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들 Feb 14. 2020

확고한 취향의 발견이 나를 기쁘게 했다.

취향과 함께 알게 된 진정한 나

옷 잘 입는 사람들의 특징은 뭘까? 어떻게 셀프 인테리어로 저렇게 스타일리시한 집을 만들 수 있는 거지? 이 사람은 어떻게 사진을 보정하길래 느낌이 이렇게 한결같고 예쁠까?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만 봐도 나와 비슷한 듯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소비 형태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는 vlog가, 인스타그램에서는 힙한 플레이스와 각종 소비의 선두주자인 패션과 관련된 피드가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타인의 소비와 취향을 관찰하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각종 채널에서 확고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며 개성 있게 자신만의 공간을 꾸며가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고, 그에 비해 초라한 내 취향이 자꾸만 비교 대상이 되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확고함이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만 같아, 자신감 없는 나는 더욱 작아져만 갔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 나에게 “혜서는 어떤 과자 좋아하니? 좋아하는 거 골라봐.”와 같이 좋아하는 것,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하면 항상 우물쭈물 했던 기억이 난다. 문구점에 가서 생일 선물로 가지고 싶은 것을 골라보라고 해도 쉽사리 뭘 집어야 할 지 몰라 결국 아빠가 제시한 몇 가지 선택지 중에 싫은 것을 골라내고 남은 것을 선택할 지경이었다. 이런 습관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져 학생 때는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갈 때도 메뉴 하나 제대로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 했던 적이 많았다. 이랬던 내가 어느 순간, 확고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취향은 뭘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취향 찾기는 마치 미지의 세계, 우주와 같았다.


진지한 성찰을 시작했다고 해도 오랜 시간 알지 못했던 나의 취향을 단번에 알아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옷, 신발, 가방 등 패션에 관련된 취향을 알아가는 것이 참 힘들었다. 영화나 음악은 비교적 적은 돈으로 다양한 것들을 보고 들으면서 나의 취향을 정해갈 수 있었지만, 패션과 관련된 것들은 적잖은 돈이 들어가고 또 관심 가는 것들을 모두 다 시도해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멋모르고 저렴하지만 나름 쓸 만해 보이는 것들, 내 눈에 보기 좋은 것들을 사들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저렴하게 산 것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퀄리티가 떨어졌고, 점차 나이가 들어가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들로 변해갔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비싼 건 다 이유가 있겠지!”로. 하지만 비싼 제품들이라고 모두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제품의 퀄리티가 보장 되고, A/S도 확실했다. 하지만 역시나 비용의 문제, 비교적 가볍게 캐주얼하게 입고 다니는 것을 추구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느낌, 포멀한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선 활용도가 떨어졌다. 이쯤 되니 고민은 더 깊어졌다. “도대체 내 취향은 뭐지? 뭘 사야 나에게 어울리는 거지?”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쯤, 빈티지 매니아인 친구를 따라 광장시장에 가게 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빈티지의 매력에 푹 빠졌고, 드디어 내 취향을 찾은 것만 같았다.


이곳이 바로 내가 누울 자리였던 것이다!

새로 산 옷에서 느껴지는 새 옷 냄새와 옷감의 빳빳한 촉감도 기분 좋았지만, 오래된 옷 특유의 부들부들함과 눈에 보이는 세월의 흔적이 사랑스러웠다. 이 옷은 누구와 함께 했을까, 이 옷은 어떤 추억 속에 있던 옷일까 등 ‘옷의 역사’가 궁금해지면서 나도 이 옷을 입고 어떤 시간들을 만들어 갈까 기대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디자인에서 개성과 특이성이 느껴지는 점이 좋았다. 빈티지 제품이다보니 지금은 유행하지 않는 패턴이나 봉제 방식, 디테일 등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십 년 전의 제품들이 지금 유행하는 옷들과 어울릴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렇게 빈티지와 내가 가진 옷들 그리고 매년 계절별로 두, 세 벌 정도 새로 사는 옷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을 보며 재미와 흥미를 느꼈고. 그 속에서 ‘드디어 나도 내 취향을 알게 됐다!’라는 생각에 행복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앞으로 헛돈 쓰면서 마음에 들지 안 들지 모르는 것들을 ‘취향 찾기’라는 이름으로 더이상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확고한 취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로부터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자 행복이다. 지금까지 좋아하는 것, 먹고 싶은 것 하나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했던 것, 당황하고 고민했던 시간들은 스스로에 대해 깊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이걸 먹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쟤는 맛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입고 나갔는데 남들 눈에 색조합이나 매치가 이상해보이면 어떻게 하지?’ 등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만 신경 썼을 뿐,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몇몇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에 눈을 떴다. 그들만이 가진 각자의 개성 있는 디자인과 확고한 디자인 신념, 가치관이 내가 가진 생각과 통했고, 그래서 몇 가지 제품들을 구매했다. 나의 취향과 통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소비하고 또 소유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1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저렴한 제품도 있고 30, 40만원 대의 마냥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의 제품도 있다. 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브랜드의 저렴한 제품이라고 해서 보여주거나 내어놓기 부끄럽고, 남들이 잘 아는 브랜드의 비싼 명품 제품이라고 해서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과 상관 없이, 남들이 알아주는 것과는 관계 없이, 조금씩 쌓여가는 나의 취향과 기분 좋은 소비, 소유가 더욱 가치 있는 ‘나’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 마냥 기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비와 함께 진정한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이제나마, 늦게라도 시작하게 되어 참, 아주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수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이, 취향도 사람들의 수만큼 다채롭다. 그렇기에 나에게 맞는 취향을 발견할 때,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푸들 with 크로아상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쉽게 화를 낼 뻔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