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는 타율이 3할만 돼도 강타자입니다. 타석에서 열 번 중 세 번만 안타를 쳐도 잘하는 선수로 통합니다. 비즈니스 현장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매일 견적서를 작성하고 거래처에 보내지만 모두 발주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보내는 견적마다 구매로 이어진다면 누구나 쉽게 부자가 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견적서 한 장에도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발주가 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발주를 부르는 히든카드는 무엇일까요?
고객은 필요한 제품이 있고 우리는 그런 제품에 마진을 붙여서 판매합니다. 시장에는 수없는 경쟁자들이 있고 대부분의 경쟁자들은 동급의 상품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조건에서 선택받기 위해선 가격, 서비스, 사후관리 등 뭔가 특별한 혜택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이익만 앞세워 움직이면 한두 번은 팔 수 있을지 몰라도 십 년을 가는 고정거래처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고객을 천편일률적으로 대하기보다는 '고객사별로, 담당자의 성향별'로 나눠서 세밀하게 응대하는 게 필요합니다.
고객은 늘 묻습니다. 그래서 너는 무엇을 줄 건데?
지금 거래하고 있는 저의 고객사들은 회사 분위기나 담당들의 성향이 제각기 다릅니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고 기업문화의 차일 수도 있습니다.
고객사와의 거래는 크게 보면 세 가지 스타일로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누가 뭐래도 가격?
이런 경우에는 반복구매가 많거나 결제가 빠른 업체들 위주로 거래를 합니다. 인터넷과 비교해서 항상 싸게만 달라는 업체는 미안한 얘기지만 가급적 관리대상에서 제외합니다. 그 외 반복적으로 구매하거나 대량 구매를 하는 거래처는 기꺼이 마진을 줄여서 납품할 수 있습니다. 다른 거래처보다는 마진율은 적어도 년간 실적으로 보면 기여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회사 담당자들은 대체적으로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업무적으로만 정확하게 일처리가 이루어지면 그 이상 요구하는 게 없습니다. 담당자들과 사적인 영역까지 관계가 확장되긴 어려워도 대체적으로 관계가 깔끔한 편입니다. 이들에겐 합리적인 가격과 정확한 납품으로 원하는 바를 채워주면 됩니다. 이를 위해선 복수의 매입처들을 확보해서 경쟁력있는 상품을 상시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과감하게 재고를 운영해서 단가낮은 제품을 미리 확보해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팔기도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가성비 높은 상품을 거꾸로 제안하기도 합니다.
나를 제발 편하게 해주세요
고객사 담당자들은 업무로 평가받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가격보다는 본인의 일이 편해지길 바랍니다. 자신의 일을 매끄럽게 처리해주는 업체가 있다면 구매 시 제일 먼저 찾게 되어 있습니다. 견적부터 납품, 사후처리까지 전 과정을 손쉽게 지원하기 때문에 최저가가 아니더라도 일정한 마진을 인정해 줍니다. 1인 기업은 이런 고객이 많을수록 월 매출과 마진이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중간에 저희 같은 업체들이 있기 때문에 본인들의 업무가 편하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시시때때로 일이 생기면 요청을 해옵니다. 언제든 담당이 원하는 상황을 해결해 주는 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가령 타사에서 납품한 제품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거나 근무시간 외에도 긴박하게 부탁을 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신속하게 일처리를 해주면 매우 고마워합니다. 이런 부분을 평상시에 누적시켜 놓으면 발주 시 가격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서비스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서포트하는 업체에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큰 프로젝트 수주는 '만기 적금'
년간 기준으로 보면 일 년에 한두 번씩은 큰 규모의 발주건이 생기게 됩니다. 1인 기업에게 매달 들어오는 수익이 월급이라면 이런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버는 돈은 만기에 타는 적금 같은 존재입니다. 이렇게 버는 금액이 사실 목돈이 됩니다. 꾸준히 거래를 해오고 있는 고객이라 해도 가끔씩 규모가 큰 건이 나올 때는 여러 군데 비교견적을 필수로 받습니다. 단위가 크기 때문에 철저히 검증을 거치게 됩니다. 단순히 친분으로 오더를 줄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닙니다. 이럴 때는 업체 간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본인이 가지지 못한 전문성은 이미 노하우를 축척한 업체와 협력해서 팀플레이를 해야 합니다.
협력은 나의 힘
몇 년 전 반도체 재료를 만드는 M기업은 사세가 확장됨에 따라 공장을 몇 군데 더 신축하였습니다. 3년 동안 대기업에 납품할 물량이 이미 잡혀있을 정도로 매출이 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새로 들어서는 공장에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저희에게도 문의가 들어왔으나 단위도 크고 기술이 없으면 손 델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남의 일 같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감독의 마인드였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납품하는 회사 중에는 시스템 구축을 하는 C시스템이 있습니다. C시스템은 저에게 컴퓨터를 사지만 이번엔 제가 그들의 노하우를 살 차례였습니다. 그때만큼은 갑과 을이 바뀐 상황이 되었습니다. 당시 C시스템은 전산시스템 구축으로 업계 선두를 달리는 업체였기 때문에 전문성 부문에서는 이미 강력한 무기를 지닌 셈이었습니다. C사를 저의 하청업체로 두고 M기업의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경쟁업체가 있었지만 협력하기로 한 C시스템의 독보적인 프리젠테이션 능력과 사후관리능력을 고객사에서 높게 평가해서 최종적으로 프로젝트를 수주받게 되었습니다. 규모가 큰 오더를 따기 위해선 친분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을 1인 기업이 모두 가지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 평소에 우수한 협력처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과 협력하면 우회적으로 전문성을 갖추게 되고 나와 고객사 담당과의 신뢰가 함께 작용하여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M기업은 지금도 그때 구축한 시스템에 대해 매년 유지보수 계약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수주 외로도 부가수익이 생기고 있습니다. 물론 유지보수는 C시스템에 하청을 주고 있습니다.
발주는 1인 기업의 휘발유
견적을 주고 거래처 담당을 만나는 모든 행위는 발주를 받기 위함입니다. 팔지 못하면 비즈니스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