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작업 37
26.04.12
근래 들어 무의식이 활발해졌다. 꿈 기록은 잦은 편이라 할 수 있지만, 상세히 기억나질 않고 깨고 나면 까먹기 십상이다. 거의 매일 꿈을 꾸지만 기록은 띄엄띄엄이다. 개중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꿈이 기록에 남는다.
저번 주 가족 여행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우리 가족의 여행은 근 20년 만이다. 누나와 매형이 엄마의 효도 관광을 계획했는데 거기에 내가 낑겨서 다녀왔다. 꿈에서만 봤던, 또 환상 이미지로만 봤던 장면과 상징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본에서 데려온 나의 기념품은 호리병 2개와 거친 질감의 그릇 1개다. 이 상징물들은 과거 환상 이미지로 봤던 것들이다. 내가 왜 이것들을 갖고 싶은지는 딱히 의심스럽지 않았다. 무의미가 가리키는 방향을 의심할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약 2달인가. 그간의 꿈들은 내게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담을 그릇을 만들어라'. 내가 가지고 싶어 했던 호리병과 그릇의 구조적 존재감과 일치하는 메시지다. 나는 이제서야, '담는다'는 걸 다시 배우고자 한다. 상징이 되고자 한다. 무언가를 담는다는 의미를 일찍이 깨우쳤던 건 20대의 시절이다. 8년을 놓지 않고 해왔었지만 그만 놓고 말았다. 원인은 정신적 에너지 운용의 실패다. 내 안에는 이미 온갖 에너지들이 막대하게 들어 있다. 이걸 꿈은 계속 보여주지만, 내가 그걸 제대로 쓰질 못해 자꾸 흘리거나 낭비하고 만다. 아니마들이 날 꾸짖는다. 도구를 잘 못 사용하는 걸 비난하고 마음에 상처를 준다. 엄마와 누나의 탈을 쓰고, 날 고독하게 만든다. 고독은 나를 담는 용기다. 용기는 용기를 부른다. 아니 요구한다. 내가 망설이는 만큼, 난 나를 담아내지 않아도 된다.
엊그제 꿈에서 일본 여행을 가 낯선 여자와 섹스를 했다. 깨고나서 느끼기론, 2년 전 꿨던 거대한 일본 신사 아니마의 현현인가 생각했다. 그간 일본과 관련된 꿈들은 모두 아니마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일본에서 일본 아니마와 교접을 맺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만 마지막에 일본 남자 노인들이 나타나 중단되었다.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현실의 장벽처럼 전환되었다. 난 낡은 2켤레의 신발과 어떤 낡은 짐을 챙겨 그 전통 가옥을 빠져나오려 했다. 일본 아니마의 이름은 미호코였다.
그 전 꿈에서는 내가 가진 캐리어의 큰 가방에서 고급 만년필이 수십 개가 진열된 걸 발견했다. 최근에 산 만년필과 같은 만년필이었는데, 처음 그걸 찾으려 했을 때는 촉이 빠져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였다. 마치 상품 진열처럼 갖가지 디자인의 고급 만년필이 종류별로 하나씩 꽂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찾는 만년필은 내 필통에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이 만년필로 나는 아니마가 제작한 영화를 보며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려 했다. 이 꿈의 단어는 상징적 단어는 '도구'다. 이 도구는 일본 여행 마지막날 아침에 꿨던 꿈에서 엄마와 누나가 내 마음을 찢는 주제로 다뤄지기도 했다. 나더러 도구를 잘 못 써서 실패한 거라고 했다. 트럼프(새끼)가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 난 용납도 안 되고 받아들일 마음도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난 그걸 현실로 증명해내지 못했기에 무력했다. 누나에게 설움에 받쳐 한 소리를 했다. 내가 그동안 누나한테 얼마나 맞춰줬는데 나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냐고. 깨고 나서 엄마에게도 그런 꿈을 꿨다고 얘기했더니 엄마가 '뭔 개꿈을 꿨어'하고 등을 한번 토닥여줬다. 위로 받기엔 너무 오래 살고 말았다.
