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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폰더 Feb 16. 2024

2013년 겨울

    늘 그렇듯 학원 일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수업이 시작되는 5시부터 10시까지는 의자에 앉을 틈도 없이 강의가 계속됐다. 5분에서 길어야 10분인 쉬는 시간에도 질문을 들고 찾아오는 아이들과 학부모의 상담 전화, 수업에 쓸 단어 시험지 등을 챙기느라 그마저도 쉬지 못하는 일이 강사였다. 빈틈이 없는 스케줄은 5일 내내 계속됐고 주말에도 고등부와 특목고 대상 강의가 있었다. 욕심부리면 주 7일을 쭉 일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대형 어학원에서 10년 넘게 버틴 베테랑 강사였다. 독하고 치열하게 일한 덕분에 아무런 준비 없이 맨몸으로 사회에 나와 버스와 택시에서 지문을 달달 외워가며 수업을 준비하던 초짜가 서른도 되기 전에 팀장 자리에 앉았다. 강사로서 성공하고 싶은 나의 욕심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고 몇 년 후 서른셋에 교수부장이 됐다. 탄탄한 커리어에 만족스러운 연봉으로 이제 좀 세상은 살만하다고 느끼던 삼십 대 초반,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초겨울부터 이상하게 몸이 좋지 않았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적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게 세상 가장 힘든 일이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제시간에 교문을 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타고나길 기운이 없고 왜소한 체격에 그때까지 운동 한번 한 적이 없어서 내게 상쾌한 컨디션이란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 같은 거였다. 그래서 그냥 저질 체력이 피로 누적을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체력 보충을 위해 주말 수업도 그만두고 이전보다 많이 쉬려고 했고 너무 좋지 않은 날엔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다. 엄마는 녹용을 달여주셨다. 그런데 아무리 잠을 자고 아무리 누워있어도 몸을 짓누르는 피로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낯선' 피로감이었다.

    이런 날이 지속되면서 이상한 증상이 하나씩 나타났다. 양치 후 가글을 한다고 고개를 젖혔다 내리면 천정이 움직일 정도로 머리가 핑 돌았다. 거울 속 내가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나중에는 세면대를 손으로 잡아야만 간신히 몸을 세울 수 있었다. 출퇴근 길에 버스에서 휴대폰으로 작은 글씨를 읽으면 생전 안 하던 멀미가 났고 걷는 것도 점점 이상했다. 의식하지 않으면 몸이 살짝 대각선으로 가는 거다. 계속 머리가 멍하니 무겁고 마치 뇌가 통째로 물에 잠긴 것 마냥 출렁거렸다. 살아있는데 유체 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내 몸이 조금씩 컨트롤 되지 않았다.

    하루는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혼자서 중력을 100배쯤 더 받는 것처럼 몸이 땅으로 꺼졌다. 그 중력을 버티며 자세를 세워 앉아 팔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났다. 일단 수업 전 가까운 내과를 찾아 링거를 맞았다. 시간이 촉박해 좀 빠르게 주사를 맞았는데 다 끝나고 일어나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치 스노볼 안의 반짝이를 띄우기 위해 액체를 소용돌이친 것처럼 내 뇌가 본래의 자리를 이탈해 척수액에 와류하는 것 같았다. 눈을 껌벅이는 게 느껴졌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고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머리와 함께 상체가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손을 더듬어 베드를 잡고 겨우 일어났다. 간호사에게 증상을 얘기하니 주사를 너무 빨리 맞으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잠시 의자에 기대고 어지러움이 가라앉자 학원으로 돌아왔다. 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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