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된장 볶음

내면 작업 38

by 사과와 돌멩이


26.04.13



꿈#1


밤 꿈(18시쯤부터 22시쯤 깸)


애인과 같이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시간대는 밤이었다. 내가 맨 뒤 좌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고 말았다. 꿈에서 다시 잠든 것이다. 근데 앉아서 잔 게 아니라 완전 발을 뻗고 엎드려서 자는 모양새였다. 내가 한참을 너무 잘 잤다는 느낌으로 깨보니 버스가 만원이었다. 내가 깨고 나서야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내가 편하게 잤구나’하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잘 잤다는 기분으로 깼다. 그 후 애인과 같이 집으로 가 더 잠을 잤던 거 같다. 그 집은 상도동집이었다. (현실에서 내가 초등학생 2학년 시절 이사갔던 상도동 집으로 지금은 그 집에 큰이모네가 살고 있는 집이다.) 다시 자고 일어나보니 시간은 밤 9시를 넘겨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애인도 같이 일어났다. 우리는 잠을 미리 잤고, 이제 활동을 할 생각을 같이 하고 대화를 했다. 애인은 공부를 하고 나도 내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실로 나가보니 외할머니와 막내삼촌이 있었다. 이때부터 애인은 뭔가 등장하지 않았고, 내가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갔다. 외할머니와 막내삼촌도 식탁에 앉았다. 그러면서 대화를 하며 내가 냉장고 문을 여는 동안 식탁에 앉은 외할머니와 막내삼촌이 밥을 먹으려 하고 있었다. 대화를 하며 파악한 상황은, 이 집에서 외할머니가 요양차 와 있었다는 것, 막내삼촌은 간병으로 있었던 것이고, 내가 오기 전까지 엄마가 여기에 와서 매일 밥과 반찬을 해줬다는 거였다. 난 자연스럽게 이번엔 내가 밥을 차려줄 요령으로 외할머니와 삼촌에게 ‘뭐 필요한 거 없어?’ 하며 물었다. 이미 외할머니와 막내삼촌은 밥을 꺼내 앞에 두고 있었고 내가 반찬을 차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뭐가 필요한지 물으면서 밥은 내일 먹어 할머니,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버섯이 엄청 많았다. 외할머니가 무슨 볶음 요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냉장고를 보면서 이 버섯을 넣고 양파를 좀 넣고 파를 좀 넣는 볶음 반찬을 해먹었단 것으로, 그동안은 엄마가 매일 밥과 반찬을 이 버섯 볶음으로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 부엌으로 가는 동안 그 주변에 물건들이 몹시 많았는데, 그런 풍경들이 나로 하여금 ‘그동안 엄마가 매일 같은 밥과 반찬, 매일 같은 메뉴를 똑같게 계속 하느라고 이런 것들이 쌓여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는 내가 외할머니에게 ‘할머니 간을 뭘로 할까? 소금? 간장?’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그 버섯 볶음 요리의 간 맞추는 걸 물었더니 외할머니는 내게 ‘된장으로 해’라고 일러주고는 난 속으로 알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냉장고에 같은 버섯 종류가 무더기로 8~9봉지나 같은 게 있었고, 정말 가득 차 있었다. 난 냉동고도 살피기 위해 냉동고를 열었는데 첫 칸에는 뭔가 주방 가전 제품으로 보이는 게 덜렁 하나 놓여 있었다. 그것뿐이었고 공간은 널널 했다. 두 번째 칸을 열어보니 냉동된 연어가 한 팩 놓여 있었다. 난 그걸 보고 큰이모네 첫째 아들이 먹다 남긴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세 번째 칸을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고, 그 냉동고 수납 제일 바닥에 뭔가 있어 보니 같은 냉동 연어가 1팩 있었다. 그걸 보고 냉동고 칸 사이에 공간이 있었고, 그 사이로 빠져나갔던 건가 하는 생각으로 그걸 두 번째 칸으로 옮겨 넣고는, 냉동고에는 뭔가 특별한 게 없다는 생각으로 문을 닫는다. 그 후 난 애인이랑 밤 늦게 일어났으니 활동할 차례고, 외할머니와 삼촌은 자고 내일 밥을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그동안 요리 준비와 밥도 좀 미리미리 해둘 계획을 머릿속으로 한다. 그러면서 외할머니와 삼촌에게 ‘밥은 내일 먹어, 할머니도 지금 밥 먹으면 속 버려’하면서 둘을 돌려보내려고 했다. 이미 밥을 꺼내놓고 내가 반찬을 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내 말을 듣고 ‘그럴까?’하면서 둘은 순순히 물러났다. 지금은 밤 11시니까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먹으라고. 그 후 둘을 잠자리로 돌려보내며 꿈에서 깬다.




