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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30. 2017

어떤 학교를 가야 할까?(2)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멕시코 여행 드로잉


캐나다의 4년제 미술대학에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1년의 파운데이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1년 동안 세부 전공을 정하지 않고 듣고 싶은 수업을 선택하고 다양한 스튜디오 코스에 참여할 수 있다. 2학년 때는 전공 방향을 정하지만 프로젝트를 위해 다른 전공 수업도 듣게 된다. 그리고 3, 4학년 동안 집중적으로 개인작업을 하고 졸업전시회를 한다. 대부분 학교에 디자인 전공이 있지만 같은 시각 디자인이라도 학교마다 추구하는 방향성이 조금씩 다르다.


최근에는 순수미술을 하기 위한 벽이 허물어지면서 굳이 미대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고 예술가로 살아가는 방법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트스쿨에 가는 의미가 예술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양한 재료를 되도록 많이 경험해보고 순수하게 자신만의 인생 주제를 탐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얻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직장인이 칼퇴를 하고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화실에서 물감을 짜고 주말에는 가끔 가까운 드로잉 트립을 떠나는 일상은 내 경험상 유지하기 참 힘들었다. 결국 퇴근 후 취미미술을 하기 위해 어딘가로 향한다는 것은 바쁜 생활의 연장선에 있고 삶의 보람을 느끼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내 머리에 새로운 자극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는 하루의 끝에 억지로 의자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전혀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계속 살면 결국 일과 체력을 위해 나머지를 포기해야 하고 취미로만 남아있는 그림은 그저 조용히 사그라들 것 같았다. 나에게 그림은 눈에 보이는 몇 점의 캔버스가 아니라 인생 주제를 탐구해가는 언어이고 그 과정이 더 중요했다. 


삶의 방향을 바꾸려면 도전을 해야 하고 일정기간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데 나의 취미생활을 넘어서는 결정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만 19살에 대학교를 가고 4년 후 졸업을 하면 대학원이 아닌 이상 다시 대학교에 가지 않는 삶이 상식인 사람들의 눈에 다시 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도 스스로 4년제 대학을 알아볼 때 선뜻 결심하기 어려웠을 만큼의 편견이 있었다. 다시 4년을 온전히 공부하기 위해 써도 될까? 돈 때문에 걱정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을 다시 감당할 수 있을까? 4년 뒤면 내 나이가 얼만데…


하지만 내 마음 한쪽에서는 그 소중한 시간을 간절히 바라는 욕망이 있었다. 몇 년 동안 그림만 생각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지, 그리고 내 그림들이 발전하고 깨지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이 얼마나 짜릿할지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개인용 스튜디오와 졸업 작품들을 보면 질투가 났다. 취업을 못하면 다시 한국에 돌아와야 하고 지옥 같은 업무환경의 회사들에 입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미술만 생각하며 보낸 4년 동안의 경험이 나에게 어떻게 남을지 궁금했다. 


부러웠던 개인 스튜디오 작업 사진


그래서 결국 내 욕망이 닿아있는 학교들을 지원했고 합격 메일을 받았지만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며 한동안 끙끙댔다. 


누군가의 삶이 다른 이에게 정답이 될 수 없다. 내가 하는 선택이 미래의 나에게 최선이라는 보장도 없고 후회를 해도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눈 앞에 주어진 선택지를 저울에 올려놓고 결과를 감당할 용기를 얻는 시간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인생의 한 부분을 돌아가게 되더라도 결국 큰길에서 다시 만날 거라는 작은 확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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