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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May 27. 2024

우리집 디톡스, 쉽지 않아.

버림과 소유의 줄다리기

우리 가족은 작고 낡은 단독주택에 아주 오래 살았다. 내가 코흘리개 국민학생일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20여 년을. 세월이 흐르는 만큼 물건은 점점 쌓이는데, 엄마는 아까워서 무엇 하나 버리지 못했다. 어느 날 네 가족이 앉기도 힘든 좁은 거실을 보다가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싶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마당의 멍돌이가 나보다 더 넓은 공간에서 사는 것 같았다.           


내가 손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내 방에 뛰어들었다. 대학전공서와 빛바랜 책들, 더는 착용하지 않는 액세서리와 옷, 서랍 속을 굴러다니는 구질구질한 잡동사니, 초중고대학 상장, 혹시나 하여 챙겨둔 예쁜 상자들, 오랫동안 모아온 편지들. 모조리 쓸어 담아 쓰레기봉투 몇 개를 꽉 채웠다. 엄마는 어떻게 만화책만 남겨놓고 다 버릴 수 있냐고 한탄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서랍과 책장 속 물건과 물건의 사이가 조금 넓어진 것으로 어느 정도 가슴이 후련해졌다.     


이후 직장인이 되고 자취를 여러 해 하면서 나는 많은 물건을 사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깨우친 건 아무리 열심히 정리해도 애초에 여유 공간이 없다면 정돈 상태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리하려면 공간을 마련해야 하고, 공간을 마련하려면 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여름의 끝에도 나는 많은 물건을 버렸다. 또다시 쌓인 책, 자리만 차지하는 공기청정기, 살이 쪄서 입을 수 없게 된 옷, 상하지 않았지만 영영 먹을 일이 없을 식품들, 주인님(고양이)이 흥미를 잃은 장난감, 한때 좋아했던 뮤지컬배우 그룹의 음반, 남편의 건프라 등등. 자잘한 것까지 말하자면 끝이 없다. 그렇게 버려진 물건들은 100ℓ 쓰레기봉투 4개 정도를 가득 채울 양이었다.           


버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선물이다. 특히나 성의와 추억이 깃든 선물들. 결혼을 하고 집을 합치고 보니 남편은 연애 때 내게 받은 선물들을 포장지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좁아터진 신혼집에 이 무슨. 나는 가차 없이 그것들을 쓸만한 알맹이만 골라 남기고 싹 버려버렸다. 남편이 “이 추억파괴자!”하고 비난했지만, 이를 무시한 채 나는 작별의 시간을 줄 테니 아쉬우면 사진을 찍어 간직하라 했다. 남편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것은 거의 그런 것들이다. 정이 붙어 헤어지지 못한 채 눈과 마음을 어지럽게 하며 담고 있지만, 막상 버리면 금방 잊어버리는 것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집은 텅 비어있느냐. 아니다. 이 집엔 나 혼자만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 전 남편의 자취방에 갔을 때부터 뻔히 예견된 일이었다. 좁디좁은 그 집에는 사람 하나 누워있을 공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책장으로 감당이 안 되는 책들이 절의 돌탑들처럼 바닥을 가득 메우고 어지럽게 난립해 있었다. 책과 책 사이를 일자 걸음으로 걸어야만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다. 달걀을 품는 암탉처럼 모든 책을 품으려 드는 그를 설득해(이걸 신혼집에 다 가져가면 우린 어디서 자!) 중고 서점에 일부를 팔았다. 42만 원을 벌었다. 우리는 그 돈으로 차를 빌려준 남편 친구와 함께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결혼을 한다고 사람이 갑자기 변하진 않는다. 남편은 여전히 암탉처럼 행동한다. 현관 팬트리에는 그의 각종 구형 게임기들이, 거실 팬트리에는 보드게임이, 거실 장에는 게임시디가 가득 차 있다. 큰 방 한 면을 채운 슬라이딩 책장에는 블루레이와 책이 빽빽하다. 드레스룸 선반과 서재 한구석에는 조립과 도색을 기다리는 건프라가 쌓여 있다. 아아, 절반 정도만 버리면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버리는 나와 소유하는 남편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우리 집은 쾌적의 언저리에 닿을락 말락 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안에서 나는 소망한다. 내 기억력만큼, 내 손이 닿는 데까지만 소유할 수 있기를. 물론 맘대로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격언으로 유명한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도 아이를 낳고 정리를 포기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나는 계속 버림과 정리를 부르짖는다. 정리는 공간과 물건 중 무엇을 귀히 여기느냐의 싸움. 


비우는 만큼 정신이 맑아짐을 외치며 계속 공간을 지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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