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와는 다른 나

by 어효선

저녁이라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요즘은 글 쓸 시간을 내기 어렵다. 일 끝나면 지쳐서 방 들어오면 씻고 옷 갈아입고 누워있게 된다. 무언가에 집중을 할 여력이 없다. 쉴 때는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했는데 그런 여유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최근 유능감이 낮아졌다. 일을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잡이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길잡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일이 부담이 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지금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지만 내 부족한 능력과 한계를 마주한다. 대학원을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하나 고민이다.

상담은 계속 받고 있는데 효과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과거에 겪었던 슬프고 아픈 사건을 다시 꺼내서 그 대상에게 못한 말을 해보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분노, 슬픔은 그동안 어느 정도 느껴줘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다. 그래도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하고 당시 상처받았던 내 모습에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머리로는 이해를 다 한 거 같은데 감정이 억눌려 있나 보다.

어린 시절 마땅히 받았어야 하는 보호와 애정을 받지 못해서 결핍이 있다. 지금이라도 사랑받아도 되는데 무관심하고 함부로 대했던 부모님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그때와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편하고 그 사람들이 날 그렇게 대하는 게 편한 거다. 하지만 내면의 나는 외로움과 슬픔에 눈물 흘리고 있다.

분노는 쉽게 우울과 무기력으로 치환된다. 나는 특정 대상에게 화라는 감정을 갖는 것을 죄악시 여기는 것 같다. 화를 받아주는 사람도 없었고 화를 내면 상황이 더 악화만 되니까 참을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다 보니 그게 우울이 되고 슬픔이 된 것 같다. 화를 있는 그대로 다루는 연습을 해야겠다. 화를 내는 게 성숙한 건 아니니까 화가 난다고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모든 감정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 경험이 부족했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옳은 것이다. 그렇게 내가 나를 지지해주고 있다. 힘든 기질을 타고났고 아픈 경험들을 했지만 현재는 늘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다. 아픈 경험을 반복하기 싫고 두려워서 어떻게든 안 겪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먼 길을 돌아오기도 하고 회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이왕에 마주해야 할 일이라면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마주하면 좋겠다. 예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있다. 더 강하고 성숙한 내가. 결과도 다를 것이고 느끼는 감정도 다를 것이다. 나를 다독이며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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