어제 꿈 정리를 하고 아까 꾼 꿈이다. 그동안의 무의식적 과업을 정리하며 내가 의식화한 메시지는 '에너지를 담기 위한 반복적인 의식'이었다. 무의식은 참 정직하면서도 협조적이면서도 놀라운 상징으로 화답을 했다. 나의 심층 무의식 공간인 최초의 상도동 집(현실에서 상도동이라는 18년간의 동네에서 이사는 총 4번 다녔다)에서 외할머니와 막내 삼촌, 그리고 엄마가 이미 그런 의식 행위(리츄얼)를 해왔다는 걸 상징으로 보여준 것이다. 또 내 무의식에는 늘 그랜드 (아니)마가 든든한 위치로 자리해 있다. 늘 우리 외할머니 탈을 쓰고 나타나는 데, 젊은 여자와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거나 뭔가 일러주거나 하는 식이다. 난 늘 꿈에서 할머니들을 만나면 대접하기 바쁘다. 또 모성들에게 대접 받기 바쁘다.


엄마라는 아니마가 늘상 반복적으로 해왔던 음식(생명 유지이자 창조의 재료)은 늘상 같은 메뉴이자 단촐한 상이었다. 밥과 버섯 볶음, 국 끝. 그걸 이어 받아 내가 하려 한다. 꿈에서 전혀 부담스럽거나 하지 않았다. 과거의 꿈들을 돌이켜 보면, 내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때 요리는 늘상 장애를 겪었었다. 식기가 뭔가 맞질 않다던가, 재료가 준비되지 않았다던가, 간을 맞출 줄 모른다거나 등등. 늘 그런 식으로 나타났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할 줄 안다. 또 간을 맞춰줄 줄 안다. 할머니에게 간을 어떻게 맞출지 물었을 때 할머니가 '된장'으로 해 달라는 말을 듣고는 '그러지 뭐'하는 단순한 느낌이었다.


무의식이 보여준 이 꿈을 통해 내가 진행할 의식화는 다름 아닌 주변 물건들과 그 부엌 분위기가 주는 기묘한 '낡은 감각'이다. 이 느낌은 언어로 담아내기 어렵다. 살면서 누구나 겪어봄직한 이 느낌은, 뭔가 촌스럽고 낡고 기능을 상실한 듯한, 그래서 시간의 때가 잔뜩 끼여 뭔가 거북하면서도 미묘한 더러움과 아주 은은한 역겨움, 또 자아의 내밀한 감각으로는 내가 지워질 것만 같은 그런 미묘한 체념 감각을 동반한다. '낡음'이란 우리 인간에게 그런 느낌을 맛보게 한다. 부모가 젊은 시절 쓰던 오래된 물건을 볼 때 낭만적 향수를 걷어내고, 그것이 마치 '내 삶인 것마냥' 임하려고 할 때 드는 느낌이다. 만약 도시 젊은이에게 내일부터 당장 아무 말 없이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살게 했을 때 그 인간이 겪을 만한 느낌이다. 기계기술의 최신식에서 갑자기 절개되어 익숙하지만 낡디 낡은 뭔가 거북한 느낌을 자아내는 그 물건들과 환경에 내동댕이쳐질 때의 감성을 자아내는 분위기가 분명 있다. 내가 이번 꿈에서 상도동 집 부엌에 들어갈 때 놓여 있던 물건들과 엄마가 그동안 여기서 요리를 어떻게 해왔는지를 단번에 파악하게 될 때 느꼈던 감수성이다.


바로 이 낡은 감각으로 에너지를 담는 작업에 임해야 한다는 걸, 내 무의식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새롭고 세련된 방법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설계된 방법의 프로세스 같은 게 아니다. 퀘퀘한 먼지 냄새가 나는 그 방식으로, 약간의 불편함을 자아내는 그 기묘한 '쓸모없음'을 자아내는 그 방식이다. 또 같은 재료를 무작정 반복해서 준비하는 게 답이 아니다. 아무리 같은 재료라도 간을 달리하며 하는 그 발효의 방식으로 간을 내어야 하는 것. 현실에서 이 상징들이 가리키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내가 최초에 날 싫어지게 만들었던 그 방식, 내가 애지중지하는 몰스킨 노트에 무작정 우겨넣는, 다시는 안 볼 심산으로 마구잡이로 붙들던 그 방식을 일관성있게 가리키고 있다.


내가 노트를 끼고 살기 시작했던 건 14년 5월부터였다. 그때 난 충동적으로 노트를 사고는 첫 줄에 노트에 글을 쓸 때마다 엉뚱하고 이상하고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고 적었었다. 하지만 19년도부터 거의, 아예 노트에 글을 적지 않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습관은 영영 돌아오지 못한 느낌이다. 하지만 난 언젠가 이 습관이 다시 내 삶에 안착될 것이라고 믿었는지 노트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 벌써 12권이나, 새 노트가(!) 쌓여 있다. 이 노트는 내게 새것이 아닌 낡은 느낌을 준다. 한때 품었던 생각과 희망, 그런 감성 따위들이 바랜 채 포장지로 남아있는 것이다. 더 이상 새것스러움이 남아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포장지는 새것으로 있다. 낡은 새것이라고 하는.


