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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May 20. 2024

[지난 이야기] 최초의 프러포즈를 당신에게

장국영을 기억하며

*2023년 4월에 쓴 글입니다. 



나는 미남이 좋다. 


어린 시절부터 미남을 찾아 헤매었다. 초등학교에서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친해질 만한 아이를 찾는 것도, 담임 선생님을 관찰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나는 반을 둘러보며 준수한 외모의 남자아이가 있는지 살폈다. 반에 익숙해지고 탐사가 끝나면 복도를 서성이며 미소년과의 우연한 스침을 꿈꿨다. ― 다행히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있어도 뭔 일을 저지르진 않았다. 얼굴을 밝히지만 동시에 지극히 소심했으므로.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만났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명절 특선영화로 방영되는 ‘천녀유혼’에서 나는 장국영을 처음으로 보았다. 수려하면서도 반듯한 얼굴, 깊은 사연이 깃든 듯한 눈동자에 그대로 홀려버렸다. 배역과 배우를 구분할 나이가 아니라서 그가 맡은 역할의 선량함은 내 안에서 그대로 그의 성격으로 굳어졌다. 당장 그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이전까지의 가벼운 마음이 아니었다. 사람 얼굴을 지독히 구별 못 하는 내가 다른 영화에 나온 그를 알아볼 정도였으니. 이후 그는 내 안에서 미남의 원형이 되었다.     


당시 우리 집엔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었다. 그때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없었다. 부모님은 나를 (공짜로 얻은 표로) 소극장에 데려가 어린이뮤지컬을 보여줄지언정, 극장에는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가 장국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1년에 한두 번 명절 특선영화에서 뿐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 친구 손을 잡고 영화관에 첫발을 들여놓았으나 그즈음엔 홍콩영화 붐이 꺼진 지 오래였다. 대신 나는 가끔 DVD를 사들이거나 대학 도서관 자료실에 가서 그를 보았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종횡사해, 가유희사, 백발마녀전, 금지옥엽, 동사서독, 야반가성, 해피 투게더, 이도공간, 패왕별희, 아비정전…….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를 TV화면이 아닌 영화관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떠난 후 추모 기념으로 옛 영화들이 개봉될 때였다.     


이제 10대들은 그를 모른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진 홍콩 배우를 어찌 알겠는가. 이젠 DVD 플레이어도 쓰이지 않고, 나 역시 더는 추모 기념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지 않는다. 몇 종 나오지도 않은 그의 영화 블루레이를 살까 말까 고민하고, 때때로 그가 보고 싶으면 그저 OTT를 튼다. 화면 속의 그는 젊고 아름답다. 태연하게 유머를 날리고, 아련한 눈빛으로 연인을 바라보고, 비장한 죽음을 맞이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길래 대화 한번 나누기는커녕 실물도 못 본 이를 그리워하게 되는 걸까. 이렇게 잊히지 않는 것은 영화 속에 녹아들었을 그의 혼도 아름답고 섬세하기 때문일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던 유약한 아름다움은 그만의 것으로, 내 안에 첫사랑처럼 남아 세월의 흐름을 따라 흐려지되 쉽게 지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     



참고로 내 남편은 어렴풋이 장국영을 닮았다.러포즈를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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