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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Jan 06. 2021

노션으로 만드는 나다운 포트폴리오

커리어를 쌓아온지 꽤 오래 되었지만, '이력서'가 아닌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나'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나를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지 헷갈렸기 때문이었다. 2020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고민한 해였다. N잡러로 다양한 일을 했고, 여러 개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 더욱 '나'라는 사람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마침 푹 빠지게 된 노션이라는 툴을 활용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단순히 노션의 기능을 활용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고 생각했기에, '기획'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정리하고 나다운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어딘가 개운해졌고, 실제로 그 영향인지 포트폴리오를 정리한 이후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간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기에 앞서 '나'를 스스로 이해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를 정리해본 경험을 녹여 툴킷을 만들었고, 지난 10월부터는 매달 <시시콜콜 커리어 스토리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다. '나'의 경험을 새롭게 돌아보고, 나다운 언어로 정리하고, 노션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는 3주 과정의 워크숍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워크숍을 듣지 못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오늘은 내가 포트폴리오를 정리해 갔던 과정을 글로 기록해 보려고 한다.


 


Step 1. 경험 돌아보기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나의 지난 경험을 돌아보고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일을 회사의 이름이나, 직무의 이름이 아닌 '나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이었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이름으로 일했던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 경험을 같은 의미로 회고하지는 않는다.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객관화해서 다시 바라보는 작업을 해봤다. 나의 하루하루는 너무 사소하기에,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가끔은 이렇게 '덩어리'로 회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마케팅이나 브랜딩에서 사용하는 Customer Journey Map에 착안해서 툴킷을 구상했다. 주로 이런 브랜딩 툴에서 영감을 받아 개인의 맥락에서 쓸 수 있는 툴을 만들곤 한다. 






Step 2. 키워드 정리하기


나를 표현하는 키워드를 내가 주체적으로 정해보고 싶었다. 나도 처음 회사에서 나와 독립기획을 시작했을 무렵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눈에 보여지는 나의 전 직장이나 직무로 나를 읽는 경우가 많았고, 원치 않는 일 제안을 받는 경우도 많았는데 현실적인 이유로 거절하지 못했던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한번 정해보는 것, 그것을 선언해보는 것이 포트폴리오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이것도 역시 툴킷을 만들어서 정리했다. (툴킷 덕후...)


키워드는 지금까지 내게 가장 의미있었던 '실행(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도출했다. 시간의 흐름이나 소속되었던 조직의 이름에 구애받지 않고 3~5개의 프로젝트를 고른 후, 아주 시시콜콜하게 회고했다. 그 안에서 내 역할은 무엇이었고, 왜 그 일이 나한테 의미가 있었는지, 그것을 압축적인 키워드로 말해보자면 무엇인지. 그리고 공통되는 키워드들이 있는지를 발견해봤다. '실행'을 기반으로 키워드를 뽑은 건, '말'이 아닌 '행동'이 진짜 그 사람을 담아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나'가 아닌 '되고싶은 나'에 빠질 수 있다.


워크숍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키워드를 발견해주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키워드들을 활용해 나라는 사람의 '캐릭터(정체성)' 3개를 정한다. 이는 곧 내 포트폴리오의 카테고리가 되어준다. 3개인 이유는, 1개의 정체성으로 나를 전부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그 이상이 될 경우에는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키워드는 시기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자리를 바꾸거나 교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 이순간, 한번 '정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위와 같이 정리해봤다.


그런데 대부분 이 '정하기'를 너무나 어려워한다. '나'를 설명하는 말은 너무 많은데 그중에 3개를 꼽으라니, 어떻게 정리해야 하지? 이렇게 정해버리는 게 나를 가두는 일은 아닐까? 그럴 때는 언제든 이 포트폴리오는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현재 나의 욕망'에 초점을 맞춰 정리하기를 권한다. 


본격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기 전에 추천하는 작업이 '나는 어떤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가'를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워크숍을 할 때에도 이 리스트를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보라고 한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과 글로 적어보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생각 외로 이 부분을 생각지 않다가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브랜드에서 일하는 주니어 마케터, 지역 문화재단에서 일하는 교육 담당자, 협업할 크리에이터를 찾고 있는 독립기획자, 이런 식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써봐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금 집중해보고 싶은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게 된다. 


