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전문성 : 연속성의 부재, 그로 인한 모순
학교를 옮기면서 마주친, 달갑지 않은 고민과 혼란
교사의 전문성은 무엇을 통해 보여줄 수 있을까. 수업? 업무? 생활지도? 경력?
교직에 들어서보니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전문적 활동들이 생각보다 다양했다. 교육청 또는 소속 지원청에서 컨설턴트 또는 지원단으로서 타 학교 선생님들의 수업, 학급 운영 등에 대해 도움을 주기도 하고, 평가 문항 제작, 인공지능 활용 수업 등의 여러 분야에서 길잡이가 될 만한 교재를 발간할 수도 있으며, 대학원 진학 또는 꾸준한 연수 등을 통해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쌓아 인정받거나 이름을 알리게 되면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연수 및 강의를 할 수도 있다. 교사로서의 전문성은 단연 수업에서 드러나는 것이라 여겼건만, 학교의 장면들을 떠올려보면 교육은 온전히 '수업'만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는 아니다. 학급을 운영하는 방식도 일련의 교육 과정이고, 적절한 에듀테크나 수업 툴을 적재적소에 자유롭게 활용하는 능력도 교육 활동으로 연결되며, 교사의 태도와 가치관, 고민 등도 결국 교육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이처럼 교사가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에서 경험치를 꾸준히 쌓아 올린다면 그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추어 널리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교사의 전문성은 역설적이게도, 견고하면서도 엉성한 면이 있다.
나의 전임교는 다문화 학생을 위한 '한국어학급'이 별도로 존재하는, 우리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다소 생소한 학교였다. 우리나라에 이주해 온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만큼 필연적으로 학교 현장에도 다문화 학생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다문화 학생이 한국의 공교육에 무사히 진입 및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이를 위해 마련된 정책 중 하나가 한국어학급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교 현장은 다양한 국적을 지닌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제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아직 충분치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어학급 담임교사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자리였고, 신규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전임교에서의 4년 중 3년을 한국어학급 담임교사로서 지냈다. 다행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나의 성향상 잘 맞았고, 대부분이 경험한 적 없는 자리를 지키다 보니 적은 연차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연수 및 사례 발표, 컨설팅을 몇 차례 꾸준히 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다문화 교육 부문에서 교육감 표창과 장관 표창을 받게 되면서 활동 반경을 더욱 넓힐 수 있게 되었다. 다문화 학생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일이든 나를 가장 먼저 찾는 동료 선생님들, 그러한 경험이 쌓여 새로운 상황이 펼쳐져도 의연하게 해결하게 된 나의 모습, 다문화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타 학교 선생님들의 연락을 받으며 함께 방법을 찾아나가는 일들이 몇 차례 쌓이자 조금은 전문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채운 채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앞으로 내가 스쳐갈 학교에서 다문화 학생을 만나게 되면 전문성을 적극 발휘하여 도움을 주리라 다짐하면서.