꿈은 내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임하고 있는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다만 나의 의식은 모든 걸 담아낼 수 없어 집중할 포인트를 좁히고, 이 낡은 분위기의 부엌이 내게 분명 거리낌을 자아낸다는 걸 인정하는 게 우선이라는 걸 분명히 해 준다. 새로울 것이 없으면, 낡은 것도 없다. 그것들은 시간의 무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시간의 무게를 감당케하는 것에 가깝다. 자기의 시간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 겉돌던 시간이 내 시간이 된다는 것. 무의식은 내게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미 하고 있다고. 내 의식은 이제 이걸 '된장'으로 만들면 된다. 나의 된장은 켜켜이 쌓인 몰스킨 노트 5권과 수백만 자의 스크리브너 노트다. 장과 재료를 구분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무엇을 재료로 삼고 무엇을 장으로 삼을지는, 같은 언어를 두고서 달리 보는 식별안이 요구된다.


다만 좀 의아한 것은 냉장고와 냉동고의 차이다. 이 부분은 내게 좀 알쏭달쏭하다. 현실에서 나의 냉동고는 늘 부족하다. 반대로 냉장고는 소스류를 제외하면 늘 먹고 치워야 하는 신선 제품으로 파도처럼 찼다 비워지길 반복한다. 그런데 꿈에선 냉동고가 텅텅 비어 있다. 이걸 내가 냉동고를, 장기 저장을, 영구성이라는 깊이를 채워야 한다고 느끼게 되면 뭔가 일을 그르치게 될 것만 같다. 즉 무의식이 보내준 친절함을 어리석음으로 받는 꼴이다. 의식의 과도한 욕심을 조절하는 건 꿈을 들여다보는 기초 중의 기초다. 즉 삿된 이성 의식으로 자신의 정신을 들여다보려 하면 반드시 일을 그르치게 된다. 일을 그르친다는 건, 나아가지 못하고 늘 새롭게 문제를 키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우연이, 삶의 확률이 이를 도와줄 수도 있다. 다만 운용과는 거리가 멀다.


난 시간에게 위임해야 한다. 내가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은 매일매일 뜨겁게 요리하는 것이다. 불 조절이 핵심이다. 관찰과 관심을 들여야 한다. 일본에서 난 미소 두 덩이를 사왔다. 미소는 우리 된장과 달리 은근한 불에 먹어야 하는 장국으로, 육수를 낼 때도 넣지 않고 다 끓인 물 마지막에 풀어 넣는다. 또 백(흰색 미소)도 사왔다. 이 녀석의 풍미가 좀 기대된다. 흰색 된장이라니. 우리나라 된장은 끓일수록 맛이 깊어진다. 특히 시중에서 파는 토장이 그렇다. 이 상징을 배워 내 작업 구조 태도로 가져가라고, 나의 무의식은 일러주는 것이다. 젊은 시절 치기어린 나는 요령이 부족해도 참 부족했다. 그 결과 엎지르고 말았다. 이제는 다시 요령껏 조리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내 정신적 자료는 이미 차고 넘친다. 꿈에서 무의식은 계속 내게 '넌 지금 재료가 많아도 너무 많아 충분해'라고 상징들을 보여준다. 과도함이 아닌, 감당 불가가 아닌 그저 많은 게 나로선 매우 가볍고 당연한 느낌이다. 문제는 나의 조급함과 담아내는 그릇의 부족이다. 그래서 무수한 책 더미를 무너뜨리게 하거나, 도구를 잘 쓰지 못해 설움을 받거나 한다. 꿈에서 어마무시한 책 상아탑이 자주 등장한다. 책 더미는 내 방에 늘상 있었던 것으로(서재가 없어, 부족해서 책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있다) 뭔가 내 삶 그대로인 느낌이지만, 이걸 나의 부주의로 중심을 잃게 해 무너지게 하는 건 전적으로 내 상태다. 분명 꿈에서 나타나는 책 상아탑은 모두 '내 책들'이라는 감각이 있다. 그래서 친근하고 내것이다. 다만 이런 상징은 좀 조심해야 한다.


무의식의 상징에 대해 현실의 내가 의식적인 작업을 조금 진행하면 늘상 이렇게 곧바로의 화답을 해주는 정신의 대화가 참 재밌다. 이제는 담는 것과 더불어 된장을 배울 차례다. 나의 언어를 과도하게 다뤄 태우지 말 것. 중간 간을 봐서 판단하지 말 것. 깊이에 집착하지 말 것. 발효는 내가 하는 게 아닌 시간이 하는 것. 나는 그걸 돕는 역할. 이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무의식은 일러 준다. 역시 낡은 느낌이 뭉근하다. 내 감정이 그슬기 전에, 더 밤이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조리를 시작해야겠다. 이 밤의 뭉근 열기가 태양에 사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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