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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새 Nov 10. 2023

우산 천사 아저씨를 찾습니다.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



10월의 마지막 목요일, 지하철역사를 빠져나오는데 후드득 비가 떨어졌다. 우리는 우산이 없었다.

아이를 물끄럼히 내려보며 “그래도 많이 내리지는 않는다. 우리 얼른 뛸까?” “좋아, 이 정도 비는 괜찮지~”라면서 아이랑 나는 역사를 빠져나오며 뛸 준비를 했다. 아이는 살면서 무수히 많이 ‘우산 없는 비’를 만날것이다. 어떨 때는 우산을 사야 하지만 어떨 때는 촉촉한 비를 맞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임을, 비를 맞고 나서 뜨거운 샤워를 하면 그렇게 상쾌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때, 뒤에서 “이거 쓰세요! 아이 있잖아요!” 라면서 검은색 우산이 불쑥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진하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아저씨가 나에게 우산을 넘기려고 했다.

“아니에요, 저희 금방가요, 비도 많이 안 와요”

“쓰세요, 아이 있잖아요. 나는 외국인이라 괜찮아요(?) 여기서 금방 가요”

하면서 무작정 나에게 우산을 넘기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뒷걸음으로 빠르게 사라지셨다

“아니에요! 이거 가져가세요. 비 맞으시잖아요. 저기요~”

아저씨는 이미 멀어졌고 아이와 나는 당황했다.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내손에는 우산이 생겼고, 발걸음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채 아저씨가 사라진 길만 바라보았다.     

“너만 한 아이가 있는 아빠이신가 보다.. 그래도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러니깐 어떻게 하나뿐인 자기 우산을 줄 수 있지?”

아이도 나도 고마움보다 먼저 느낀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하나뿐인 우산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 자기는 비를 맞으면서 저렇게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수없이 받아 든 우산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웃는 아저씨 얼굴이 떠오른다.     


“아까 날개 봤어?”

“응 본 거 같아.. 엄마도 봤지?”

“응. 천사가 분명해!“

“어떻게 돌려드릴 수 있을까?”

“그러게 전화번호라도 물어보든가, 언제 다시 보자고 약속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당황해서 그냥 받아버렸네..”     

우산천사아저씨의 우산손잡이에서는 볼트와 너트의 냄새가 났다. 묵직한 반자동 검은 우산은 가격도 꽤 비쌀 거 같다.

‘이건 자기한테 소중한 재산인데 어떻게 우리한테 그냥 줄 수 있지?’라고 아이가 말할 만큼 재산처럼 보일만한 좋은 우산이었다.  우리가 만난 시각은 목요일 오후 5시 반. 열심히 일하시고 퇴근하시는 길이었을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콜롬비아 푸른색 크로스백을 매고 계셨다. 잊어버릴까 봐 얼굴도 다시 떠올려본다.


이렇게 선함을 받았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걸 행운이라 받아들이면 될까. 아니면 다시 만나서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까. 만날 수 있을까..?  

불행을 만났을때의 삶의 태도는 학습이 되었는데 이런 서프라이즈 선물에는 무방비다.

가능성은 오직 목요일 오후 5시 반. 그 단서 하나만 믿고 우리는 아저씨를 다시 만나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아이는 아저씨에게 감사하다는 미니카드를 썼다. 아저씨 덕분에 비를 한 방울도 안 맞았다는, 소중한 재산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맛있게 생긴 귤을 한 박스 구매했다. 우산은 소중히 말려서 잘 접었다.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만나지 않을까?”

아이의 수업이 없는 화요일과 목요일만 나가볼 수 있었다. 우리는 행여나 아저씨를 놓칠까 우리가 만났던 시간대 보다 미리 나가 아저씨를 기다렸다.

    

개찰구에 나오는 사람들을 매의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안 계셨다. 이제 겨우 세번째 인걸.


“만날 수 있을까?”

“그러게.. 그래도 계속 나와 보자.”


우리는 당분간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우산천사아저씨를 기다려볼 생각이다. 이렇게 무작정 기다려서 아저씨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면서 예상치 못한 커다란 선함을 받았을 때의 나의 태도와 그런 나를 보고 있는 아이의 눈동자에서 우리가 단순한 테이커가 아닌, 멋진 기버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음 정도라도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선행은 우리를 놀라게 했고 덕분에 행복했다고. 당신의 선함을 나도 누군가에게 배풀겠다고. 군불이 떼 진 아랫목처럼 순식간에 세상이 너무 따뜻해졌다고. 낯선 사람 조심하라고 늘 가르쳐야 하는 아이에게 낯선 사람이 이렇게 천사일 수 도 있다는 걸 가르쳐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꼭 만나 뵙고 싶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만나겠지?      


아저씨를 기다리며 생각한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 우산을 건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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