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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Jul 04. 2019

라이프 탐험가를 위한 책,
<퇴사는 여행>을 읽는 방법

처음엔 브런치에서, 그 다음엔 독립출판물로 세상에 인사했던 정혜윤 작가의 책 <퇴사는 여행>이 정식출판되었다. 나는 정혜윤의 팬이다. 삶을 주체적으로 디자인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영감을 얻고, 그 과정에서 느꼈던 불안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마음에서 위로를 받는다. 이 글은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보내고 싶은 <퇴사는 여행> 그리고 정혜윤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예찬이다.





여행지에서

혼자 읽기



2019년 3월 30일, 나는 제주도에 있었다. 그 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책방 무사에 가서 책을 산 일이다. 책방 무사는 가수 요조가 운영하는 작고 조용한 서점이다. 하지만 내가 그 곳에 간 이유는 요조를 보기 위해서도 아니고, 책방의 모습이 궁금해서도 아니고, 어떤 책을 사기 위해서였다. 바로 <퇴사는 여행>.



나는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기 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 물론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사연은 이렇다. 몇 달 전, 브런치에서 한 편의 글을 읽게 됐다. 퇴사와 이직을 반복한 사람이 쓴 글이었다. 나는 글에 등장한 '백수 이력서'라는 표현에 신선함을 느꼈다. 마침 그 때 나 역시 자발적 백수의 삶을 선택한 시점이라 더욱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백수'의 개념을 재정의한 그 사람의 태도가 좋았다. 기존의 관념을 뒤엎고 '재정의'하는 일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 때의 그 글을 아래에 링크해 본다.)



한창 사람들과 만나면 그로 인해 받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 혜윤 언니를 알게 되었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꾸만 그 글이 생각났다. 알고 보니 동일인물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최근 그간의 이야기들을 모아 책을 출판했다고 했다. 이러한 사연으로 인해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 책을 읽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 독립출판물이라 흔하게 깔린 책은 아닌데다 하필 나는 일주일 가량을 제주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서울에 돌아가면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기분 아는지. 가끔은 편의와 상관없이 촌스럽게 구하고 싶은 그런 물건이 있다. 어차피 똑같은 물건인 거 아는데, 그래도 내 눈으로 보고 싶고 그 무게감을 손으로 느끼고 싶은 감정.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며 발품 팔아 구한 물건과 클릭 한 번으로 구한 물건은 애착의 정도가 다르다. 그러니까, 이미 나는 그 책과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괜히 그 책은 서울이 아닌 제주에서 읽고 싶었다.


"언니 책, 제주에 입고된 곳은 없을까? 빨리 읽고 싶은데."

혹시나 했는데 언니가 마침 며칠 전 책방 무사에 책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제주로 보내는 택배는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틀이 지난 그 날, 아침 일찍부터 책방에 가서 책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책방을 지키던 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런 책은 없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돌려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차, 언니에게서 '택배가 도착한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한달음에 달려가 함께 택배 박스를 뜯고 따끈따끈한 새 책을 받아왔다. 원하는 것은 대체로 쉽고 빠르게 구할 수 있는 시대,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기쁨이었다.




밤이 되자 숙소에 앉아 곧바로 책을 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활자를 통해 그 너머의 언니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언니는 요즘의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몇 년 앞서 하고 있었고, 그 때의 생각들을 단단하게 다져 책으로 펴낸 듯 했다. 책을 보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서 종국에는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어버렸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또 그 시간들을 보낸 언니가 너무 멋지고 사랑스러워서.


방황하던 시기, 제주라는 비일상의 공간에서 읽었기에 더욱 깊숙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녀의 책 속에 등장하는 치앙마이에서 읽어도 좋겠다. 읽는 장소를 바꿔가며 읽고 싶은 책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읽기



친구가 보내준 인증샷



여행과 문화, 그리고 자신의 삶과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책. 책 속의 문장들은 가끔 흔들리는 내 마음의 지표가 되어 줬다. 그 뒤로 나는 '퇴사는 여행' 전도사가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들, 나와 감성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보내 주기도 했다. 그들과 책을 사이에 두고 끝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음악과 함께 읽기

나의 이야기 써보기



그런 그녀의 책이 최근 정식으로 출판이 됐다. 한없이 밑줄을 긋고 또 그었던 책이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기념으로 다시 읽었다. 지난 번 <퇴사는 여행>에서 특히 재미있다고 느꼈던 부분이 그녀가 삶의 전환점에서 들었던 음악들을 플레이리스트로 꾸려놓은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센스있는 출판사가 챕터마다 음악의 제목을 달아주었다. 그래서 이번엔 좀 다르게 읽어 봤다.


