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의 날씨
회색의 우중충한 날씨가 내 마음의 색과 비슷해서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노랑과 주황빛으로 가득한 날씨는 모든 것들이 너무 명확하게 보인다. 나의 우울도 더 잘 보일 거 같다. 날씨가 좋을 때면 기분이 좋은 듯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들뜬 동생의 모습을 보면 내심 속으로 놀란다. 그 흥을 깨지 않기 위해 나도 즐거운 척해본다. 나도 한번 흥얼거려 볼까? 그러면 기분이 좀 나아지려나? 그러나 곧 어색함에 움츠러든다.
오늘같이 어둡고 축축한 날에는 나도 한껏 구겨진 얼굴로 힘 없이 늘어져 있어도 된다고 합리화한다. 비가 좀 많이 왔으면 좋겠는데. 창 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한다.
회색의 내가 회색 빛 거리를 걸어 다닌다. 기분이 좀 좋았으면 좋겠는데. 강가에 힘없이 떨어진 나뭇잎이 아무 저항 없이 정처 없이 떠내려가고 방황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우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감정은 옮는다고 해서 나 때문에 함께 있는 사람이 우울하면 안 된다는 강박을 느낀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뚫고 나오는 우울까지는 어쩌지 못하겠지. 그래서 나는 내 기분에 영향받지 않을 정도로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강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부담이 없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런 밝은 에너지는 어떻게 만들어내는 걸까?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기분이 좋았으면 하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좀 나으려나. 나도 어릴 때는 작은 것에 기뻐하고 신나 하고 즐거워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억지로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웃을 수 있으니 집에 가면 진이 빠져 지쳐 누워만 있는다.
그래도 긴 터널을 지나 끝내 드디어 빠져나오면 나도 진심으로 자연스럽고 환하게 웃음 지을 날이 오겠지. 맑은 날씨에 어울리는 주황빛 웃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