또는, '잘함'과 '좋아함', '지속가능함'의 삼위일체로 고려해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특히나 독립적으로 일을 하는 입장이라면 내가 100% 좋아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확실히 잘하는 일, 시간으로 입증할 수 있는 일, 나를 경제적으로 안정화시켜줄 수 있는 일을 하나의 꼭지로 쓰는 것도 좋다. 하나의 카테고리쯤은 지금은 완벽하지 않지만 앞으로 강화하고 싶은 키워드로 선정할 수도 있다. 이 생각에 대한 아이디어는 아래의 칼럼에서 얻었다.



최근 월간 스토리 툴킷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올해의 키워드를 정리해볼 수 있는 툴을 만들었다. 이 툴은 아래의 링크에서 바로 다운로드 받아 써볼수 있으니 써보셔도 좋을 것 같다.



Step 3. 포트폴리오 만들기


그렇게 '나'를 충분히 돌아보고 정리하는 데에 집중해본 후, 이제는 그것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앞서서는 '나'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이제는 내 포트폴리오를 보는 사람의 관점에 맞춰 번역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독자'를 고려한 글쓰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의 상황을 떠올려 보고, 그 사람이 보고 싶은 정보가 알맞게 들어가 있는지를 상상해본다. 모호한 말의 나열보다는 '실행'의 사례들을 넣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3개의 정체성별로 또 3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프로젝트를 정리했다. 



세부 카테고리별로는 간단한 설명과 더불어 프로젝트 리스트를 수록했다. 할 말이 많은 프로젝트라면 링크나 게시판 기능을 활용해 눌렀을 때 자세한 내용을 볼수 있도록 했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면 간단하게 노트만 했다.


처음에는 많은 기능을 사용해 보려 하지 말고 텍스트 기능만 활용해서 3개의 카테고리를 먼저 쓰고, 카테고리 아래에 해당되는 프로젝트 리스트를 써보기를 권한다. 워크숍을 진행할 때에도 가장 중요한 콘텐츠는 쓰지 않고 기능만 파악하고 숙지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생긴 일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나면 막 엄청 멋있는 제안들이 쏟아지는 거 아니야?'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난 후,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종류의 일 제안들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연결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포트폴리오를 정리할 당시, 문화기획자로서 내 정체성을 다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1번으로 문화기획자라는 정체성을 보여주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 문화기획을 주제로 하는 강의를 여러번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정체성으로는 아직 미약하지만 키워보고 싶은 '크리에이터'라는 정체성을 넣었었다.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내 콘텐츠를 창작하고 선보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선언에는 힘이 있다 이렇게 기록하고나면, 내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건 내겐 일종의 '선언'같은 것이기도 했다.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면 혼자만 두고 보지 말고 꼭 어딘가 공유해봤으면 좋겠다.



예상치 못했지만 재미있는 건 노션이라는 툴을 내가 너무 좋아하고 잘 쓰고 있다는 이유로 이 부분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노션'을 주제로 인터뷰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내가 스스로 나를 잘 알아주었다는 것, 나의 욕망을 바라봐주고 언어로 기록해주었다는 것이었다. 나의 일이 그저 그렇게 흘러가지 않게 정리해준 것이 나에겐 어떤 안정감 같은 것을 주었다. 이 글을 계기로 또 누군가가 자기다운 언어와 스타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게 된다면 기쁠 것 같다.



* 이 글을 보고 툴킷이 궁금해졌다면, 현재 크몽에 모든 노하우가 담뿍 담긴 툴킷을 구매해서 사용해볼 수 있다. 매달 진행하는 <시시콜콜 커리어 스토리 워크숍>은 현재 1월 프로그램 마감된 상태이며, 이후 프로그램은 SNS(@walkandclip)에 그때그때 소식을 올린다.



* 내 사례 말고도 다양한 포트폴리오 사례와 노션 활용 사례를 참고해보면 좋다. 나는 오히려 '포트폴리오' 사례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소개서'와 '노션' 활용 사례를 보며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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