다. 그러다 동생들이 유리 창에 뭔가를 붙이려고 했고, 난 그걸 도와주려 했다. 어떤 종이를 붙이려고 했는데, 내가 그걸 받아 붙이려고 보니 테이프가 막 엉겨붙어 있었다. 그래서 이건 안 되고 다시 달라고 말했고, 이번엔 A4 종이 사이즈가 아닌 엄청 작은 흰 종이를 줬다. 동생이 접은 거라고 일러줬다. 난 그 접힌 종이를 펼쳐보니 가로 사이즈가 원래 붙이려는 종이 사이즈에 맞게 펴지는 걸 보고 다시 이걸 붙이려고 했는데, 막상 세로 길이가 잘려 있었다. 또 의자를 어떻게 대고 올라가 붙이려는 그런 장면, 유리 창 건너편에서 봐주는 동생 등등의 장면이 있었다. 그러다 단순해 보이는 이 종이 붙이기가 너무 지지부진하게 되자 난 속으로 ‘왜 이렇게 어렵게 하지’ 하는 조금의 의아함을 느꼈지만 동생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컸다.
그 후 내가 이름을 자꾸 헷갈린 남자 동생 한 명이 다가왔다. 이 동생이 노트북으로 뭔가 하려는 모양이었다. 이 작업은 유리 창에 종이 붙이는 것과 연관이 있었다. 그때 동생이 뭔가 안 된다고 하자 내가 내 노트북을 쓰라고 건네줬는데, 동생이 와이파이 수신기 같은 어떤 안테나를 보며 나에게 ‘형 이거 그동안 모르고 안 썼지?’라고 말했다. 가만 보니 그 안테나 끝에 고무 패킹이 안 벗겨져 있었다. 그걸 보고 난 동생에게 ‘그렇네 몰랐다 야’하고 말했다. 동생이 장난으로 나에게 ‘형 앞으로 다른 브랜드 써 ㅋㅋㅋ 쓸 줄 모르네’라고 말했다. 난 친척 동생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느껴졌고, 이 동생이 내가 모르는 시간 동안 자기 관심사에 열심히 해나가서 그 방면으로 나보다 아는 게 많다는 인상을 느꼈다. 그래서 난 ‘야 다음에 너한테 물어봐야겠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난 누나와 햄버거를 먹으러 가고 싶어져서 누나를 찾았다. 누나가 보이지 않자 건물 밖에 다른 건물에서 자고 있나 확인하러 밖에 나갔고 다른 숙소에 가 현관문을 여니 거실의 침대가 어두컴컴하게 보였다. 그 침대에 있는 사람이 누나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고, 누나가 맞는 건지 확인하다 혹시 다른 누군가의 잠을 깨울까 봐 머뭇거리다 그냥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 오른쪽 숲길 쪽에서 아무도 없는데도 어떤 여자가 날 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난 생명의 위협 같은 뭔가 위기감을 느꼈고, 벗어나려고 했는데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끝까지 그쪽 방향에서 어떤 정체가 날 향하고 있는지 보려고 하는 동시에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 근데 뭔가 몸에서 힘이 쭉 빠지면서 곧 내가 죽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엄습했다. 막 저항하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마지막 순간이 임박했을 즈음 난 속으로 ‘아, 여기까지구나… 난 이제 죽는 구나’ 싶었다. 그렇게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마지막까지 뭔가 날 위협하는 듯한 방향을 주시했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자 갑자기 뉴스 화면같은 장면이 나타나면서 어떤 여자 아나운서가 보도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마치 현상수배범의 사진처럼 한 여자와 남자 얼굴이 나타나며, 난 죽은 뒤에 그 장면을 보는 것처럼, 그 여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날 향하던 위협적인 존재가 저 여자였구나라고 생각했다. 뉴스 내용은 이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났고, 결국 남자한테 휘말려 여자가 죽었다는 사건 보도 내용이었다. 남자 얼굴은 몹시 거칠고 사나운 인상이었다. 눈이 크고 관상이 진했다. 여자도 뭔가 눈이 크고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보도 내용을 관찰하듯 보다 꿈에서 깼다.
이 꿈을 꾸고 거진 매일 꿈에서 폭력적 남성성이 나타나고 있다. 날 죽일 수 있는 여자는 여태 내 꿈에서 '거대한 아니마'와 연결된 두 번째 아니마뿐이다. 첫 번째 아니마는 나와 '음식적 관계'이기 때문에 결코 생명위협적이지 않다. 늘 첫 번째 아니마의 부재 뒤에 두 번째 아니마의 위협이 나타난다. 이 둘이 같이 있을 때는 첫 번째 아니마와 내가 합심해 두 번째 아니마를 보살펴주거나 보호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즉 내 꿈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여자는 대개 혼자거나 2명이서 나타난다. 과거 한 꿈에서 폭력적 남자로부터 고통을 받는 여자를 구해주는 꿈이 있었다. 이 고통을 받는 여자는 나의 첫 여자친구 얼굴을 마스크로 하고 있었다. 당시 꿈에서 난 이 폭력적 남자의 등에 손을 얹고 아무렇지 않게 치유를 했는데 몹시 쉽지 않다는 부하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니까, 당시 꿈에서 그 치유를 완수하지 못했다. 위의 꿈에서 폭력적 남성은 날 위협하는 여자가 휘말린, 사건의 인과다. 이 관계가 더욱 진실되게 나타난 건 어제 꾼 꿈에서다.
