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리 Aug 23. 2020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부족하고 모자란 '지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놓기

필로스토리에서 스토리 디렉팅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는 ‘저는 할 이야기가 없어요’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유한 매력을 알아보지 못하고, 저 멀리 있는 이상을 바라보며 현실의 ‘나’는 초라하다 느낀다. 나 또한 자주 그런 기분을 느낀다.


언젠가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었던 연극 배우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 작품, 좋았는데. 다시 올려 보면 어때요?’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배우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그건 그 때에만 할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라는 답을 했다. 그 말이 계속해서 잊혀지지 않았다. 확실히, 어떤 이야기는,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다.





결국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지금'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감각, 그 안에서 결정적인 한 순간을 포착해내는 감각일 것이다. 필로스토리가 제안하는 스토리텔러 루틴에 일주일의 일상을 기록하고 회고하는 위클리 리뷰가 포함되어 있는 것 또한 그 이유다. '쓰고 나니까 정말 별 거 없는데요' 하며 멋쩍어 하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만의 보석을 발견한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도 잘 보인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야기는 맥락에 따라 쉴새없이 변화하는 생명력이 있는 존재다. 그 순간에만, 내가 현재 놓여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 있다. 지나고 나면 그 순간의 감각과 감정을 스스로 잊을뿐 아니라 어쩐지 꺼내놓기 어색한 상황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신입사원의 긴장감, 인생의 전환점에서 겪는 불안감, 아무도 모르지만 나 혼자 세웠던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 그 모든 감정들은 그 순간에만 가장 생생하게 쓸 수 있다.




어쩌면 진정한 기록의 쓸모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의 쓸모'를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기록에 나름에 쓸모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각자의 쓸모가 있을 테니까요.


<기록의 쓸모>를 쓴 승희님의 문장이다. 우리는 스토리디깅클럽에 승희님을 초청해 그 이야기를 들어 보기도 했는데, 그는 '흑역사도 역사다'라고 말하며 이상하고 어설픈 기록일지라도 꾸준히 해 볼 것을 권한다. 



어쩐지 '미완성'인 것 같아서 꺼내놓지 않은 이야기가 누구에게나 있다.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상에 없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커리어를 전환해 예술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렸었다. 친구들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단단하게 쌓아갈 때 나만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래서 내가 가진 반짝거림을 알아보지 못했고 기록해두지 않았다. 그게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완벽한 이야기는 없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야기 만드는 법, 키워드부터 문장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