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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May 06. 2024

소파 위의 생선

우리에겐 아지트가 필요해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된다.” 


어린 시절 아빠가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나는 정말 누워있는 것을 좋아한다. 언제나 좀 더 열정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고 싶다. 직장에서도, 친구를 만나는 카페에서도, 여행지에서도 나는 눕고 싶다. 몸을 곧추세우고 앉거나 이족보행을 하면서 내 밥벌이를 하는 건 왜 이다지도 힘든지. 

    

자연스레 집순이로 성장했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울 때 사람들은 좀이 쑤셔서 힘들어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원래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거실 소파 위에 담요를 똘똘 말고 폭신한 쿠션으로 머리를 받치고 휴대전화를 끼고 눕는다. 이 담요 안의 세계가 나의 아지트다. 담요 밖 세계는 위험하고 험난하지만, 이 안은 아늑하다. 눈이 커다란 회색 고양이와 꼬리 끝만 하얀 치즈 고양이까지 옆에 있으면 완전한 천국이 된다. 고 보들보들한 것들을 주물럭거리며 재미난 책을 읽으며 킬킬거리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

      

이 작은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나는 내 삶을 바쳤다. 지난 시간은 모두 이 한 몸 눕힐 작은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긴 여정이었다. 지금도 나는 이 공간에 안전하게 눕기 위해 밥을 먹고, 씻고, 공부하거나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난다. 아지트에서 충전한 힘으로, 그리고 아지트를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사람 구실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직장에서 힘들어질 때면 종종 집 사진을 꺼내서 봤다. 소파 위를 뒹구는 고양이 사진을 보면 집 떠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그리움이 복받쳐 올랐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집에 가고 싶어.”


가끔 소파 위에 누워있는 내 모습은 거대한 생선 같다. 기다랗고 커다란 몸체에 간헐적인 꿈틀거림, 아무 생각 없는 눈동자. 스스로를 돌아보다 가끔 활기찬 사람의 하루는 어떤 것일까, 체력이 좋은 사람은 여가를 어떻게 보낼까 상상해본다. 그러고 상상만으로 지친다. 그렇게 살려면 다음 생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내리니 다시 더없이 나의 아지트가 사랑스럽게 보인다. 이곳은 무기력한 내가 자유롭게 무기력하게 있을 수 있는 곳, 더 깊은 무기력으로 빠지지 않게 해주는 나의 휴식처다.      


그래, 여기서라면 생선이라도 괜찮다.     


한 마리 생선으로 파닥거리며 세상의 모든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에게도 저마다의 아지트, 쉼터가 있기를. 이 거칠거칠한 세상에서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며 사랑하고,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장소 하나쯤은 모두에게 허락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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