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머리 사진 한번 찍어봐요.’ 내 건강 상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원장님이 한 말이었다. 처음에는 ‘에이, 무슨 머리예요’ 싶었다. 평소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녔는데 당시 피검사 결과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괜히 몸이 허한가 싶어 한의원에 갔고 목디스크가 생겨 두통이 오는 건가 해서 정형외과에서 도수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몇 개월을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는데도 몸이 계속 좋아지지 않자 나는 머리에 이상이 있음을 짐작했다. 다만 인정하는 게 무서워 외면하고 속으로 아니기를 바랐다. 인지부조화처럼 눈앞의 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피하면서 곧 다가올 불행에 불안해했다.
이 불안과 두려움에는 근간이 있다. 나는 이걸 이 집안 장녀에게만 내려오는 무서운 저주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와 고모 두 분이 쉰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모두 뇌 질환이었다. 부검을 안 해서 정확한 사인은 모르지만, 병원 의견과 주변에서 얘기하는 두 분이 평소 호소했다는 증상을 들어보면 뇌종양으로 인한 뇌출혈이 유력했다. 두 분 모두 장녀였고 이번 세대엔 내가 장녀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내 무의식 속에는 나도 마흔 즈음 뇌종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거다. 그래서 끝끝내 난 내 발로 신경외과를 가지 않았다. 이 저주를 알고 있는 또 한 사람, 엄마가 나를 끌고 갔다.
링거를 맞고 휘청한 후 며칠이 지난 월요일 아침, 결국 난 출근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엄마는 나를 끌고 종합병원으로 갔고 곧장 신경외과에서 CT를 찍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부디 아니길 빌었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진료실의 공기는 내 예상과 사뭇 달랐다. 머뭇거리는 의사의 말투와 굳은 표정. 정밀 검사를 위해 MRI를 찍자고 하면서 진단을 미뤘다. 까만 종이에 안개처럼 그려진 내 뇌 CT는 정상인의 것과 달랐다. 뭔가 대칭적이지 않았고 동그랗게 예쁘지 않았다. 바로 입원해 MRI 촬영을 하고 다음 날 오전 나는 뇌종양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의료 차트가 바뀐 거라 생각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정말 그렇게 믿었다. 그럼 어디 설명이나 해보라고 의사에게 질문했다. 무슨 뇌종양이고 악성인지 또 어디 생긴 거며 수술해야 하는지 등을 물었다. 그런데 그게 명확하지 않단다. 사람을 꼬박 1박 2일을 붙들어 놓고 뇌종양이라고 진단하면서 이게 뭔지 잘 모르겠단다. 그 병원에서 수술은 할 수 있지만 이런 케이스가 많이 없었다며 말을 흐렸다. 모양상으로 악성이고 개두술을 해야 한다는 것만 확실했다. 악성 뇌종양, 뇌암이었다. 이 나이에 뇌종양인 것도 어이가 없는데 암이라니.
황망함은 잠시였다. 불안의 실체가 드러나고 두려움이 현실이 되니 영화 인셉션처럼 주변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호흡이 빨라졌다. 진공관에 갇힌 채 몸과 머리가 유리되어 둥둥 떠다녔다. 진료실을 나오는데 걸음에 감각이 없고 바닥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이 있던 자리에 안구가 없어지고 물이 채워진 것처럼 눈물이 마구 솟구쳤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내 울음소리에 대기하던 환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저 어린것이 큰 병을 얻어 불쌍하다는 시선만 느껴졌다. 나는 그저 그 차가운 타일 바닥에 드러누워 대성통곡하고 싶었다. 있는 힘껏 악을 쓰며 가슴에서 올라오는 울분을 토해내고 싶었다.
사실 엄마는 전날 밤에 MRI 촬영 후 뇌종양이라는 결과를 미리 들었다고 한다. 해당 병원에서 수술을 원하면 할 수는 있지만, 확신은 못 한다는 의사의 조언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오빠에게 바로 연락해 국내 메이저 병원에 미리 초진 예약을 잡았다고 한다. 나는 그 길로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부산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문자가 울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님의 산정특례 등록이 완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국가가 나를 암환자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