지금 내 책상엔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 앞에서 산 고동색 작은 호리병 2개와 나가사키 글로버 가든 거리 골동품 점에서 산 갈색 그릇이 1개 놓여 있다. 일본에서 봤던 신사 여자 알바생들의 복장은 과거 꿈에서 분신을 했던 무녀 복장과 완벽하게 같았다. 흰색 상의에 다홍색 긴 치마. 또 3천년 된 녹나무를 봤다. 그 존재감이 어마무시했고, 눈에 다 담으려 해도 담아내기 벅찼다. 녹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에 놓인 작은 토리이는 마찬가지 과거 거대한 아니마를 보러가던 산 속의 결계와 같았다. 융을 읽기 시작했던 초입에 꿨던 꿈에서 벽에 난 사각형 구멍 너머로 봤던 신사와 그 언덕길, 그리고 푸른 나비 연을 주려던 아니마의 풍경은 꽤나 강렬했고, 이번 일본 여행에서 봤던 현실과 교효하는 느낌을 주었다. 최근 꿈에서 난 무지개색 나비를 잡기 위해서 '우연히 발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체력이 회복되는 날부터 이제 담는 의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아니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는 느낌이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닌 그저 하면 되는 그 미묘한 힘으로 일상을 바꾸려 한다. 나는 실패로부터 배움을 얻는 데 시간이 참 오래 걸린다. 특히 '자기'와 관련된 배움일수록 더 그렇다. 잃어버린 삶을 찾아서, 라는 말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얼마나 값진 시간인 걸까. 그 순간은 모두에게 늘 고유하다. 도구를 잃어버린 건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다시 도구를 얻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이성으로 보면 꽤나 낭비로만 느껴지겠지만, 이런 나선의 굴레가 삶의 정체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생명의 정신이다. 오직 생명으로만 사는 존재들과 생명의 정신으로도 사는 존재들의 뒤죽박죽 현실에서, 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하다. 인간 곁에 머무는 인공물들은 죄다 뭔가를 담고 있다는, 정신의 현실을 21세기 도시인들은 의미있게 여기지 않는 듯 하다. 이토록 많은 용기들을 곁에 두고 사는 인간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말이다. 20대 때에는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껴졌었다. 지금도 그런 행위가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내가 원하는 태도는 아니다. 난 사람들을 알게 만들고 싶지가 않다. 정신의 의미에서 사람들이 몰라도 괜찮길 바란다. 이성이 과도해진 21세기 도시에서 문학은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 난 여즉 그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 길을 찾아냈노라 발견하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런 삶이 살아숨쉬고 있다는 걸 못 알아볼 정도로 눈이 어둡진 않다. 문학은 더 이상 내게 위대함을 주지 못하지만, 즉 세상에서 예술의 존재가 왜 '의미' 있어져야 하는지 더 이상 설득될 수 없게 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시를 쓴다. 그런 고민은 젊은 청춘들에게 맡겨야 할 어느 구간처럼 느껴진다. 젊었던 내가 거친 고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난 오늘날의 문학에서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언어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는 평생 나를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의 증명도 마찬가지다. 이 길은 그런 방향으로 창문이 나 있지 않으니, 이제는 담아내는 과업이 도래했다. 내겐 여전히 인간의 치열하고도 아득한 감정이 문학의 언어가 되는 게 예술의 오해라고 느껴진다. 어쩌다 현대 인간이 이 지경이 되고 말았는가는 아는 바가 없다. 나의 무의식이 데리고가려는 창조성은 그런 인간과 관련이 없다. 만약 이 길이 또다시 나의 실패로 판명난다면 그건 참 다행일 것이다. 만약 이 창조력이 뭔가를 만들어낸다면, 그건 내가 죽음에 가까이 다가섰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담는 걸 배워야 한다. 지금의 나로는 이 힘을 감당할 수 없다.
