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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05. 2016

자연담은 자연식

자연스럽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다.

우리는 매일 먹고 마신다. 요즘엔 먹는 행위가 단순한 욕구를 넘어서 관계, 스트레스, 사회적 위치 등과 맞물려있다. 친구를 만나면 카페에 가고 퇴근 후 혼자 배달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며 어떤 사람의 단골집은 그 사람의 나이, 성별, 취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늘 저녁에 뭘 해먹을지, 어른 접대에는 어떤 음식이 좋을지, 만능간장은 어떻게 만드는지는 방송 프로그램과 인터넷이 알려준다. 너무 많은 선택지를 놓고 어떤 것을 먹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남들 다 가는 맛집에서 인증샷을 찍고 누구와 함께 갔는지 태그를 하고 나면 나 오늘 잘 먹었어! 외칠 수 있을까? 화려한 사진으로 가득한 인스타그램을 끄고 가만히 내가 일주일 동안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했다. 평일에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는데 어떻게 건강식 같은걸 챙겨 먹지? 샐러드 같은 게 오히려 국밥 한 그릇보다 비싼데 내가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가 어딨어? 대부분 식사를 누군가와 업무상 함께 먹어야 하는데 내 몸에 좋다는 거 혼자 챙겨 먹을 수가 있나? 모든 게 다 잘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무안해지는 변명이다.


사실 이 모든 말은 내가 회사를 다닐 때 매일 했던 불평이다. 그래도 남들 눈엔 까다롭게 보일만큼 매운 음식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나름 잘 챙겨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아침마다 미친 듯이 허기가 몰려왔고 퇴근하고 나서 위를 가득 채우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잃은 듯 휘청거렸다. 점심에는 보양식이라고 사람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만족스럽게 먹고나도 내 몸은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후에 몰려오는 졸음을 쫓기 위해 초콜릿 과자 한두 개를 입에 물면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던 내가 회사를 그만두자 어쩔 수 없이 밥을 스스로 차려먹게 되었다.


처음에는 반찬 만들기가 귀찮아서 한 그릇으로 끝낼 수 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먹었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를 아무거나 대충 올리브유에 볶아서 보리밥에 된장을 얹어 먹기도 하고 과일에 그릭 요구르트와 꿀을 부어 먹을 때도 많았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충분히 수면을 취할 수 있었는데 분명 먹지 않는 시간이 더 길어졌음에도 아침에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몸이 끌리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단지 스스로 차려 먹는 일상에 익숙해졌을 뿐인데 속이 더 이상 더부룩하지 않았고 먹는 양도 많이 줄었다.


이제는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먹는지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식자재를 신중히 고르고 유기농을 '고집'하는 것과 어떤 메뉴를 먹을지에 '집착'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했으니까 비싼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어. 음식이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지. 저 식당에 가서 저 메뉴를 꼭 먹어야겠어. 내가 먹을 음식에 대한 욕구가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고 외부에서 주어진대로 따라가면 쉽게 소유욕이 생기고 분명히 그 욕구대로 행동하면 행복할 거라고 최면을 걸게 된다. 왜 그렇게 먹고 마셔야 할까?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잊고 사는 요즘 먹는 것 또한 현대인들의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나 스트레스 해소용 방안으로 사용되고 있다.


며칠 전 반가운 요청이 하나 들어왔다. 나같이 침묵하는 소시민이 아닌, 생각한 대로 행동하며 사는 친구가 새로운 공간을 열면서 손님들에게 제공할 소박한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동안 소소하게 내 음식들을 먹어온 친구와 함께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자연식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로 했다. <문숙의 자연식>이라는 좋은 책을 참고하여, 비워내고 채우는 음식의 기본적인 능력을 최대한 살리고자 음양오행의 원칙을 생각하며 메뉴를 구성했다.


기본적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채소는 최대한 우리 땅에서 재배한 것을 고른다.

2. 버리는 것을 줄이기 위해 유기농을 사용한다. (뿌리와 껍질같이 쉽게 버려지는 부분도 사용한다.)

3. 차가운 성질과 따뜻한 성질을 모두 생각하고 다섯 가지 색과 맛이 모두 담기게 한다.

   (빨강, 노랑, 초록, 흰, 검정 / 쓴맛, 단맛, 신맛, 고소한 맛, 매운맛)

4. 기름에 볶는 대신 물에 데치고 삶는 방법을 사용한다.

5. 조리시간을 단축하여 원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다.

6. 소금의 양을 줄이고 약간의 간장과 후추, 꿀 이외의 조미료는 쓰지 않는다.


재료 준비


* 레시피는 <문숙의 자연식> (2015, 샨티)를 참고하여 수정하거나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무 피클

새콤한 맛의 피클이 입안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1. 유기농 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2. 소금을 뿌려 2시간 정도 절인 후 물에 씻어낸다.

