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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May 13. 2024

[학교 이야기] 안전과 책임, 그리고 행복의 사이

고2 남학생들과의 수학여행

“벨트, 안 채운 사람 없지?”     


여러 번 거듭 묻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버스 안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허리춤을 일일이 확인했다. 들뜬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뒤로 하고 제일 앞 좌석에 앉는다. 드디어 어깨에 두른 마이크를 떼어놓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창밖으로 4월의 제주 바다가 넘실거렸다. 에메랄드빛 파도가 검은 석벽에 부딪혀 흰 물거품으로 부서지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냈다. 주상절리대로 향하는 그 잠깐이 내가 제주를 만끽한 유일한 순간이었다.     


우도, 용머리 해안, 한림공원, 만장굴……. 제주 곳곳으로 아이들을 인솔했다. 낯선 곳에 오면 아이들은 행여나 무리에서 떨어질까 교실에서보다 말을 잘 듣는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풍경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서른 명이 넘는 고2 남학생들을 내 시야에 모아두고 한 명이라도 벗어나려 하면 마이크로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가 부리로 쪼아댔다. 아이들은 나를 성가셔했지만 사고는 늘 한순간에 일어나는 법이다. 어젯밤 갑판에서 진행된 불꽃놀이 때도 신명 나게 춤추는 아이들 중 누구 하나가 바다에 빠질까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당연히 불꽃은 보지도 못했다.          


섬에 도착한 이틀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들뜬 표정이었다. 돌하르방 옆에서, 유적지에서, 탁 트인 바닷가에서 아이들을 담아 셔터를 눌렀다. 그 나이 때만 가질 수 있는, 답답한 교실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싱그러운 웃음들이 귀여웠다. 시커먼 남학생들의 머리에 유채꽃을 꽂아주니 부끄러워하면서도 싫지 않은 기색이다. 덩달아 활짝 웃으면서도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교사로서의 내 생활신조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였다.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놀고 있지만, 아이들은 금세 나를 따돌리고 어딘가에 숨어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아니면 삥을 뜯거나 삥을 뜯기거나.     


돌아가기 전날 밤이 가장 위험하다. 첫째 밤, 아이들은 여객선에서 구워지거나 얼려지며 잠을 설쳤다. 둘째 날엔 종일 낯선 곳에서 내돌려진 끝에 피로에 쓰러져 단잠을 잤다. 오늘도 어제처럼 쉴 틈 없이 돌아다니긴 매한가지였지만, 그들이 마지막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레크리에이션이 끝나 취침 시간 무렵이 되자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방을 바꾸면 안 되냐고 물었다. 단칼에 거절했다. 흔히 하듯 단순하게 번호순으로 네 개의 방에 나눠 아이들을 배정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의 성격과 관계를 고려해 최대한 ‘어색한’ 분위기가 나도록 조를 편성했다. 조 편성이 왜 이 모양이냐는 아이들의 원성에는 미소를 담뿍 담아 “선생님은 너희가 수학여행 때 친하게 지내는 걸 바라지 않아요.”라고 진심으로 답해주었다.          


그날 밤에도 다른 선생님들과 편의점과 리조트 출구 곳곳을 지켰다. 몰래 내려오던 아이들이 몇 번이나 우리를 보고 다시 후다닥 올라가길 반복했다. 그런 시도도 없어질 자정 무렵, 우리 반 환수의 SNS를 봐달라는 신고가 들어왔다. 환수, 민국이, 경태, 형민이(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등등 낮에는 나름 귀여워 보이던 사고뭉치들이 그 안에서 답답함에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들은 알코올 흡수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리조트에 입소하며 숨겨온 주류를 거의 뺏긴 건지 어떻게든 나가서 술을 구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콜택시, 커튼을 찢어서 묶어 베란다로 탈출하기 등등이 거론되고 있었다. 그중 용기를 낸 몇몇이 방문을 열었고, 바로 안전요원과 눈이 마주쳤다. 밤새 복도를 지킬 거라는 요원의 말에 그들은 원통해서 바닥을 쳤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SNS로 실시간 시청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고 당연하게 그들의 논의는 부족한 담력 덕에 실현되지 못했다. 그냥 있어도 예쁘고 어린 풀싹의 내음이 나는데 왜 아이들은 어른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들어서지 못해 안달할까. 옛날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들의 말씀을 어느새 답습하며 아련한 감상에 잠겼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SNS 속 이들은 평상시에도 술·담배를 넉넉히 하는 놈들이었다. 몇 번이나 선도위원회에 올라 날 가슴 치게 했던. 아련함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선생님. 정말 너무, 너무 재미없어요.”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의 방문을 열자 순둥이 찬영이가 벽에 기대앉아 생기 잃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어떤 유흥과 탈선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방 안을 둘러보며 속으로 성공을 자축하고 있을 때였다. 축 늘어져 터덜터덜 짐을 싸는 아이들을 보니 조금 미안했다. 술·담배에 관심 없는 아이들조차 억지로 잠들어야 했던 지루한 밤에 실망이 커 보였다. 친한 친구들끼리 한 방이었다면 밖에 나가거나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소곤소곤 잡담하거나 베개 싸움을 신나게 했을 텐데. 개구쟁이들끼리 모이면 사고를 칠까 봐 다른 아이들까지 희생시킨 격이었다.           


다행히 공항에 도착한 아이들은 예쁜 스튜어디스 누나들(...)을 볼 기대감에 다시 살아났다. 기내에서 아이들이 스튜어디스를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꼼지락거리고 있을 때, 나는 평생에 한 번일 아이들의 수학여행을 내가 망친 게 아닐까 고뇌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가장 기대한 밤이 사라져 낙담했고, 나는 나대로 3박 4일 동안 강박적으로 아이들을 단속하느라 힘겨웠던 여행이었다.         


그러나 시간을 돌린다 해도 나는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크고 작은 행동과 그로 인한 사건, 사고는 모두 교사인 나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무게는 사회의 분위기를 타고 시간이 갈수록 육중해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수많은 규정에 따라 “안돼, 하지 마.”를 남발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럴 때면 때때로, 10년 전 수학여행을 갔던 아이들의 실망한 표정이 지금의 아이들에게 겹쳐 떠오르곤 한다. 



안전과 책임, 아이들의 행복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그 둘이 겹쳐진 좁은 샛길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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