문학 운운한 건, 누군가 부디 제발 이 감당을 보여줬음 싶은 나의 조난 신호였다. 난 그런 마음으로 늘 문학을 읽었다. 이런 편협함으로 문학을 운운할 수 없다는 건 대학 기초 교양이지만, 정신의 교양으로 보면 이것말고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가 정신의 용기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면 말이다. 인공물이 더 이상 포화될 수 없는 시대가 충분히 왔다. 기술색이 더 이상 정신의 이물감을 투영하지 않는 시대가 오고 말았다. 이제 언어가 하찮아지는 일만이 바투 와 있다. 과거에 정신으로 임했던 '공들이는 시간'을 기술에 위임했을 때 사람들은 그 시간을 무엇에 줬을까, 어떤 행위에 공을 들였을까, 생각해보면 마냥 비관적일 필요도 없고 낙관적일 필요도 없다. 무의식은 늘 있었고, 그 관계를 맺는 정신만이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다만 언어는 그런 일을 겪을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는 꼼짝없이 겪고야 만다. 기술을 운운하면 늘상 손쉬운 '버리기' 태도로 결론짓는 '양날의 칼' 논리의 인식들은 기술이 얼마나 정신적이지 않은지를 대변할 뿐 그 어떠한 말도 안 하는 것과 다름없다. 언어가 정신의 용기라면 기술 또는 정신의 용기다. 즉 우리는 정신에 대해 말하는 것 말고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문학이 그 감당을 보여줄 수 있을 거란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실은 이미 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이다.
인공물과의 동거 생활이 이미 수천 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즉 인공물에 대한 정신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있는 건 참 수상한 사건이다. 소위 그 번역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우리 인간의 정신 특질을 고려해보면 당연한 결과로 생각되지만, 더 이상 먼 미래의 난제로 떠밀어둘 수 없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난 살기 위해 기존 인간을 포기하고 시를 쓰면서도 이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배우기 위해 인간으로 살아가며 포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결국 이성을 쓰는 인간에 한정되어 있다. 이성 인간, 의식적 인간의 존재에 변화를 요구하는 이 화급한 시대에 태어난 건 나의 선택이 아니다. 꿈에서 나는 새로운 역 '중경역'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 중간지대는 나의 자기 실현이 살고 있는 기이한 지대다. 내 역할이자 윤리이자 생명이자 삶이다. 나는 언젠가 러시아에 가고 말겠지만, 그 곳은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걸 안다. 난 사람이기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다. 인공물에게서 '담는다'는 걸 배워야 한다.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나의 정신은 배워야 한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 아니다. 정신이 만든 자연의 정신이다. 난 이걸 생명의 정신으로 번역해야 한다. 문학의 희망이란 내게 이런 것이다.
우연이지만 호리병엔 각각 빨간줄과 보라줄이 감겨 있다. 2개를 원했던 건 무의식의 친절함이다. 하나는 여우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호랑이의 것이다. 빨간 호리병은 내게 파괴와 정화를, 분홍색 도마뱀의 둥지를 의미한다. 보라 호리병은 내게 용기와 감당(윤리)을, 박쥐와 매미의 둥지를 의미한다. 이 호리병 2개를 예전에 만든 묵주로 감싸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거친 질그릇이 가운데로 모이도록 담아내고 있다. 이 질그릇은 내 무의식이 태어날 껍데기와 같다. 내가 세상과 연결해줘야 하는 그 태아의 알 껍질이다. 내 정신은 안타깝지만 직관이 너무 강해 늘 현실의 나를 외롭게 하고 따돌린다. 매번 늘 앞서 간다. 그 뒤를 쫓느라 몇 년이 걸리더라도 결국 당도하고 나면 내 직관이 얼마나 빨리 선취했는지만 증명될 뿐이다. 직관이 발달한 나와 같은 정신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동료들에게, 충동의 용기가 늘 함께하기를. 이제 나도 용기를 부리려 한다. 담아내는 용기를, 감당하는 용기를. 한국어는 이 동음이의어가 참 아름답다. 한자 병기 덕분이다. 한국어의 70%가 한자라는 걸 좀 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공부를 시작해 본다. 한국어가 정신의 도구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