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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May 20. 2024

[학교 이야기] [지난 이야기] 봄맞이

3월의 선물

*2023년 3월에 쓴 글입니다. 


봄은 내게 뜀박질이었다. 학생이었던 때나 교사가 된 지금에나 새 학기라는 것은 나를 턱 끝까지 숨 차오르게 했다. 모든 게 새로운 봄, 새 학기에 적응하려면 뛰고 또 뛰어야 했다. 한시도 멈출 틈이 없었다. 3월의 새 교실에 들어가 가득 차 있는 아이들을 보면 숨이 막혔다. 그 이름들을 하나씩 외우고, 긴장한 나를 숨기고 태연한 척하느라 뇌도 심장도 달음박질쳤다. 낯선 공기와 어수선한 술렁거림, 미묘한 신경전에 휩쓸려 그 안에서 중심을 잡으려 발버둥 치다 보면 어느새 봄은 끝나있곤 했다.      


봄이 아름다운 줄은 휴직하고 나서야 알았다. 남들은 다 출근하고 학교에 가느라 분주할 시간에 천변을 걷다가 새순들을 만났다. 여린 잎사귀의 연둣빛들이 고와서 손끝으로 조금이나마 누려보았다. 아주 보드랍고 새것 향기가 났다. 가슴이 벅차오른 김에 그동안 못 가본 봄꽃 구경도 하러 갔다. 해마다 아이들과 벚꽃 완상을 했지만, 사방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그들을 붙잡느라 꽃은 도무지 볼 틈이 없었기에 설렜다. 탄천을 따라 걸으며 벚꽃 비를 맞았다. 올려다보니 하얗고 우련하게 붉은 꽃들이 시야에 가득했다. 그것들은 바람을 맞이해 쉼 없이 나와 땅바닥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돌아오는 길에 돌나물 한 봉지를 사 들고 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해 주시던 돌나물 된장무침을 먹어야 입안까지 봄이 실감 날 것 같았다. 엄마는 몹시 당황하며, “조리법 같은 건 없는데. 느낌대로 적당히 넣는 거지.”라고 말했다. 고수나 할 수 있는 그 말에, 뭘 넣는 지라도 알려달라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빠가 옆에서 “식초, 고추장, 된장, 참깨!”라고 대신 답해줬다. 아빠가 말한 재료들만 넣었더니 엄청나게 맛이 없었다. 결국 인터넷에서 조리법들을 검색해서 조금씩 양념의 양을 바꿔보며 내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춰보는 수밖에 없었다. 쌉쌀하고 새콤달콤하게 이 맛이다 싶을 때까지 몇 번이고 돌나물을 무쳐 먹었다. 이렇게 봄나물을 제때 가득 먹은 것도 이번 봄이 처음이구나.     


새순과 꽃잎처럼 여린 봄, 제철 나물처럼 향긋하고 새콤달콤한 봄을 맞이해 봄의 생명력이 내 안에 차올랐다. 내가 한숨 돌리고 나서야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미안해졌다. 그간 내가 추위와 어둠을 이겨낸 따뜻한 햇볕도, 활기찬 바람도 모르고 아이들에게 영혼 없이 봄맞이 시를 가르쳤음을 알았다.     


봄이 오면 나는 또 교실에서 달리기를 시작할 것이다.(달리지 않고 싶지만 3월의 학교는 너무 바쁜 곳이다.) 다만 이제는 무작정 앞만 보고 가슴 터지도록 뛰지 말아야겠다.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 연분홍빛 벚꽃과 붉은 매화까지 다 둘러보고 아이들의 손에도 하나씩 쥐여줘야지. 봄 맞아 자라나는 냉이, 곰취, 달래, 미나리, 쑥처럼 너희가 건강하고 생기 넘쳐 향기롭다고도 아이들에게 말해줘야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봄맞이 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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