전보를 간 학교에도 역시나 다문화 학생이 있었다. 한국어를 아주 잘하는 학생이라 한국어 교육 쪽으로 도울 일은 없었지만, 문화 및 정서의 차이로 인해 학급 친구들에게 몇 차례 오해를 사게 되고 학기가 지날수록 은근하게 겉도는 듯한 아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전임교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모습과 겹치면서 어떠한 지점이 학급 친구들로 하여금 그 아이를 오해하게 만드는지, 거리를 두게 만드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그 아이가 어떠한 혼란과 외로움을 겪고 있을지도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다문화 학생과 그의 보호자가 한국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의 유효기간이 끝날 때 즈음 아이와 보호자는 유효기간을 연장하고자 정기적으로 재학증명서를 들고 유관 기관에 가야 한다. 가끔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서 보호자가 밟아야 하는 행정 절차에 아이가 통역자로서 동행하여야 할 때가 있다. 한국 학교에서 한국어에 꾸준히 노출된 덕에 아이는 한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지만, 보호자는 환경상 또는 생업으로 인해 한국어를 익히지 못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 있는 아이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가 그러한 상황을 여차저차 설명하자 담임 선생님께서는 생소하다는 듯한 반응과 함께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보호자에게 이를 어찌 확인해야 할지, 어떠한 명분으로 아이를 보내주어야 할지 교감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교감선생님께도 그 상황이 생소한 것은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상황이었지만, 어쩐지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다. 학교를 옮기고 나니 내가 전임교에서 어떠한 일을 했고 어떠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든 간에 나는 그저 새로 온, 경험이 적은 교사일 뿐이었다. 이제 고작 두 번째 학교로 옮겨 온 저경력 교사였기에 나의 부족함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선배 선생님이 많은 우리 학교 특성상 으레 잘 모를 것이라는 전제 하에 나를 대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던 터라 내가 잘 아는 부분임에도 나서려니 왠지 주저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전임교에서 어떤 일과 활동을 했는지 내가 말하기 전에는 딱히 알 수 없는 구조이니, 저연차 교사가 잘 모를 것이라 여기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3년간 몸 담았던 시간들이 무의미해진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었다. 다문화 학생의 담임 선생님이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될 때면 내가 아는 부분을 슬쩍 말씀드릴 수 있었지만, 내가 전임교에서 어떤 일들을 경험했는지 정확히 알 턱이 없으니 그분은 그분대로 고민한 시간이 있지 않았을까.
'내가 갖춘 전문성은 일시적인 것이었나', '환경에 따라 앞으로 활용되지 못한 채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표창을 비롯한 전문성의 증표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와 같은 혼란을 느끼며 바라본 학교는 분명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문가가 없기도 한 공간이었다. 특정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하여 전문성을 갖춘 교사라 하더라도 학교를 옮겨 다니다 보면 상황에 따라 전혀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곤 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경력이 많은 선생님들께서도 교직 생활 동안 한 번도 맡은 적 없는 업무를 담당하게 될 때면 신규 교사 마냥 헤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담당자가 받아야 할 연수를 받고 매뉴얼을 차근차근 살펴 가면서 업무를 새롭게 익혀야만 한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듯이 학교의 많은 일들은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얼마 간의 노력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다. 사실상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임을 증명하는 셈이니 매년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그 업무를 맡는 동안만큼은 전문가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공간이 학교이다. 뼛속까지 문과인 나는 학교의 사정상 올해 방송부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방송실 장비를 전혀 다룰 줄 몰랐음에도 여차저차하여 장비를 다루는 아주 기본적인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기본적인 능력을 겨우 갖추게 되었다는 건 그리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방송과 관련된 일이면 그게 어떠한 일이든 가장 먼저 불려 갔고, 해결해 낼 것이라 믿으시는 눈치였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상당한 기계치이다. 전임교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에게 배부된 태블릿을 담당하는 선생님에게 동료 교사고 학생이고 할 것 없이 태블릿에 대한 모든 문의를 쏟아냈다. 원격 수업이 처음 실시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급하게 생긴 원격 수업 업무임에도 담당 선생님이 그 순간만큼은 유일한 해결사였다. 몰라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기가 막히지만 또 기가 막히게도 선생님들은 어찌어찌해 낸다. 사실 방송부를 맡고 있는 나도, 태블릿을 담당 및 관리하게 된 선생님도, 원격 업무 담당 선생님도 따지고 보면 다 처음 하는 일인데 말이다.
지난 경험으로 쌓인 진짜 전문성은 상황에 따라 발휘되기 어려운데, 담당자라는 이유로 생긴 가짜 전문성은 없어도 발휘해야만 하는 상황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연속성의 부재로 인한 손실, 그리고 모순이 아쉽다. 한편으로는 내가 갖추었다고 믿었던 전문성이 정말 전문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 혹시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과 경험들이 오갈 데 없어지는 순간, 나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쌓아나가야 할지 고민이 된다. 쌓아 올리는 일들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학교를 옮기면서 마주친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