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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May 13. 2024

[우울 이야기] 노후를 걱정하는 어린이는 자라서...

'허잇차!' 걱정의 싹을 자르자

*이전 글을 함께 읽으시면 좋아요~


나는 어려서부터 노후를 걱정하는 어린이였다. 진지하게. 자라나서는 노후를 걱정하는 청년이 되었고 지금은 노후를 걱정하는 중년을 향해 가고 있다. 늘 근심이 끊이질 않았다. 도저히 잠을 줄일 수 없는데 사당오락이라는 말에 반신반의하며 대학을 못 갈까 떨었다. TV 뉴스와 신문 기사에서 청년실업률과 IMF 사태를 보며 낙오자가 될 것을 두려워했다. ‘사랑과 전쟁’을 비롯한 각종 드라마를 보며 남녀 간의 불평등, 시가와의 갈등, 출산과 육아, 배우자의 불륜을 염려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후천적 장애와 난치병, 각종 사회적 갈등에 겁을 먹었다. 이런 우려들은 상상에서 상상으로 이어져 가난하고 비참한 노후로 끝나곤 했다. 인생은 고해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고개를 열렬히 끄덕이며 삶이 싫어지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에게 현재는 매양 '불안한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시간'이 된다. 공부는 앎의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 수단이다. 평생 혼자 먹고살 수 있도록 몇 년을 책에 매달려 교사가 되었다. 매일 광활한 내 몸을 보면 까마득해지는데 남보다 일찍 쭈그러들어 비참해질까 봐 보디로션 바른다. 노쇠하고 병약해질까 봐 울며 겨자 먹기로 싫어하는 운동을 하러 나가고 세끼를 꼬박 차려 먹는다. 문제 상황에 휩쓸릴까 봐 각종 재해, 법적 분쟁에 대처하는 글을 꼼꼼히 읽고 스크랩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여러 보험에 가입한다. 믿지도 않으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길까 싶어 무속인을 만난 적도 있다. 그에게 “얼굴에 돈 생각이 가득하구먼”이란 소리를 듣도록 노후에 필요한 자금을 시뮬레이션해보고 계획이 흐트러질까 봐 기후 위기를 걱정한다. 아무리 미래를 대비하려 애써도 마음먹은 대로 살기는 불가능하기에 결국 과거의 시간은 '후회의 시간'이 된다.


고통을 피하고자 어려서는 참 많은 책을 읽었다. 그 속에서 ‘나’를 벗어난 다른 존재가 되어 잠시나마 삶을 쉬어갔다. 주어진 이야기를 따라가면 확실한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기에 생각을 내려놓고 책 속의 현재를 즐길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짐승이 되고 싶었다. 나무늘보나 레서판다나 카피바라나 쿼카나 판다 같은. (그들의 현실이 어쨌든) 다툼과 먹이경쟁이 적고 느긋한 분위기가 풍기는 그런 동물 말이다. 양지바른 곳에 하루 대부분을 자거나 뒹굴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며, ‘인간 성체가 하면 손가락질당할 나태한 삶’을 꿈꿨다. 미래에 대한 끝없는 근심을 잊어버린, 그런 삶을 꿈꾸며서도 현재를 불행한 시간으로 만들며 우울증의 꽃을 찬란히 피웠다.


 

막막하게 한숨지으며 살아가는 내게 한 장의 캡처 이미지 속 김연아 님이 말씀하셨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그런데 훗날 유퀴즈 방송에 출연한 김연아 선수는 ‘집에 가고 싶다,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 대답이라고 했다.


정신과를 수년간 들락날락하며 약과 함께 의사 선생님께 반복적으로 들은 말도 그러하였다. “폼폼 씨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대부분은 이뤄지지 않을 일들인데 나는 뭣 하러 오만가지 생각을 할까. 다소 머리를 비우고 살아도 남보다 부정적인 망상을 잘할 텐데. 한없이 뻗어나가는 염세적 상상을 멈춰야 우울증도 시들어 갈 것이다. 최근 작게 채소 기도보관법부터 실천하고 있다. 냉장고에 채소를 넣으며 ‘변수 없이 다 먹을 수 있을까? 썩어서 버리는 게 생기면 어쩌지? 아, 벌써 짜증 나.’라는 미래에 대한 염려를 멈추고 그냥 상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잊어버리는 거다. 쓰고 쓰다가 나중에 물러서 못 먹게 된 게 생기면 ‘그렇군.’하고 무심히 넘어가기로 자신과 약속했다.


한 장의 사진이 또 떠오른다. 어느 행사장에서 갑작스레 폭우가 내리자 급하게 물통을 뒤집어쓴 참가자가 반려견에게 자신이 먹던 햄버거를 나눠주고 있었다. 어떤 미래엔 심한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 대충 평화롭기를 기도하며 살던 나는 우산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근처에 처마가 있거나 양동이가 있을 수는 있다. 없다면 쫄딱 젖겠지만, 또 시간이 되면 마르겠지.(이걸 쓰는 순간에도 잠시 비를 맞고 감기에 걸려 사망하는 결말까지 상상했지만.) 그럴 때 옆에서 같이 비를 맞는 존재에게 젖은 햄버거라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현재를 위해 현재를 살아야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할 수 있다. 오늘도 나를 가르친다. "현재는 대강대강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사는 거고, 미래는 불안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걱정으로 부풀어 빵빵했던 마음속 공간에 새로운 감정이 차오르길.


 


+ 여기까지 쓰고 오랜 삶의 습관대로 "대충 살아도 되는 걸까?'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었지만 속으로 ‘허잇차!!!!’ 외치고 부정적인 상상의 싹을 잘랐다. 언제나 나와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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