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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May 06. 2024

버섯의 글쓰기

내가 글을 쓰는 이

‘글쓰기’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숙제’다. 초등학생 때 개학이 얼마 남지 않으면 나는 엄마에게 붙잡혀 밀린 방학 일기를 몰아 쓰고 메마른 감성을 마른걸레처럼 쥐어짜 독후감을 썼다. 기상청 ARS 서비스를 통해 지나간 날씨를 정확하게 기록해 치밀한 성정을 갖추었으며, 독후감 우수사례 모음집을 참고하여 좋은 글의 구조와 문장력을 습득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나는 남의 글을 내 글에 교묘하게 녹여내는 신묘한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이 기술은 대학생 때까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랬기에 어린 시절의 나는 글쓰기가 몹시 싫었다. 숙제 기한에 맞춰 마음에 없는 글을 억지로 지어 써내는 것도 곤욕이었지만, 손이 아픈 것도 싫었다. 온종일 글씨를 잘 쓰려 노력했지만, 힘만 잔뜩 들어갈 뿐 생산물은 아름답지 못했다. 조금 더 자라서 컴퓨터와 프린터기를 봤을 땐, 이런 게 있는데 왜 세상이 그동안 날 괴롭혔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한 감정까지 들었다. (오른쪽 셋째 손가락의 첫마디뼈가 움푹 팰 정도로 연필을 잡았는데 지금도 나는 글씨를 개떡같이 쓴다. 컴퓨터와 프린터기 만세!) 돌이켜보면 이 시기에 자발적으로 쓴 글은 약간의 일기와 편지를 빼곤 없다시피 하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본인이 원해서 글을 쓰게 됐다.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다이어리 메뉴를 재미 삼아 건드려 본 것이 시작이었다. 비공개 글은 없었다. 되도록 전체 공개이되(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가끔 부끄러운 일들만 이웃 공개로 일기를 썼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꼬박꼬박 매일매일 기록했다. 소소한 일상, 비뚤어진 마음, 어처구니없는 망상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 솔직한 헛소리에 친구들이 달아주는 댓글이 쏠쏠한 재미였다. 우리는 모두 어렸고 이유 없이 지쳤으며, ‘자개감: 자신을 개같이 여기는 마음’, ‘자심감: 자신을 심각하게 여기는 마음’ 같은 말들을 만들며 놀았다. 이때의 내게 글쓰기는 나를 배설하듯 비워내고, 그 비워낸 것을 고스란히 모아두는 것이었다. 결국 너무 생생하게 날 것이라 투데이 기능을 보다 수치심에 모조리 삭제해버렸지만. 이제는 글을 지워도 미성숙한 나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때의 일기가 아쉬워진다.     


지금도 글을 쓴다. 막연히 잘 쓰고 싶다는 기대를 안고 글을 쓴다. 글을 잘 쓴다고 내게 좋을 일은 별로 없다. 직장에서 쓰는 문서가 조금 유려해지고, 인터넷에 쓰는 제품 후기가 살짝 풍성해질 뿐이다. 그렇게 된들 누가 알아줄 것인가? 글을 잘 쓰는 정도에 따라 얼굴에 반짝반짝 금테가 둘리는 일이 없는 한, 날 알아볼 이는 없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고 싶고,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는 숲속의 거대한 나무들에 둘러싸인 작은 버섯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매일 일기를 쓰고, 글쓰기 수업에 나간다. 큰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고, 그 삶의 파편들을 한 페이지 속에 아름답게 갈무리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숙제와 달리 성인이 되어 글을 쓰는 행위는 뭔가 모양새가 난다. 따듯한 햇살이 비스듬히 넘어오는 거실에서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두드리다가 부드러운 커피를 마시면 뭔가 근사한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착각일 것이다).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분위기 있는 이 장면이 앞으로 더 길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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