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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Feb 27. 2020

바리스타들의 편지

a Letter from the Barista

편지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한 사람만을 위한 글, 편지에는 곳곳에 따스함이 묻어 있으니까. 오늘 소개하는 수집품은 2019년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열린 '다가오는 커피 : a Letter from the Barista' 행사장에서 수집한 조금 특별한 편지들이다.




사이즈 :  127* 182 mm (양손으로 들고 읽기 좋은 사이즈)

재질 : 랑데뷰 180g (추정)


9명의 커피를 '하는' 사람들이 써 내려간 제각기의 편지들. 이 글들이 어찌나 좋던지 집에 돌아와서도 읽고 또 읽었다. 문구함에 소중하게 보관해 두고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오면 꺼내어 함께 읽기도 한다. 어느덧 귀퉁이가 나달나달해지기 시작해 위기감으로 기록해보는 수집 노트.




커피를 내어주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는 공간. 혀끝과 코끝을 깨우는 감각의 경험, 커피잔 위로 오가는 이야기.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각자가 얻어 가는 영감. 커피를 '하는' 사람들은 최상의 커피 한 잔을 내리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고민합니다. 최상의 커피를 고민하는 사람과 그걸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만나는 것. 그런 진짜 커피를 경험하고자 하는 당신을 초대합니다.

다가오는 커피 : a Letter from the Barista 초대의 글


이 기획이 정말 좋았던 건 좋은 커피를 건네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성공담이나 실용적인 팁을 듣는 것과는 분명 다른 느낌. 무언가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의 고유성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것을 함께 하고 있다는 동시대적인 감각이 좋았다.


편지의 형태였기에 이러한 느낌이 만들어졌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대리하여 정제한 말끔한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커피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생각들을 담백하게 담아낸 글. 편지 말미에 적힌 각자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표현한 문장들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자주 가는 메쉬커피와 로우키의 편지를 읽을 때는 내가 마주했던 그들의 얼굴이 떠올라 포근해졌다. 이 곳에도 옮겨 본다.


안녕하세요, 메쉬 커피입니다. 만나서 참 반가워요. 참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보통은 일로 만난 사람들은 이메일, 친한 사이는 SNS 메시지를 주고 받으니까요. 편지를 어떻게 써야하나, 무언가 잊어버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메쉬에 오신 분들이 메쉬만의 분위기를 느꼈다면 기쁜 일입니다. 그 기운이 긍정적인 에너지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만의 고유한 분위기와 '참 좋은 사람이구나'라고 느껴지면 기분이 좋잖아요. 메쉬가 저희의 취향을 담아내는 그릇 같은 공간이길 바랐어요. 지금은 바리스타들과 저희 문화를 좋아하는 손님들을 담아내는 공간이죠. 공간은 단지 도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브랜딩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어요. 커피에 대한 저희 생각이나 접근 방식, 철학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죠.

그래도 물리적인 공간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만나서 눈을 마주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메쉬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를 느끼고 분위기를 공유하며 서울숲 성수동이라는 동네를 재발견합니다. 물론 저희가 첫 단추를 채웠고 둘의 생존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머무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쉬를 이제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사람들의 메쉬로요. 모든 사람의 취향을 더 반영할 수 있게. 슬플 때도 있는데 요즘은 자유로워지는 기분도 들어요.

커피를 마시는 일, 원두를 고르고 집에서 내리는 일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문화이길 바라요. 좋은 커피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우리 커피를 마시게 할까요? 지금도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오예! 스페셜티 커피!'를 쓸 때도 커피를 모르는 사람이 쉽게 이해하고 커피의 매력에 빠지길 바랐어요. 저희가 우유를 베이스로 하는 흰 커피 맛집인 것도 그런 이유예요. 제가 카푸치노나 카페라떼를 유독 집착하지만,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는 메뉴예요. 진한 커피 맛을 내는 힙스터의 플랫화이트도 매력적이지만 마시기 편한 '커알못'의 밀크커피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편인데 다른 문화에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커피를 즐겨요. 바리스타들은 여행 갈 때 본인들의 커피와 장비를 가방에 꼭 챙겨요. 어떤 문화가 더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편견을 버리고 생각을 확장할 필요가 있어요. 이번 행사에 캠핑장 분위기를 연출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거예요. 좋은 커피를 마시면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뀐다고 믿어요. 커피 파워. 제가 생각하는 커피의 힘이죠.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싶어도 커피 필터를 어떻게 접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하더라고요. 커피를 내리는 즐거움에 빠지고 싶은 분들, 무엇이 궁금한가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메쉬에서 커피를 로스팅하고 내리는 아티스틱커피듀오 김현섭과 김기훈이 보냅니다.

