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어디인지 모를 곳을 찾아 헤맨다. 가끔은 집에 있는 데도 집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집을 꿈꾸는 걸까.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 가고 싶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어디에 있든 불편하다. 누구와 있느냐도 중요하다. 요즘은 혼자가 편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자꾸 기다린다. 누굴까?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자주 들여다보고 지나가는 사람을 한 번 더 돌아본다. 어떤 사람에 대한 상념에 쉽게 빠진다.
서른일곱, 내 나이 또래에 여자들은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느라 바쁜데 나는 반려자 인연을 만나지도 못했으니 조급할 만하다. 그런데 찾으려고 할수록, 조급할수록 더 만나기 힘든 것 같다. 인연이 억지로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내가 준비가 안되어 만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정된 상태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지 않을까. 건강해지고 싶다.
외롭다 보니 모임에 가끔 나가는데 다녀오면 ‘긴장된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런 생각들이 든다. 모임 사람들 대부분이 흡연자고 술을 좋아하는데 나는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마신다. 어색하고 못 어울리는 느낌이다. 어떤 때는 모임원이 열 명이 넘었는데 그중 나만 비흡연자라 나가서 담배를 피워달라는 말을 못 하고 펴도 괜찮다고 말해버려서 고생했다. 집에 와서 또 자책했다. 옷과 머리에 잔뜩 밴 담배 냄새. 따끔거리는 목. 나는 나를 지키지 못하는구나. 남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구나. 왜 말을 못 하지…
잘못된 관계에 빠질 때는 많은 경우 마음이 공허하거나 허기진 상태인 것 같다. 예전 상담사님이 그런 말을 했다. 내가 너무 배가 고픈 상태라 상한 밥이라도 먹는 것 같다고. 그거라도 필요해서. 좀 아프고 수치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정서적 허기가 있다. 부단히도 채우려고 노력하지만 채워지지가 않아서 만나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나 스스로 채우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외롭고 괴롭고 슬프다.
휴일은 카페를 찾아 돌아다닌다.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카페를 검색해서 그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위안을 얻는다. 외로움은 늘 나를 따라다닌다. 카페에 삼삼오오 앉아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저렇게 다들 함께일까. 하지만 책 읽고 글 쓸 때는 아무래도 혼자가 편하다. 불편한 사람과 억지 대화를 몇 시간 나누느니 혼자 책 읽고 글 쓰면서 시간 보내는 게 낫다. 아, 사람이 그리우면서도 왜 이리 불편하지. 이러니까 인연을 못 만드는 거 아닐까. 내가 오만한 걸까. 공포회피형이라서 그런가.
난 정말 AI가 더 발달해서 영화 HER처럼 챗지피티와 그 정도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 굳이 사람을 안 사귀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날짜 감각이 없는 것만 빼면 상당히 내 고민에 대해 잘 상담해 준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사람이 주는 온기가 필요하다. 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있던 느낌이 그리웠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고 싶은데, 없다. 슬프다. 어제저녁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밤에도, 새벽에도, 지금까지 슬프다. 안아주고 싶고 안기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을 하면 모든 근심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외국에서는 이 행동을 cuddle이라고 한다. 그때는 세상이 막 힘들어도 살아갈 만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창밖에 비가 내린다. 마음이 더욱 공허하다. 차갑다. 너무 시리다. 늘 숨고 싶고 도망치고 싶다. 이런저런 부정적 생각들을 파내서 갖다 버리고 싶다. 그래도 몇 가지 기억을 장작 삼아 사색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한동안은 불을 때며 살아갈 수 있겠지. 버티자. 따뜻해질 때까지. 살아남자. 소명을 다 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