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신규이지만 지금보다 더 파릇했을 때, 신규 교사를 위한 연수가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교사는 가르침뿐만 아니라 배움도 열심히 해야 하는 직업임을 깨달은 첫 해였다. 원체 무언가를 배우고 좋은 자극을 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인지라, 의지만 있다면 다양하게 배울 수 있는 분위기가 꽤나 마음에 들었고, 지금까지도 흥미로운 연수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찾아 듣고 있다.
1년 차를 벗어날 즈음에 들었던 연수 중에 4년 차(혹은 5년 차) 쯤 되는 젊은 국어 선생님께서 하시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젊어 보이는 고경력 선생님들께서 하는 연수를 들은 적은 많지만, 젊어 '보이는' 것이 아닌 젊다고 확신할 수 있는 선생님께서 강사로 서서 연수를 하시니 신선했다. 지금은 겪어보니 3년 위라는 경력을 무시할 수 없음을 알지만, 당시는 워낙 고경력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서였을까, 상대적으로 1년 차와 4년 차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다.
선생님의 연수는 선생님만큼이나 젊었다. 시야가 넓었고, 틀에 덜 짜 맞추어진, 선생님의 색깔이 확실히 보이는 연수였다. 아직 노련함을 덜 장착한 약간의 어설픔 마저도 교사 연수 특유의 단조로움이 들어설 자리를 대신 채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무엇보다 저경력자가 고민하는 지점을 함께 고민하고 있는 세대인지라 연수 내용 또한 생명력이 있어 신규인 내 입장에서는 특히 얻어갈 것이 많았다.
그 뒤로도 젊은 선생님의 연수는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젊은 선생님의 연수가 아니더라도, 연수를 들으며 선생님께서 하셨을 치열한 고민과 그 결과물이 그 어떤 대가 없이 고스란히 전해질 때면 때론 존경심마저 들곤 했다. 연수에서 만나 뵙게 된 멋진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마음은 언제부턴가 '나도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생각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버킷리스트가 하나 추가되었다. "선생님들 대상으로 연수하기"
작년에도 연수를 들으며 끄적였었네. "나도 연수하고 싶다!"
그러던 7월 말, 아직 먼 것만 같았던 막연한 꿈에 수식어 '언젠가는'을 지워준 고마운 전화가 왔다. 중앙다문화교육센터였다. '한국어 교수법'을 주제로 워크숍에서 강의를 요청하는 전화였다. 그만큼 전문가가 아직 많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일까, 다문화 교육 분야에 몸 담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내게 강의 요청이 온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한국어 교수법이 주제라니. 한국어학급을 담당하면서 가장 스트레스 받았던 부분이 수업인지라 사실 가장 자신 없는 주제였다. 잠시 주춤했지만 모처럼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이참에 내가 해왔던 한국어 수업을 정리해보자는 다짐과 함께 승낙했다. 준비를 하면서 담고 싶고, 담을 수 있는 내용을 최선을 다해 담았다.
고백하자면 들뜬 나머지 연수를 준비하면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좀 부끄럽지만 나를 멋있게 생각한 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 솔직하게 적어본다.'이번에 잘해서 매년 계속 연수하게 되는 거 아냐?', '이 분야에서 유명한 교사가 되면 좋겠다', '이러다가 이 분야로 아예 나가게 되는 거 아닐까', '내가 나름대로 학급 운영을 잘하긴 잘했나 본데?', '수업을 엉망으로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최선을 다해왔구나? 대단하군' 등….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약간 심취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시작된 연수는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끝이 났다. 준비한 것을 열심히 쏟아내려고 했다는 것 말고는 기억에서 흐릿한 나머지 지점들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 와중에 확실히 알 것 같은 한 가지는 스스로에게 기대한 것보다 아쉽게 끝났다는 점이다. 대본도 준비했고 시간을 넘기지 않기 위해 몇 번을 리허설해보고 조정했건만 시간이 다소 타이트했다. 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한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급해서 말도 조금 빠르지 않았을까 싶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면서 강조하고픈 부분은 억양도 조절해가며 여유 있게 하고 싶었는데. 고심하며 준비했던 마지막 멘트를 하며 "궁금한 점이 있으시거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아래 연락처 또는 메일로 연락 주세요!"라는 대사로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정작 마지막 멘트와 PPT 화면은 띄우지도 못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음을 알기에 내가 완벽히 잘 해내길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쉬움에 무딘 것도 아니었다. 아쉬움이 후회로 변질되려는 순간,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대체하기로 한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교사가 내 최대 목표였고, 마지막 꿈일 거라 생각했다. 꿈 너머의 세계를 전혀 몰랐으니 그것이 나의 최대치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교사가 되어보니 내가 있는 자리에서 꿀 수 있는 또 다른 꿈이 있고, 심지어 그 꿈의 크기는 내가 설정하기 나름이다.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이 끝이 아니라 사실 본격적인 시작임을 요즘 느낀다. 물론 끝으로 설정한 사람에게는 끝이 될 수도 있겠다. 가능하다면 나는 끝보다는 항상 시작점에 서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10년 후에도 이런 마음가짐이 담긴 글을 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