메쉬 커피
스페셜티 커피를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곳이자
사람들과의 관계안에서 성장하는 곳


글에서 사람이 느껴진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메쉬커피의 두 사장님들에게선 진심으로 성수동이라는 동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아끼고 좋아한다는 게 느껴진다. 커피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태도 또한 느껴진다. 메쉬커피에는 갈 때마다 새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바스크 치즈 케이크를 굽고, 공연이 벌어지고, 매장에서 만든 인절미를 나누고, 커피로 떠난 여행기를 들려주고, 친구들의 팝업이 열린다.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어떤 소식이 있을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가게 되는 동네 사랑방이다. '다가오는 커피 : a Letter form the Barista' 행사 소식도 메쉬에서 접하고 초대를 받아 다녀오게 되었으니 말 다 했지 뭐.



안녕하세요. 로우키 제인입니다. '로우키'라는 이름을 짓게 된 건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묵묵하게'라는 뜻이 마음에 들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수줍음이 많은 탓에 우리를 자랑하고 드러내는 것이 어렵지만, 소소하게 주변 사람들과 얘기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커피를 소개하는 일은 재미있었어요. 어렵게 구한 커피를 손님들과 나누다 보니 사람들이 생각보다 커피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맛의 뉘앙스를 많이 궁금해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러다보니 각각 커피에 담긴 스토리와 맛의 포인트를 짚어 주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돈되고 선명한 노트만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동네 주민들을 위한 커피를 한 잔 한 잔 내리는 동안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즐거운 일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나이를 먹고 있는 것도 잊고 살았어요. 신나고 즐거운 일에 집중하느라 밤이 지난 줄도 모르던 기억, 월요병 없이 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진 기억, 없으신가요?

로우키
Why So Serious?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당신이 이 커피를 맛있게 마신다면, 그걸로 충분하오니.

로우키는 2010년 커피점빵을 시작으로 남양주 로스터리와 로우키 성수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Good coffee in town'이라는 모토로, 우리가 있는 동네의 사람들에게 좋은 커피를 소개하고 그 스토리를 전달해주며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글을 읽을 때에는 로우키의 커피 바에서 싱긋 웃으며 커피를 건네던 건강한 제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로우키성수점에서 커피를 마실 때면, 언제나 내가 선택한 커피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들을 수 있다. 테이크 아웃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 로우키의 시작이 된 커피점빵은 내가 어릴 적부터 살던 동네, 광장동에 자리하고 있다. 광장동은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조용한 동네인데, 그 곳에서 로우키가 시작되었다니 반가운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Good Coffee in town'이라는 그들의 슬로건이 퍽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광장동은 정말 '타운'이라는 단어에 꼭 부합하는 동네이니까.



하나씩 가져갈 수 있도록 걸어 두었다. 만세! 고맙습니다!


기록상점에서 이 글을 나눠 읽던 중, 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좋은 글을 끌어냈을까요? 저는 그게 궁금해요.' 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그랬을까? 당시에 찍은 사진을 찾아 보니 이 모든 글은 기획자의 편지에 답신으로 쓰여진 것이었다. 각각의 사람들이 가진 고유성을 알아보고 그것에 일종의 경의을 표한 것에 되돌려 보낸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편지에 이어 그들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수도 있었고, 각 브랜드에서 선곡한 플레이리스트를 감상할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마음에 남는 기획 :) 애정이 없었더라면 할 수 없었던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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