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고 모자란 '지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놓기
필로스토리에서 스토리 디렉팅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는 ‘저는 할 이야기가 없어요’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유한 매력을 알아보지 못하고, 저 멀리 있는 이상을 바라보며 현실의 ‘나’는 초라하다 느낀다. 나 또한 자주 그런 기분을 느낀다.
언젠가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었던 연극 배우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 작품, 좋았는데. 다시 올려 보면 어때요?’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배우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그건 그 때에만 할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라는 답을 했다. 그 말이 계속해서 잊혀지지 않았다. 확실히, 어떤 이야기는,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다.
결국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지금'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감각, 그 안에서 결정적인 한 순간을 포착해내는 감각일 것이다. 필로스토리가 제안하는 스토리텔러 루틴에 일주일의 일상을 기록하고 회고하는 위클리 리뷰가 포함되어 있는 것 또한 그 이유다. '쓰고 나니까 정말 별 거 없는데요' 하며 멋쩍어 하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만의 보석을 발견한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도 잘 보인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야기는 맥락에 따라 쉴새없이 변화하는 생명력이 있는 존재다. 그 순간에만, 내가 현재 놓여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 있다. 지나고 나면 그 순간의 감각과 감정을 스스로 잊을뿐 아니라 어쩐지 꺼내놓기 어색한 상황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신입사원의 긴장감, 인생의 전환점에서 겪는 불안감, 아무도 모르지만 나 혼자 세웠던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 그 모든 감정들은 그 순간에만 가장 생생하게 쓸 수 있다.
어쩌면 진정한 기록의 쓸모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의 쓸모'를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기록에 나름에 쓸모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각자의 쓸모가 있을 테니까요.
<기록의 쓸모>를 쓴 승희님의 문장이다. 우리는 스토리디깅클럽에 승희님을 초청해 그 이야기를 들어 보기도 했는데, 그는 '흑역사도 역사다'라고 말하며 이상하고 어설픈 기록일지라도 꾸준히 해 볼 것을 권한다.
어쩐지 '미완성'인 것 같아서 꺼내놓지 않은 이야기가 누구에게나 있다.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상에 없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커리어를 전환해 예술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렸었다. 친구들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단단하게 쌓아갈 때 나만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래서 내가 가진 반짝거림을 알아보지 못했고 기록해두지 않았다. 그게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완벽한 이야기는 없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