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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효선 Apr 03. 2022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험회피가 높은 기질, 봄의 마음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완벽주의? 나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 미리 포기하는 것? 언제까지나 준비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준비 기간이 오래 걸렸다. 막상 하면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이 아닌데 그걸 하기 위해 준비하는 워밍업 시간이 더 걸린다. 마음의 준비? 어떤 의식? 여기서 걸려 넘어지면 진짜 해야 할 일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큰 일도 아닌데 불안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하기도 전에 걱정과 고민들 때문에 지쳐버린다. 

나는 위험회피가 높은 기질로 안전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극도로 공포를 느낄 때가 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사방에 놓인 여러 가지 것들이 나를 죽게 하는 무기로 변한다. 이런 생각대로라면 나는 금방이라도 죽을 수 있다. 집 밖에 나가면 그런 일들이 수백 개나 된다. 그러다 보니 삶이 제한되고 수동적이 되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기질을 상쇄시키기 위해 긍정적인 관점으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나쁜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해 걱정한다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겸허히 받아들이자고 자신을 설득한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사는 게 자기 마음대로 다 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겸손을 배운다.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다시 시작할 힘이 있음을 알았다.

나는 어릴 때 긍정적 피드백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딱히 좋은 행동이 강화될 일은 없었던 반면에 혼이 난 적은 많아서 행동이 억눌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게 좋고 싫고를 떠나서 익숙한 것을 찾는 경향이 있어서, 늘 나를 함부로 대하고 혼내는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찾았던 것 같다. 나에 대한 칭찬이나 사랑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부모님이 심어준 나의 자아상(너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늘 언제나 모든 것을 망치고, 바보 멍청이 같아, 라는)은 문신처럼 깊게 새겨져 나는 그 사실을 오랫동안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나보다 부족해 보여도 당당히 잘만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고, 생각보다 날 좋게 봐주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부모님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이었다고 해도 그때의 부족했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어린 나이에 뭔가를 잘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이 아니었다는 것, 부모님의 표현법이 별로 좋은 방식이 아니었으나 그것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대물림된 표현방식이라는 사실도.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에서 오는 자유가 나를 가볍게 했다. 마음이 아직 다 깨끗이 비워진 것은 아니지만 좋은 자아상도 들어와 앉았다. 나는 내가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기로 했다. 내가 하는 일,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나는 욕을 먹을 만한 행동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다. 말도 안 되는 죄의식을 심어주는 사람들은 이제 한눈에 알아보고 멀리한다.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결핍이 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부족한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상대방이 싫어서 어쩔 줄을 모른다. 화를 내고, 비난하고, 공격한다. 그게 자기 자신에게 하는 행동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남의 칭찬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남의 평가와 판단에 영향을 덜 받게 되었다. 내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평가하는지가 중요했다. 예전에는 칭찬을 받기 위해 행동했다면, 지금은 내 만족을 위해 행동한다.   

아무튼, 봄날이다. 꽃들이 있어서 위로가 되는 계절이다. 겨울의 바람은 날카롭고 정신을 번쩍 들게 하지만 봄의 바람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가와 모든 것이 괜찮다고 하는 것 같다. 봄이 날 대하듯이 나도 타인에게 너그러운 모습이기를. 봄과 같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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