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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일상

다시 일을 시작했다

by 어효선

9월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9월 1일 자로 갑자기 일을 하게 돼서 춘천에서 원주로 왔다. 일터에서 사정을 봐주셔서 집을 구할 동안 머물 수 있게 매트리스와 이불을 주셨다. 2층 상담실 공간에서 샌드위치 포장해 와서 먹고 자고 하면서 퇴근하면 방을 알아봤다. 일주일 만에 방을 구하고 바로 이사했다. 고맙게도 엄마와 동생과 외삼촌이 도와주셨다. 주방이 좁아서 좀 아쉽지만 혼자 살기엔 괜찮은 곳 같다. 반려동물 키우는 게 가능한 빌라라서 거의 대부분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 같다. 밤에 시끄럽지만 않기를 바랐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많이 시끄럽지는 않다.

낮잠을 못 자는 게 힘들다. 피로가 다시 쌓이는 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일하면서 너무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지 않으면 좋겠는데 내가 하는 일 자체가 좀 힘든 일이긴 한 것 같다. 그래도 보람찬 일이니 열심히 해봐야겠다. 청소년아이들과 함께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함께 일하는 분들도 다들 좋은 분들인 것 같다.

일하면서 긴장이 많이 되고 모르는 게 많아서 부담이 된다. 배워가면 되겠지만 3개월은 적응기간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여기는 가정형 위센터 대안학교인데 나는 체육 수업을 맡게 되었다. 트레킹, 자전거가 이곳의 체육수업의 주목적인데 숲을 거닐면서 힐링하고 체력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의 다 힘든 체육을 싫어한다. 너무 힘들지 않은 코스로 알아보고 안전하게 다녀야 한다. 얼마 전에 트레킹 하다가 넘어진 아이가 있어서 안타까웠다. 다리가 까져서 피가 났는데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다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데 산은 아무래도 집중을 잘 못하거나 발을 잘못 디디면 다칠 수 있어서 준비운동을 철저히 하고 조심해야겠다.

일하고 첫째 주 주말은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두 번째 주말은 치악산 트레일 러닝대회에 나갔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세 번째 주말은 춘천에서 덜 가져간 짐을 가져가기 위해 왔다. 동생이랑 오랜만에 만나서 카페도 가고 목욕도 가기로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모임도 나가려고 한다. 저녁에 모임이 있는데 10명이 넘게 모인다. 너무 많은 인원에 부담이 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이 반가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이 사라지는 것 같다. 궁금한 것도 별로 없고 그러려니 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게 결코 다가 아니고 알아갈수록 새로운 것도 있는 법이니까.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특히 그렇다.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질문하는 것은 관심이기도 하고 노력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관심 어린 질문을 받을 때 한층 그 사람과 가까워진 기분을 받는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순간이다. 알고 싶은 마음을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푹 쉬었으니 9월부터 일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이렇게 갑자기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춘천이 아닌 원주에서. 많이 멀어진 건 아니지만 원주라는 곳은 또 새로운 곳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아는 곳도 없다. 천천히 알아가야지. 전입신고도 해서 나는 이제 원주 사람이 되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와 독립서점을 다녀야겠다. 동생이 놀러 오면 같이 갈 카페도 찾아보고. 혼자서 글쓰기 좋은 카페도 알아봐야지.

긴장을 좀 내려놓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거 같다. 내 기질이 그렇다. 하지만 노력은 해보려고 한다.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지만 꿋꿋하게 내 길을 간다. 지금 가는 길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결과이기도 하고 나에게 주어진 길이기도 하다. 36년을 살아온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앞으로 언제까지 삶이 이어질 지는 모르지만 사는 데까지는 나에게, 타인에게 잘해주고 싶다. 좋은 사람이고 싶다.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목표지점을 갖고 계속 나아가는 거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까 좋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꾸준히 하고 싶다. 비록 그동안의 일을 뭉뚱그려 나열한 것뿐이라고 해도.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와닿거나 다른 영감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다른 작가들과 연결감을 느낀다. 어떤 글을 읽게 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귀하게 여기자. 어색하지만. 그것부터가 모든 것의 시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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