먼저 음악을 틀고, 그 음악이 끝날 때까지 해당하는 챕터를 읽는 것이다. 마음을 울리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그리고 나에게 가장 영향을 주는 문장을 매개로 나의 이야기를 기록해 보았다. 마치 그녀의 이야기에 답장을 보내듯이.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니까 너무 재미있어서 이런 방식으로 글을 써 보는 것을 계속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대화가 있는 뮤직 살롱이 되어도 좋겠다는 상상도 해 본다. 그럼 아래와 같은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지게 될 거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길을 찾아가는 여행자다.
마음을 나침반 삼아 방향을 설정하는 한
조금 헤매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첫번째 챕터를 읽을 때에는 용기가 솟아오른다. '나와 당신에게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구절을 읽을 때에는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조금 두렵고 낯선 이 여행길에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마음을 나침반 삼으라는 말 또한 참 좋았다.




마침 얼마 전 보고 온 <토이스토리 4>에서 버튼을 누르면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에 충실하던 버즈의 모습이 떠올랐다. 꽤나 단순하고 본능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리 또한 가끔은 그럴 필요가 있지 않을까.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해진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 것.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여러분은 이 곳에 평생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있을 때 최선을 다하세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네트워크를 쌓으세요.
그렇게 있는 동안 주어진 일도 잘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면
분명 또 다른 기회가 올 겁니다.
그럼 이 곳에서의 경험이 자산이 될 겁니다.



그녀가 영감을 받은 구절을 그녀를 통해 듣는 경험 또한 좋다. 이 문장을 통해서는 '현재에 최선을 다할 것'을 배웠다. 우리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떠날 수 없다는 생각에 주어진 환경에 짜증을 부리거나 지루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억지로 뭉개며 서로를 괴롭힐 필요 없이 떠나면 된다. 있기로 마음 먹었다면 떠나기 전까지 유쾌하고 즐거운 에너지로 함께 할 것. 이것은 '일' 뿐 아니라 '관계'에도 적용되는 문장이라 느낀다.




나는 일을 '원래 그런 것'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
일은 단순히 직업을 갖는 게 아니다.
일은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삶의 큰 부분을 좌우한다.


주변에 어떤 사람을 두는지가
인생을 바꾼다.
그러니 나와 맞지 않는 곳,
나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에게서는
멀리 떨어지길 바란다.
가치관이 통하는 사람들,
서로를 응원하고
성장시키는 사람들을
곁에 두기를 바란다.
더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라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내가 방황하는 이유를 깨닫게 됐다. 고민했던 시간들과 지난 선택들에 조금 더 자신을 갖게 됐다. 같은 마음으로 걸어나간 정혜윤 작가의 행보가 나에게 용기를 준 덕이리라. 실제로 최근 나는 가치관이 통하는 사람들과 만나며 많이 행복해지고 건강해졌다. 몸도, 마음도. 참 신기한 일이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작가라고 소개될 수도 있다니.
나를 표현하는 수식어로
또 하나의 상자를 연 기분이었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한 때 나는 나를 수식하는 언어가 단 하나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기존의 틀 안에서 그것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니 괴로울 수밖에. 그런 나를 망치로 두드려 깨운 것이 소설가 김영하였다.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이라는 주제로 했던 TEDx 강연이었다. 내가 '다중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인식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정혜윤 작가 또한 비슷한 메시지를 보낸다. '아티스트가 되어라'라고. 가장 나다워진다는 것이 경쟁력인 시대, 그녀는 '나다워진다는 것'은 결국 '자유 의지로 삶을 스스로 설계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화두를 던진다. 자신의 인생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나간다는 의미에서 모두가 자기 인생의 크리에이터라고. 인생을 살아가는 건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일, 내 생각, 내 결정에 달려 있다는 것.


자기 삶의 아티스트가 된다는 건 그저, 마음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가 즐거워하는 순간들을 찾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멋지고 사랑스럽다. 이 한 문장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사유하며 보내왔는지 느껴져서. 나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와 닿았던 <퇴사는 여행>. 모두가 읽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대화해 주세요. 그럼 나는 분명 행복해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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