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나무 Mar 30. 2020

#40. 몬트리올의 안부

찻잔의 안팎으로 부는 폭풍 속에서

이사를 했다. 새로운 집에서 보내는 일곱 번째 날. 예전에 살던 곳에서 지하철로 45분이 걸리는 꽤 먼 곳이다. 고요하고 정돈된 거리가 마음에 들었다. 근처에 큰 공원도 있다. 코로나의 여파로 헬스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인적 드문 새벽에 이곳에서 조깅을 한다. 동네에 아시아 사람이 드물어서 새삼 낯설다. 새로운 집주인에게 물었더니, 포르투갈, 프랑스, 퀘벡 사람들이 많이 모인 동네라고 한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혐오 범죄가 두 건이나 발생해서인지, 길을 걸으며 자꾸만 사람들의 호의와 적의를 살피게 된다. 이민자가 많은 무색무취, 회색의 도시 몬트리올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임을 자각하는 요즘. 새로운 집에는 홈메이트가 없다. 집주인이 베이스먼트를 반지하 형식으로 개조해서 자취가 가능한 별채를 만들었고, 나는 이곳에 혼자 세 들어 산다. 반지하라서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나름대로 아늑하다. 필요한 가구며 식기까지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뜨내기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이사를 하긴 했지만 아직도 얼떨떨하다. 충동에 가까운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다정한 미미의 집은 그대로이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이 그리웠다. 이제는 곁에 사람의 온기가 없어도 (정서적으로) 괜찮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이유도 있다. 미국에서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미미가 14일 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고, 그동안 지낼 곳을 찾아야 했다. 격리기간이 끝나도 당분간은 혼자 지내는 게 안전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나와 연애 비슷한 것을 했던 A가 갑작스럽게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다음 세입자를 찾고 있었다. 일주일 만에 급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정부 지침으로 일하던 레스토랑이 휴점 했고, 언제 다시 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집세도 학비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언제 국경이 닫힐지 몰라 서둘러야 했다. 그렇게,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A가 살았던 공간이기에 이곳을 택했다. A가 없는 A의 공간에 혼자 남겨진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남고 싶었다.


A를 만나는 한동안 일상이 완전히 사라졌었다. 2월부터 지금까지 내 생활이 어땠는지 정말로 기억이 없다. 다만, 그 애가 있을 뿐이다. 학원에 가고, 운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웃고 떠드는 여일한 일상이었겠지만, 내내 빈 껍데기였다. 머릿속은 그 애의 세계, 그 애의 손길, 그 애의 눈, 그 애의 싸움, 그 애의 몸, 그 애의 리듬.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짧았지만 뜨겁고 즐거운 순간들로 가득하다. A를 만나면서 부서진 언어로도 누군가의 세계를 깊숙이 누빌 수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놀라우리만치 언어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생김새, 문화, 언어, 성향, 가족 환경, 교육 어느 하나 공통된 것이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다. 언젠가 A에게 '너와 함께 있으면, 온전하지 못한 언어로도 온전히 이해받는 느낌'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이던 A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사나 연애 따위의 신변 변화가 찻잔 속 폭풍이라면, 찻잔의 바깥에서도 폭풍은 거셌다. 생활이 크게 변했다. 캐나다에서도 걷잡을 수 없이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어서 학교며, 어린이집이며, 가게며, 식당이며 모두 문을 닫았다. 어학원도 덩달아 문을 닫았다. 처음엔 2주 간이었던 결정은 5월 1일까지 늘어났고, 그마저도 불확실한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온라인 수업을 듣는다. 매일 아침 화상 회의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화면 공유 기능으로 교과서를 본다. 불편했던 온라인 플랫폼은 차차 적응되어가는 중이지만, 심심한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너무너무 심심하다. 수업시간을 떠나서 친구들과 유치한 장난을 치고, 시끌벅적하게 점심을 먹고, 함께 숙제를 하던 시간들이 그립다. 학원의 가십거리를 소곤대거나, 선생님의 흉을 보는 것도 즐거웠는데.


헬스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예전만큼 운동도 못하게 되었다. 장 보는 것 말고는 하루 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힌 생활. 그래서인지 하루가 유난히 길다. 요즘의 일상을 기록해본다면, 새벽에 눈을 뜨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 앞 공원을 뛴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 오후 한 시 강의가 끝나면, 간식을 와그작거리며 모로 누워 넷플릭스를 본다. 너무 늘어졌나 싶은 생각에 죄책감이 들면, 하찮은 몸을 일으켜서 유튜브를 틀고 홈트 영상 몇 개를 따라 한다. 늦은 오후엔 집안 정리를 하거나 가끔 야채나 우유를 사러 집 근처 마트에 간다. 해가 지면 책상에 앉아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복습도 하고, 숙제를 한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간단한 저녁을 만들어 먹고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까지 하루 온종일을 집 안에서 보낸 적이 있었나 싶다. 조금 걱정이긴 하다. 일주일이나 이주일 정도는 괜찮지만 이 생활이 5월, 6월까지 계속된다면?


그래도 이렇게 답답한 게 나뿐만은 아니라서, 주변 사람들의 연락이 부쩍 늘었다. 나도 시차에 맞게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주 전화를 건다. 어학원 친구들과는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서 시시한 농담을 하고, 해가 지면 화상 회의 플랫폼에 방을 만들어 수다도 떤다. 어느 날은 한 명이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각자 화면을 틀어 놓고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한다. 특별히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는 느낌이다. 감염에 대한 공포, 시국이 주는 불안, 이국에서 느끼는 외로움, 방 안에서 느끼는 고립감 기타 등등 부정적인 감정을 이기는 우리만의 연대인 셈이다.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요즘. 찻잔의 안팎으로 불어오는 성마른 폭풍들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다시, 넉넉하고 다정한 안부를 전할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39. 우리를 살게 하는 기억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