어제 꿈에서는 학교 선배로 나왔는데 여자들이 완전 종속적으로 있었다. 그 남자가 기분 상하면 안 되니까 몸을 바쳐 봉사하듯 그 남자가 불쾌하거나 화가 나지 않게 떠받고 있었다. 난 이 여자가 내 친구로 나왔기에 이 남자를 앞으로 절대 만나면 안 된다고 일러주려 했고, 후에 이 남자가 내게 시비를 걸고 장난을 계속 쳐왔다. 이때 난 이 남자를 내 힘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거의 폭발하기 전까지 계속 참다가 꿈에서 깼다. 생각해보면 여태 꿨던 꿈에서 나타난 폭력적 남자들은 내게 그렇게까지 과한 폭력을 한 적이 없다. 모두 그 선을 넘지 않는 어떤 위협인데, 난 그걸 더한 폭력으로 되받아치곤 했다. 왜냐하면 말로 해도 듣질 않고 대화가 안 통하고, 또 내가 그만 하라고 몇 번이나 말해도 듣질 않고 계속 하기 때문이다. 즉 나의 평화 수단이 먹히질 않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폭력을 꺼내는 사건 구성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일련의 연쇄 과정에 균열을 내고 뭔가를 더해야 한다. 즉 폭력적 남성을 대할 때 뭔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오늘은 또 다시 내 안의 다른 남성성과 여성성이 합심해 '북쪽으로 향하는' 꿈을 꿨다. 내 안의 여러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할 때는 늘 내가 주도적 위치에 놓여 사람들을 이끌고 수평적 관계를 유지-발달시킨다. 다만 폭력적 남성은 참 까다롭고 어렵다. 그 이유는 꽤 단순한데, 현실 언어로 말하면 그들은 이성-합리가 아예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화가 불가능하고 자신이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 스스로 보지 못한다. 즉 자신으로 인해 누가 고통받고 있는지를, 누가 괴로워하고 있는지를 도저히 알려고 하지 않는 게 나로 하여금 극심한 분노를 야기한다.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기분으로 다루는 그 태도가, 내 꿈에서도 늘 반복해서 나오는 '폭력'의 특징이다.
내가 극도로 혐오하는 모든 폭력이 주로 이렇다. 이건 여자든 남자든 마찬가지인데, 왠지 모르게 무의식의 상징 언어로는 여자의 이런 폭력이 남성성의 폭력으로부터 야기된 거라는 뭔가 의미심장한 직감이 든다. 그래서 폭력적인 남성성을 다루는 과정에 당도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거대한 아니마는 전혀 폭력적이지 않았다. 이 힘의 원천이 뭘까, 난 아직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비합리적인 야만성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입체적이지 않다. 이 힘은 현실에 있어 '잔인함의 원천'이다. 내게 있어 풀어야만 하는 절대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바로 그 테제다. 잔인함. 인간 정신에 도대체 왜 이 잔인함이 있는가 하는.
과연 내가 북쪽으로 떠날 수 있을까. 사실 지금까지 이렇게 꿈에서 본 무의식의 문제 제출을 의식적으로 다루려고 하면 늘 얼마 안 있다 곧 문제를 풀어냈기에, 그러니까 의식으로 이렇게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것부터 이미 문제를 풀기 직전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고 있기에 얼마 안 남은 거 같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야만 풀리는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이 잔인함은 무엇인가. 폭력적 남성성은 도대체 왜 나타나고, 또 그 반대의 힘으로 즉시적인 순간에 어떻게 맞서고 다룰 수 있는가. 그 현실감을 찾아내야만 한다. 앞서 꿨던 꿈에서 본 4개의 문이 그 힌트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4개의 문. 그 중 한 가지 문이 기억나지 않는 건 역시 무의식의 상징 답다.
러시아로의 여행을 나의 무의식은 내년 11월에 가자고 일러줬다. 난 애인과의 결혼 때문에 안 된다고 말했다. 처음 아니마가 내게 푸른 나비의 연을 줄 때도, 애인이 기다리고 있어서 받질 않았다. 이 균형을 이제 꿈에서 풀 때가 된 것 같다. 이게 충돌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진정으로 깨우쳐야 한다. 안에서는 잔인함의 4 방향을, 밖에서는 에너지의 4 순환을 설계해야 한다. 믿음이 필요하다. 행동을 위한 넘어서기에 한 걸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