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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Aug 08. 2018

#12. 나는 나와 제일 친해요

친구 없는 삶에 익숙해지기

파리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S가 퇴사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 비로소 양말을 얻은 도비에게 다정한 축하를 아끼지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서늘했다. 주말 중 하루는 꼭 나와 보내주었던 S였다. 이렇게 쨍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약속 없는 주말이라니. 서운하고 낯설었다.


나는 이곳에 친구가 없다. 그나마 남아있던 S도 떠나갔으니 진짜 혼자가 되었다. 삼 년이 넘도록 이렇게 친구가 없기도 힘든데 그렇게 되었다. 바깥 활동이 금세 피곤한 이 구역의 집순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비사교적인 인간으로 태어나 3n 년을 살아왔기에 특별히 사람이 그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벗이 있었으면 생각할 때도 있긴 했다 (특히 밤 산책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바람만큼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다 떠나갔다. 곧 떠나버릴 유학생이나 여행객들과 진득하게 정을 나누는 일은 번번이 실패했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다 모인 제각각의 인간들 중에서 나와 통하는 한 사람을 찾기란 더더욱 어려웠다. 스터디나 친목 등의 이유로 드문드문 만났던 사람들은 '지인'에 머물렀는데, 그들과 적정한 정서적 거리를 지키며 웃고 떠드는 일은 피로했고 하나둘 피하다 보니 아무도 만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혼자가 되었다. 혼자 있어도 하는 일은 많다. 청소도 해야 하고, 유튜브 영상도 봐야 하고, 최애 덕질도 해야 하고, 일기도 써야 하고, 한국 쇼프로도 봐야 하고, 친구가 보내온 시집을 알사탕처럼 꺼내 읽거나, 떡볶이나 밤 라테 같은 것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집순이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외출도 잦은 편인데 공원에 책 읽으러 가고, 번역 기사를 쓸 때는 먼 동네의 카페를 찾아다니며, 공돈이 생기면 신나서 쇼핑을 간다. 그리고 걷는다. 계절과 관계없이 정말 많이 걷는 것 같다. 센 강에서 일몰을 볼 때면 이 순간을 나눠가질 누군가가 있었으면 싶지만 몸서리치게 외로운 건 아니다. 참 이상하다. 서울에서는 항상 외로웠는데. 자그마한 자취방에서도, 바글거리는 사람들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이상한 외로움이 있었다. 육중한 사각의 건물들, 거대한 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들, 표정 없는 군중이 우글거리는 차가운 금속성의 도시에서 나는 너무 작았고 늘 소외된 기분이었다.


이곳에서는 가족도 친구도 없지만 따뜻한 나무를 만지는 기분이다. 누군가와 함께이든 혹은 아니든 언제나 내 곁에는 내가 있는 그런 기분. 내가 나를 꼭 붙들고 있는 기분. 이 나라에서 유독 나는 나와의 사이가 좋다. 아닌 게 아니라 파리에서 누구와 제일 친하냐고 물어 오면 "나는 나랑 제일 친해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이건 친구도 없는 놈의 정신 승리나 웃픈 소리가 아니다. 돌아보면 자신과 친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이상 속의 나와 실제의 내가 늘 충돌하고 불화하는 사람, 바깥으로만 나돌며 나를 방치하는 사람, 과거의 나와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아마도 파리라는 도시에 내재된 느슨한 리듬이 우리 우정(?)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 오롯이 혼자 있다 보면 내가 나에게 말 거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나는 참 많은 것을 내게 묻는다. 무엇이 먹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아프진 않은지, 지금 행복한지.


"퇴사 후 여행을 통해 나 자신을 찾았다" 류의 고백도 기실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상에 잔뜩 엉겨 붙어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모른 채 살다 보면 나 자신이 밀가루 반죽처럼 느껴지곤 한다.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생활과 한 덩어리가 된 삶. 그럴 때 여행이나 퇴사 같은 사건은 참 좋은 기회가 된다. 째깍째깍 쉼 없이 흘러가는 일상의 리듬에서 벗어날 기회. 그 속에서 온전히 혼자가 될 수 있는 기회. 내가 나와 대화하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 내가 나와 친해지면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꼭 "나 자신을 새롭게 찾은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굳이 기회를 만들지 않아도 365일 이 느려 터진 도시에서 홀로 지내야 하니까. 무도의 <친해지길 바래>처럼 내가 나와 친해지도록 온 우주가 돕고 있는 느낌이랄까. 가끔은 타인의 온기가 그리울 정도로 (잠깐 왜 눈물이 나지?).                  


의도치 않은 폐쇄적인 생활로 인해 걱정되는 점도 있다. 안 그래도 모자란 사교 스킬이 갈수록 형편없어진다는 점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밥벌이를 위해 최소한의 대면 관계는 맺고 산다는 것이랄까. 어색한 침묵을 메우려고 허둥대며 겨우 찾은 말이 거지 같을 때, 적재적소에 능숙한 리액션이 나오지 않아 내적으로 고군분투할 때면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동시에 흔들며 행진하는 기분이 든다. 가장 두려운 순간은 보편적(이라고 짐작이 되는) 웃음코드를 가진 사람들이 1도 재미있지 않은 나 자신을 발견할 때다. 다수가 가진 폭넓은 공감대가, 그 주파수가 나를 비껴가고 있다는 신호다. 관심도 없고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에 다들 발 구르며 웃을 때, 나는 혹여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까 가짜로 웃는다. 손뼉도 쳐가면서. 그때 나는 내 사회성 결여를 의심하는 한편, 건너편에 앉은 사람의 어깨를 흔들며 절박하게 묻고 싶어 진다. 이게 웃겨요? 진심으로?


떠나기 전 S가 우리 집에 두고 간 접시와 컵은 죄다 두 짝이었다. 외톨이 외노자를 두 번 울리냐고 항변하는 내게 S는 나가서 친구를 좀 사귀라며 잔소리를 했다. 가벼운 사회 활동이라도 해야 할까 싶었지만 역시나 혼자 보내는 일상에 적응하는 쪽이 더 쉬울 것 같다. 무더위가 가실 때쯤이면 S가 없는 생활에도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여름이 물러난 자리에서 또 한 걸음 가까워질 나 자신을 기대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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