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의 아픔은 온전히 견딜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짐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픔, 고통을 꾹 참으며 지내왔다. 울지도 않고 착한 아이였다. 그렇게 애써왔는데 지금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만 같다.
누군가에게 정말 기대고 싶은 순간에도 마음껏 기대지 못했다. 나라는 존재가 짐처럼 느껴져 버림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 혼자서 아등바등 헤쳐온 삶이 안쓰럽다.
어릴 때부터 일기를 많이 썼다. 두렵고 불안하고 외로울 때면 일기를 썼다. 감정을 쏟아내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털어놓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나열하기도 했다. 글을 쓰고 나면 크게 요동치는 감정이 좀 가라앉았다. 글은 나를 치유해 주는 존재였다. 그래서 글쓰기를 멈출 수 없고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제는 좀 더 재밌고 활기찬 글도 써보고 싶다. 주로 우울할 때 글을 쓰다 보니 삶의 비극을 주제로 많이 다룬 것 같다. 힘들었던 일, 괴로웠던 일, 마음 다쳤던 일… 부정적인 감정으로 똘똘 뭉친 글이 써졌다. 그래도 쓰고 나면 조금이라도 늘 풀어졌기에 쓰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책과 글쓰기 없이는 살기가 훨씬 힘들었을 거다.
문득 나의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한다.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영영 벗어나고 싶다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그것을 너무도 싫어해서 마주하지 조차 않은 것에 대해서. 묵은 감정들은 내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서운 존재가 아닌 상처받아 다친 얼굴로. 나는 그 얼굴이 너무 무섭고 감당할 수 없을 거 같아 무시했던 거다. 그 존재들도 나였다. 오롯이 내가 끌어안고 가야 할 ‘또 다른 나’들이었다.
나 혼자 고귀하고 잘난 것처럼 여길 때도 있었다. 나는 순수하고 다른 누구는 아니라며. 누구는 못됐고 욕심이 많고 심술궂다고. 그건 큰 착각이었다. 나도 다를 바 없는 그냥 비슷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잘못을 저지르고 욕심을 내고 악에 가까운 행동을 하기도 하는. 그런데 선에 가깝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나였다.
그동안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기에 인연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고 판단하고 비난했다. 정말 나랑 안 맞을 수도 있지만 평가, 판단이 숨 쉬듯이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한 거 같다. 나부터도 그런 평가의 대상이 되면 기분이 언짢을 것 같다.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따뜻하고 명료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사는 세상이 따뜻해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