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성취감 : 선생님은 요즘 학교가 재미없어요
일을 할 때, 당신은 어떤 것으로 인해 성취감을 느끼나요?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 출전하고 싶다던 A는 오늘도 원고를 써 오지 않았다. 이것으로 3주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원고를 쓸 때 참고할 수 있도록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적어 준 메모를 잃어버렸다고 하여, 며칠 전 한 번 더 이야기해주었지만 A는 또다시 묻는다. "무슨 내용을 써야 돼요?" 특별한 인내심을 갖추지 못한 나는 지친 기색을 실어 대답했다. 오늘까지 글을 써 오라고 했는데 그 질문을 지금 하면 어떡하냐고, 저번에 이야기해주지 않았냐고. A의 얼굴에 짜증이 드리워졌고, 잔소리를 듣는 게 귀찮고 싫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한숨을 푹 쉬고 교실을 나가버린다. A는 자신의 것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는 성격이라 내게 비슷한 잔소리를 꾸준히 듣고 있다. 이번에도 3주째 같은 잔소리를 듣고 있으니 짜증이 날 만도 하다. 하지만 나 또한 기운이 빠지고 의욕이 사그라든다.
S는 나를 이기고 싶은 걸까. 한국어 수업 중, 한자어가 나왔다. 중국에서 온 S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아, "S야! 아마 S는 이 단어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라고 했더니 한자어가 아니라고 한다. 내가 S보다 한자를 덜 알 수는 있겠지만, 나름 국어 교사인데 한자를 전혀 모르지는 않는단 말이다. 선생님이 너보다 한자를 잘 모르지만, 이건 확실히 한자어가 맞으니 조금 더 생각해보자고 했다. S는 여전히 한자어가 아니라고 박박 우긴다. 감정을 배제하고 차분하게 응했어야 했는데, 사람인지라 오기가 생겨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여주었다. 사전에서의 한자어를 본 S는 순간 머뭇하더니 그럴 리가 없다고, 한자어가 아니라고 한다. 계속 무의미한 실랑이를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사전에는 한자어라고 나와있다며 적당히 마무리하고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어찌 대응하는 것이 현명했을까.
올해 유독 학교 생활이 재미없다. 일이 많아 힘들어서는 아니다. 힘든 것과는 별개로 '재미가 없다'. 재미없다는 느낌은 대개 이런 식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도 금세 피곤해지고 짜증이 나고, 냉소적인 내 마음을 발견할 때가 많다. 일을 할 때 열의가 생기지 않아, 예전처럼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 가며 열심히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책임감이 강한 편인지라 나름 평균 이상으로 해내고는 있지만,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거나 내가 채워지기보다는 소진되고 소모된다. 잘 해내도 보람과 뿌듯함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거나 짧다. 그저 내 할 몫을 얼른 하고 떠나고 싶다. 고작 4년 차에, 아직 첫 학교인데, 벌써 이런 생각이 들면 안 될 것 같아 죄책감 비슷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혹은, 어떤 일이든 간에 3-4년 정도 하면 매너리즘이 온다고 하던데, 그저 그런 시기일 뿐인 걸까.
요즘의 내게는 온통 회색빛인 학교이지만, 나를 쏟더라도, 힘은 좀 들더라도 재미있는 시기가 분명 있었다. 언제였는지 더듬어보니,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느낌 또는 내 존재가 의미 있다는 느낌이 들 때에는 힘들어도 재미있었다. '성취감'의 부재가 원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되고 나서, 나는 언제 성취감을 느꼈던가. 아이들이 차차 변화하는 모습이 보일 때, 아이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고 마음을 여는 것이 보일 때, 내가 지도한 것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무언가를 해낼 때, 존중받을 때, 내가 한 노력이 인정받고 빛을 발할 때.
그렇다면 반대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최선을 다해 다가가려 하지만 뾰족한 가시가 돌아올 때, 열심히 지도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같이 뛰어주지 않을 때, 존중받지 못할 때, 내가 한 노력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껴질 때 기운이 뚝뚝 떨어진다.
생각해보면, 작년 업무 성과급 등급도 한몫했으리라. 누군가가 힘드냐고 물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편이지만, 작년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일이 많았다. 게다가 열의를 품고 최선을 다했다. 동료 선생님들께서도 인정해주시는 분위기였고, 성과급 평가 기준 점수도 꽤나 높아, 올해는 어쩌면 제일 높은 등급이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두 번째 등급이었다. 힘이 빠졌다. 하필 성과급 평가 기준 점수가 낮은 동료 선생님이 제일 높은 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말았다. 타인의 평가가 내 노력의 가치가 아님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한 노력이 하찮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일을 하거나 아이들과 지내는 과정에서 내가 성취감을 느낄 만한 상황만을 바랄 수는 없다. 보람찬 날이 있으면 그렇지 못한 날도 분명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유독 올해, 그렇지 못한 날들이 지속되니 성취감은 점차 옅어지고 흔적만 남게 되었다. 가끔 그 흔적을 따라 지나간 누군가가 성취감의 존재를 일깨워주기도 하지만, 잠시일 뿐이다.
이왕이면 교직에서 오래오래 재미있게 일하고 싶은 나는, 흔들림 없이 꾸준한 성취감이 필요하다. 교사는 응당 아이들로부터 성취감을 얻어야 할 것 같지만, 아이들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성취감을 아이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 또는 외부의 평가로 성취감을 얻자니 이것이야말로 불안정한 성취감이다.
학교가 회색빛인 시간을 보내면서, 성취감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가능하다면, 답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