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나고 싶지만, 작정하고 떠나다.

- 싫은 것도 좋은 것도 무의미하다.

by 낮은돌담

드디어 우리가 가장 긴 시간을 보내기로 한 '끄라비'로 이동하는 날이다.

대이동의 날인 것이다.

우선은 차량으로 '후아힌'에서 '수완나품 공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끄라비'로 간다.

그리고 아쉬운 것은 이 숙소를 떠나는 것이다.

긴 이동이 예상되는 날이기에 계획은 반나절가량 숙소에서 쉬는 것이다.

OTT 플랫폼을 결제하지 않는다. 그런데 OTT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를 보고 싶었는 데다가 그때는 이미 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여행 가서 아이들이랑 그 드라마를 하나씩 보자! 그렇게 OTT 플랫폼을 결제를 했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놀고 나면 어느덧 저녁 9시가 된다. 그러면 자야 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오전은 드라마도 보고 쉬면 된다. 아이들은 오전에 수영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수영복 말릴 생각을 하니 수영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오후 1시, 이동 차량을 예약해 두었기에 점심이 애매했고 아이들은 나의 고민을 듣고는 "그럼 조식을 많이 먹으면 되지!" 한다.

그래, 우선 조식을 든든히 먹었다. 그러나 수영과 관련한 나의 바람은 늘 그렇듯 아이들의 마음과 다르다.

그리고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언제나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신나게 수영을 하고 들어왔고 이제 드라마를 보면 되는 것이다.

일부러 무거운 탭을 들고 오는 수고로움을 선택했다. 그리고 호기롭게 탭을 꺼냈고 아이들은 오랜만에 보게 되는 미디어에 들뜬다. 앱을 클릭했다.

하지만, '해당국가에서는 지원하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다.

나도 아이들처럼 너무 아쉽다. 이럴 수가 있는 것일까?

계획을 얼마 세우지도 않는 편인데 그나마 세우는 계획은 조금씩 방향을 틀어버린다.

그리고 틀어지는 방향에 우리는 또 따른다. 사실, 우리가 좋든 싫든 따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이왕이면 기꺼이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이동차량에 올랐다.

세 시간가량이 예상되는 이동이기에 일부러 오전 시간에 낮잠은 자지 않기로 했고 아이들은 차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잠들었다.

나도 잠들려는데, 속도가 너무 빠르다. 슬쩍 계기판을 보니 140km이다.

게다가 아저씨는 차선이 아닌 차량과 차량 사이도 지나가신다.

눈을 뜨고 있으려니 멀미가 난다.

도로에서 이렇게 속도를 내면 안 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성적이기는 하지만, 무언가를 주장해야 할 때에 주장을 하는 편이다.

물론, 한국말로 하였을 때이기는 하나 언변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내가 지금 속도를 늦춰주기를 요청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이곳의 최고속도가 얼마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섣불리 판단하고 내가 익숙한 문화가 세상의 진리인 듯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느끼는 빠른 속도가 이 분의 입장에서는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최고속도 안내가 되어있는 표지판을 찾기 위해 도로를 살핀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아우토반인가 생각하며 빠른 속도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 사이 첫째가 잠에서 깼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이 차의 속도가 빨라 놀랍다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함께 살짝 웃으며 한마디 한다.

"할아버지 같나 보다."

우리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1층에는 시부모님이, 2층에는 우리가 살고 있다.

시아버지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아버님이 '가자'하고 나서면 어떤 상황이든 1분 이내로 따라나서야 한다. 투박한 제주사람인 아버님에게 익숙해지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때때로 아버님은 '새끼'라는 표현을 쓰신다. 듣기에는 불편하지만 욕의 의미라기보다는 말버릇 같은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마당에서 맨발로 뛰어노는 아이들이 너무 예쁜데 아버님은 아이들에게 "이 새끼들이, 신발을 신고 다녀야지!"하고 말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우리가 보기에는 혼낼 일이 아닌데, 아버님이 보시기에는 야단칠 일이다.

아버님은 표현이 거칠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은 분명히 느껴진다. 물론 그 거친 표현이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닌 순간도 많지만 말이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 좌절, 실패를 느꼈으면 한다. 어리다는 것은 좌절과 실패로 인한 마음이 그저 '엄마'라는 존재로 채워질 수 있는 나이니까.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있고 좌절하고 실패하니까.

그래서 이왕이면 아이들이 야단을 맞아야 한다면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할아버지에게 야단맞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한 번도 아버님께 하지 말아 주십사 말씀드려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급한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그렇게 수완나품 공항으로 가는 길에 제주에 계시는 1층 할아버지를 만났다.


처음이다.

처음으로 타국의 국내선을 타보았다. 이상하게도 긴장이 크게 되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내 실수를 마주할 때마다 '창피해'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거였구나'가 된다.

그래도 혹여나 하는 마음에 체크인을 하고 들어갔다. 아이들은 조식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배가 고팠지만 들어가서 먹자는 엄마말을 믿고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국내선이라 그런지 먹을만한 식당이 없다. 사람들을 보니 음식을 사서 그냥 서서 먹는다.

나는 이렇게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지난번에 강제단식을 종료하였지만 그러고 나서는 다시 조금 살만하니 나는 또다시 음식을 먹지 않고 있다.

내가 이렇게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들을 이렇게 밥 먹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막내는 음식을 조절 중이고 여행 중이기는 하나 볶음밥보다는 그냥 밥을, 음료도 가능하면 과일을 직접 갈아먹는 것으로 사주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 싫지만, 방법이 없다. 아이들을 먹여야 한다. 편의점 음식을 사고 근처에서 서서 먹었다.

나의 선호도가 내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순간을 자꾸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 6시 40분에서 20분 지연된 된 비행기는 드디어 우리를 끄라비에 데려다 다주었다.

저녁에 도착할 것이었고 잠만 잘 것이었기 때문에 저렴한 숙소로 1일을 예약해두었고, 도착한 숙소의 컨디은 생각보다 좋지 못하다.

아마도 후아힌의 숙소가 너무 좋았기에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가격 차이가 큰 것도 아닌데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씻으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잠옷으로 얼른 갈아입고 잠을 자고 싶다.

막내가 11살이어서 대부분 무료 추가가 가능하였고 그렇게 잡는 숙소는 모두가 3인 기준이었다.

후아힌에서의 숙소도 그러했고 첫 날을 제외하고는 모두 싱글베드 세 개였다. 그리고 셋째는 자다가 떨어져서 얼굴에 멍이 들고 또 다리에도 멍이 들었다.

그런데 이곳의 숙소는 싱글 침대 2, 엑스트라 베드로 병원 보호자 침대 같은 것이 놓여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숙소에 월경까지 시작하여 갑자기 온갖 짜증이 몰려온다.

지금의 숙소는 떨어지게 되면 바닥이 타일이라 정말 다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침대를 보며 곤란해하고 있는 나를 보고 첫째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단다.

우리는 캐리어 두 개와 배낭에 짐을 싣고 왔다. 그 캐리어 두 개를 침대와 침대 사이에 두자고 한다. 그리고 그 위에 수건을 깔아 떨어지더라도 높이차이를 줄이자는 생각이다.

아이는 그렇게 손수 동생을 위한 안전장치를 설치했고 설치하고 나니 그럴 듯하니 안심이 된다

오늘은 싫어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뿐.

KakaoTalk_20240106_233820375.jpg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면, 다시 묘하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흐른다. 침대 사이의 캐리어 두 개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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