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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May 06. 2024

사랑을 건네준 사람

보랏빛 향기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예쁜 두 눈에 향기가 어려 잊을 수가 없었네     

언제나 우리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얘기들을 만들어 가요     

외로움이 다가와도 그대 슬퍼하지마

답답한 내 맘이 더 아파오잖아     

길을 걷다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대 나에게 사랑을 건네준 사람     

                                                      - 강수지의 노래, <보랏빛 향기>     



코흘리개 시절, 외갓집에서 나는 슈퍼스타였다. 딸이 귀한 그곳에서 어른들에 둘러싸여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를 열창하곤 했다. 한 푼 두 푼 쥐어지는 용돈이 쏠쏠했다. 그때는 강수지의 여리고 애절한 목소리가 그저 좋았고, 나이가 한참 든 지금은 이 노래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다 좋아한다. 사랑에 빠진 설레는 마음을 아름다운 선율과 가사로 잘 표현한 명곡이다.     


그렇게 <보랏빛 향기>를 많이 불렀지만, 내게 사랑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언제나 사랑을 하고 싶었지만, 하늘 꼭대기에 붙은 눈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을 소개받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했던 생각은 ‘앗,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못생김이군’이었다. 첫날 우리는 파스타를 먹었고 영화와 게임 이야기를 조금 한 뒤 다음에 맛있는 카스텔라 집에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두 번째 만났을 때, 그이는 카스텔라를 들고 역 앞에 서 있었다. 같이 가기로 했는데 왜 먼저 사 왔냐고 묻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인기가 좋아 빨리 매진되기도 한다는 말에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꼭 내게 그 일본식 카스텔라를 먹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감동했다. 그 마음 씀씀이도 그렇고, 맛있는 걸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니까.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한강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나는 날씬해 보이려고 하이힐을 신었다. 그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둘 다 한강 지리에 무지한 탓에 바람을 맞으며 강변을 걷는다는 서정적인 풍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딘지도 짐작이 안 되는 한강 주변의 낭만 없는 콘크리트 길을 마구 걸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하염없이 걸었다. 발이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은 ‘길을 걷다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 중에 나에게 사랑을 건네준‘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한 번도 안 싸운 것은 아니나 거의 싸우지 않았고, ‘나’밖에 모르던 모습을 버리고 상대를 먼저 생각했다. 둘 다 사랑 덕에 철이 들고 상냥한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러다가 매일 보지 않고는 참을 수 없게 되었고, 함께 눈 뜨고 눈 감고 싶어서 결혼했다.      


남편을 만나고 가장 좋은 점은 내 감정과 표현이 언제나 단순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미움, 슬픔, 애증 같은 부정적인 감정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저 매일 사랑을 말하면 된다. 언제나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근 것처럼 아늑하고 훈훈하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같은 시기에 같은 대학을 다녔었다. 빛바래고 싱겁던 대학 생활이었지만, 그 당시 어디선가 남편을 스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괜히 설레고 기분이 좋다. 함께 있는 오늘은 남편과 서로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얘기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시간이 내일로 계속 이어지리란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남편의 보랏빛 향기 덕분에 나는 과거도 미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사랑을 유지 시켜주는 남편에게 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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