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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Aug 18. 2020

‘쉼’이란 무엇일까?

Voyage to Rest 02. 쉼의 모양은 각자 다른 법



식스티세컨즈에게 해리야, 너 좀 쉬어! 라는 말과 함께 쉼 챌린지를 권유받고 얼마 후, 아침에 일어나니 입술 끝에서 익숙한 불편감이 느껴졌다. ‘아, 또 왔구나.’ 나는 피로하면 입술부터 튼다. 이건 내 몸이 보내는 신호다. 너 지금 힘드니까, 한계니까, 좀 쉬라고.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나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을 꾹 참고 하고 나면 꼭 아팠다. 그런데 이번엔 이상했다. 스스로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즐겁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힘들었던 걸까?




쉼이란 뭘까?


“나 잘 못 쉬고 있나봐. 입술이 또 이래. 근데 쉼이라는 건 뭘까? 가만히 누워 있으면 쉬는 건가? 근데 하루종일 잠만 잤는데 쉬었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도 많아. 다들 언제 쉼을 느껴?”


화요일마다 만나는 꼬불꼬불 레지던시 친구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보라님은 ‘사람마다 휴식의 의미는 다르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흥미로운 리스트를 하나 보여 주었다.


- Day-off 쉬는날 - Vacation 휴가여행 - Bird’s eye view 내 삶을 내려다보는 시선 - Relaxation 여유 - Self-talk 자기대화 - Rest 아무 것도 안하기 - Me time 나를 위한 시간 - Assertiveness 자기주장


요는, 이 모든 것이 ‘쉼’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보라님은 자신의 일상을 객관화하고 그 의미를 발견하는 행위에서 ‘쉼’을 느낀다고 했다.




쉼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른 거구나


보라님은 ‘라이프 컬러링’이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자신의 일상을 컬러로 구획짓고, 각 컬러 블록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발견해보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다.


이 작업은 자신의 일상을 흘러가는대로 두지 않고 들여다보고 정리했던 개인적인 작업에서 출발했다. 보라님 스스로 이 작업을 통해 치유를 느꼈고 그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프로젝트화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주 울곤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나만의 휴식 리스트와 휴식 메뉴판을 만들어 보면서 뜻밖의 발견을 한 경험이 있다. 알고 보니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는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 혼자만을 위한 시간에서 쉼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혼자 떠난 여행, 에스토니아 탈린 에어비앤비에서 찍은 사진. 아 너무 그립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쉼이란 '정리의 시간'이었다. 외부와 잠시 단절된, 한시적인 고독 속에서 일기를 쓴다거나 나의 지난 경험들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 속에서도 한 주의 스케줄을 정리하거나 이후의 일들을 계획하면서 좋아하는 생각 정리 덕후. 그러고 보니 주기적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비행기에서 타지에서 혼자 글을 쓰고 정리하고 나면 어딘가 시원해졌다. 그게 나에겐 쉼이었구나!



테이블과 커피만 있으면 하루종일 앉아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던 여행의 순간들.


비치는 곰곰 생각하더니 아무래도 자긴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이 가장 좋다고 했다. 비치는 미디어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을 건드리는 하나의 장면을 포착하고 오랜 시간 그것을 쌓아올려 프로젝트로 만든다. 비치의 작업 스타일은 그걸 혼자만의 작업으로 두지 않고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는 작업으로 확장시킨다는 점이다. 사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공공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느슨한 연대. 비치는 그것을 ‘프리블릭 아트’라 명명하고 흔들흔들 나아간다.

 






사실 우리는 쉼거지였어


우리는 서로 손을 꼭 붙들고 ‘우리 앞으로는 잘 쉬어보자’고 다짐했다. 오래, 잘, 일하려면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한다고. 그러더니 보라님이 같이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모임을 주최했다. (쉬자고 하지 않았어?)



‘왈이의 마음단련장’을 운영하고 있는 지언님이었다. 지언님은 좋아하는 요가원에 우리를 데리고 가 주었다. 이태원 한복판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요가바지를 입고 걸었다. 비치가 제주도에서 사 온 바지였다.


지언님은 ‘사실 이렇게 쉼을 이야기하게 된 건, 제가 잘 쉬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쉼천재’들은 쉼의 방법을 고민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잘 쉰다는 것이다. 재미있었다. 잘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쉼’을 더 많이 생각하는구나. 어쩌면 ‘쉼’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일 수 있겠구나.





혹시, 제주도 같이 갈래?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 혼자 하려고 했던 ‘쉼 챌린지’를 같이 하고 싶어졌다. 이런 대화들을 더 이어나가 보고 싶어졌다. 어느새 우리는 각자의 쉼을 나누는 자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쉼에는 다양한 모양이 있으니까, 나에게 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자기만의 쉼을 발견하는 자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우리도 그 기간동안 정말, 잘 쉬는거야. 꼭이야. 너무 늘어지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쉼의 속도를 실험해 보자. 우리의 쉼처방 프로젝트 <Voyage to Rest: 나만의 쉼을 찾아서>가 그렇게 사부작 사부작,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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