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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Mar 01. 2020

우리의 커피 문화에 대한 단상

낮과 밤의 커피,겨울 ② 커피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커피를 즐기는

삶의 맥락




요즘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집에서 커피와 차를 즐기는 시간도 늘었다. 보통 아침에는 커피, 저녁에는 차를 마신다. 분쇄된 원두의 향을 맡으며 천천히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좋다. 뭐랄까. 하루를 여는 의식 같은 기분이 든다. 같은 원두인데도 어떤 날은 쓰고 어떤 날은 달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가 문제였을까, 생각한다. 커피를 내려 책상 앞에 앉으면, 일과가 시작된다.





문화란, 쌓여가는 것이다. 내 삶이 비롯하는 물건이 쌓이고, 그 삶으로 생긴 습관이 규칙을 이루고, 거기서 관계가 생겨나고 그 관계 속에서 지혜가 생겨날 때 문화가 된다. 지난 여름, 한국식 도자수리법을 접하고서 이번엔 일본식 킨츠기를 다시 접하고 있다. 확연히 그 문화와 지혜의 차이를 헤아리고 있다. 도자수리법조차 한국 것은 한국의 그릇을 닮았고, 일본 것은 일본의 그릇을 닮아있다. 그 뿌리는 같고 방식은 각각 살아가는 모습을 닮아있다. 집(그 모든 짓고 빚는 일) 을 짓는 재료의 유사성을 가지면서 짓는 방식의 차이, 짓는 이들의 쌓아 온 관계성과 규칙들이 차이를 만든다. 가장 기본적인 원소들이 각각의 환경과 그 환경을 적응하며 이룬 성품에 따라 다른 방식의 규칙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하겠다.

작가 이서재의 페이스북


오늘 페이스북을 스크롤하던 중 이 글을 읽고 참 좋아 마음에 담았다. 삶이 비롯한 물건과 습관, 관계가 쌓여 문화가 된다는 말. 그러다 문득 어제 읽은 사회학자 노명우의 글이 떠올라 엮어서 다시 읽어 보았다. 사회학적 시선에서 커피 문화를 다뤘다. 그리고 최근 읽었던 커피에 관련된 글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느껴졌던 글이다.


터키에선 체즈베라는 황동 용기와 달궈진 모래를 이용해 커피를 만든다. 커피는 아프리카 동북부에서 출발해 터키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으로 전해졌고 흔히 ‘비엔나 커피’라 부르는 비너 멜랑주로 탈바꿈했다. 마르세유를 통해 커피를 받아들인 프랑스는 프렌치 프레스라는 변형된 터키식 커피 추출 방식을 발명했다. 핀란드에서는 치즈 위에 커피를 부어 마시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다방커피 맛을 기반으로 개발된 믹스 커피가 사랑받았고, 외국인 관광객은 이 커피를 특산물이라 여기며 사 간다.

커피를 파는 카페의 문화도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식 카페에는 와이파이와 고객용 플러그가 없으면 안되는데, 이탈리아의 카페엔 의자조차 없는 경우도 흔하다. 의자가 있어도 사용하려면 별도의 자릿값을 내야 한다.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카페를 이용하기에 생긴 관습이다.



'우리만의 커피 문화는 무엇인가'가 요즘의 화두였기에 눈길이 갔다. 위에 언급한 두 사람의 시선을 빌려 말해보자면 커피를 마시는 우리의 삶이 비롯한 물건, 습관, 관계가 쌓여 우리의 커피 문화를 이루는 게 아닐까. 커피를 마시는 우리의 일상 속 한 장면들을 세세하게 기록해보는 것, 그게 우리의 커피 문화를 이야기하는 방법일 것이다.




당신은 언제 어떻게

커피를 마시나요?




그런 의미에서 '낮과 밤의 커피'에 모인 멤버들과의 대화가 나에겐 큰 영감이 되었다. 커피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어떠한 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는지 듣는 것이 흥미로웠다. 하루를 여는 의식의 도구, 내면을 돌보는 치유의 도구, 관계의 도구, 생산성 향성을 위한 도구, 공간 경험의 도구…


노명우의 글에서 '와이파이와 플러그가 없으면 안 된다'는 문장으로 되짚어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조차도) 작업을 위한 제3의 공간으로 카페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봉준호 감독조차 오스카 수상소감으로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게 해 준 커피숍 사장님께 이 상을 바친다'라고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나 역시 논문 제출을 완료한 후 동네 카페 사장님께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속삭였다. 정말이지 그 공간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스카의 영광을 조용한 카페에게


낮과 밤의 커피를 진행하면서도 '우리의 커피 문화에서 공간 경험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공공공간이 부족한 도시 환경, 획일화된 주거 환경이 이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마음을 휴식하기 위해 소비가 전제된 공간으로 향해야 한다는 건 조금 안타까운 일이다.




커피 문화의

다양성



최근 '스페셜티 커피를 하는 곳들은 다 좋은데, 왜 이렇게 죄다 자리가 불편한거야? 오래 머무를 수가 없잖아.'라며 투덜거렸던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공간을 소비하기 위한 커피가 아닌 '일상에서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거나 그러한 방식을 선택하는 공간들이 늘어남에 따라, 커피를 마시는 나의 습관에도 변화가 생겨났으니 그런 의미에서 '불편함'을 주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은 꽤 매력적이다.


여러모로 좋았던 밤의 플릿 커피. 최애로 마음 속에 저장.



낮과 밤의 커피를 진행하며 나눈 이런저런 대화들을 떠올려 보며 어쩌면 나는 스페셜티 커피가 내포하는 '다양성'이나 '낯선 감각' 자체에 매료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미각)을 탐구하는 작업,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을 통해 받은 영감으로 새로운 대화들을 많이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그로 인해 비롯되는 물건과 습관, 관계들이 쌓여 나간다면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커피 문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대화와 작업 또한 그 흐름에 조금은 일조하기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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