3. 사과즙, 간 마늘 약간, 올리브유, 감식초를 섞어 무가 살짝 잠길 정도로 붓는다.

4.  하룻밤 숙성시킨다.


* 집에 좋은 사과즙이 있어서 사용했지만 없는 경우 꿀을 사용한다.





병아리콩 토마토 샐러드

영양가가 높은 병아리콩과 새콤한 방울토마토, 쌉쌀한 고수를 함께 요리하면 색감과 영양이 매우 좋다.

1. 병아리콩을 물에 넣어 하룻밤 불린다. (12시간 이상)

2. 솥에 넣고 부드럽게 씹힐 때까지 삶는다.

3. 방울토마토를 끓는 물에 30초 정도 데치고 껍질을 벗긴다. (벗긴 껍질은 버리지 않는다.)

4. 고수나 파슬리를 씻어 잎을 뗀다.

5. 소금, 후추, 올리브유, 감식초를 넣고 버무린 후 식힌다.


* 일부러 정확한 양을 적지 않은 것은 맛을 보면서 맞춰가면 되기 때문이고 과하지만 않으면 괜찮다.

   방울토마토 껍질은 당근 수프를 만들 때 사용한다.

   감식초는 신맛이나 짠맛보다 단맛과 구수한 맛이 강했다.

  매실식초나 발사믹 식초를 사용해도 되지만 너무 톡쏘지 않게 주의한다.



단호박 버무림

호두의 따뜻한 기운과 단호박이 잘 어울린다. 통 호두의 경우 쓴 맛이 강했는데 물에 더 불려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 껍질째 토막 썰기한 단호박 또는 땅콩 호박(버터넛 호박)을 준비한다.

2. 프라이팬에 물이 깔릴정도로 붓고 호박을 볶듯이 익힌다.

3. 다른 프라이팬에 통 호두를 약한 불에 볶다가 간장과 물을 조금 넣어 졸인다.

4. 다 익은 호박과 호두에 꿀, 계핏가루, 건포도를 넣고 버무린다.


* 통단호박을 사용할 경우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린 후 잘라야 잘 썰린다.

   삶지 않고 프라이팬에 물과 함께 볶으면 푹 익어 으깨지는 것을 방지한다.

   단호박과 땅콩 호박 두 가지를 모두 사용했는데, 단호박은 껍질까지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땅콩 호박은

  익히지 않아도 잘 썰리고 단맛이 더 돌았다.



당근 단호박 수프

요즘 날씨가 추워 꼭 수프를 만들고 싶었다. 당근을 많이 넣었지만 채소국물의 색과 단호박 때문에 색감이 꼭 단호박죽이다. 집에서 만들 때는 삶은 팥을 얹었는데 씹는 식감이 있어 더 좋았다.

1. 먼저 채소국물을 만든다.

2. 다른 요리에 사용한 채소의 껍질과 뿌리를 모두 모아 흙을 씻어낸다.

(양파 뿌리와 껍질, 토마토 껍질, 파슬리 줄기 등)

3. 재료가 모두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30분 정도 끓인 후 체에 거른다.

* 채소국물은 모두 유기농 채소일 때만 만든다.




4. 양파 두 개를 채 썰어 올리브유에 볶는다.

5. 갈색이 돌기 시작하면 당근과 남은 단호박을 토막 썰기 해서 넣는다.

6. 조금 볶다가 채소국물을 넣고 끓인다.

7. 재료가 모두 익으면 믹서기로 간다.

8. 삶은 팥이 있으면 얹는다.

*날씨가 추울 땐 생강을 조금 넣어 끓여도 좋다.

 간을 하지 않아도 채소국물 덕분에 간이 맞는다.



데친 채소

우리가 평소에 생채소를 먹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제철 채소를 살짝 데쳐 소스와 함께 먹을 수 있게 준비했다.

1. 색을 고려해서 제철 채소를 준비한다.

    (콜리플라워, 적색양파, 당근, 방풍나물)

2. 색이 연한 것부터 데친다. (30초~1분)


* 너무 오래 데치지 않도록 주의하고 생으로 먹어도 좋을 채소로 고르면 좋다.








타히니 소스

이름은 어렵지만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1. 볶지 않은 통참깨를 하룻밤 전에 미리 불려둔다.

2. 믹서기에 통참깨를 넣고 올리브유와 꿀을 넣으며 잘게 간다.

3. 레몬즙을 짜서 넣는다.




우리는 매일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면서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명한다.


어떤 사람이 가치 있는 생각을 하고 높은 이상을 꿈꾸면서도 먹는 것이 패스트푸드뿐이라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진실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박하고 맛있는 한끼 식사 준비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맛집을 검색하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인증샷을 찍는 시간에 재료를 하나하나 고르고 빠르게 요리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자연스럽게 식은 후에 먹어도 맛있고 음식이 서로 섞여도 거북하지 않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은 누구나 누릴 수 있다.


수토메 오픈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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