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들 Feb 07. 2020

오늘도 쉽게 화를 낼 뻔 했다.

잘못 흑화했던 날들을 반성하며…

어떤 식으로든 사회 생활이라는 것을 하다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사회 생활을 도 닦는 것처럼’이라는 모토 아래 꾹꾹 눌러 참아보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명백하게 제 잘못임에도 아닌 척, 모르는 척 상대방에게 잘못을 은근슬쩍 떠넘기려 하거나 전후 사정과 맥락을 들어보지도 않고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과만 놓고 상대방을 닦달하는 경우에는 울컥 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어렵다. 


“밖에서 하는 것의 절반만이라도 집에서 해봐~ 밖에서 목소리 못 내는 애들이 꼭 집에서 심통 부리더라.”라는 엄마의 말처럼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심하고 거절 못 하는 성격 탓에 온갖 궂은 일과 하기 싫은 일들을 떠맡고도 허허실실 해야만 했다. 학창시절에 생긴 인간 관계에서의 트라우마와 장녀로서 맞벌이 하는 부모님 대신 동생을 돌보며 내 일, 네 일 가리지 않고 집안일을 했던 것들이 습관처럼 몸에 배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거절하지 못해 이것 저것 떠맡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은 고마움보다는 당연함을 내비췄고, 이런 일들이 일상이 되니 스스로에게 지치고 또 화가 났다. 남들은 급류 타고 부드럽게 내달리는데, 나만 왼쪽 옆구리 한 번, 오른쪽 옆구리에 두 번 이리 저리 치이면서 상처 입고 뒤처지는 것만 같았다. 또 열 번 잘 해도 한 번 실수하면 돌아오는 질책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달라졌다. 소위 말하는 ‘흑화’ 해버린 것이다.



여전히 거절에는 익숙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과거에 그랬듯 피치 못할 내 사정으로 인해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순간에조차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졌었던 습관은 무조건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또한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는 것들에 대해서도 잘못된 것을 바꿔달라고 하거나 다시 해달라고 할 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요구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수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의 터전에서 보냈던 어렸던 날들 동안, 손님으로부터 면전에서 외모를 비하하는 말을 듣기도,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하게 안전하지 못한 일을 시키는 상사의 지시에도 따르기도, 정상 제품을 가지고 가서 한참 후에 트집 잡으며 환불 해달라며 멱살을 잡으려 하는 손님에게까지 친절한 말씨로 응대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많이 지쳐버린 탓일까. 아니면 못된 건 더 빨리 따라 보고 배운다는 말이 나에게도 그대로 적응된 탓일까.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가진 권리 만큼은 철저하게 주장한다는 이유로 나를 대하는 상대방을 과도하게 불편하게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한 번은 오랜 시간 동안의 기다림 끝에 몇 달을 미뤄왔던 은행 업무를 겨우 끝내고 ‘이제 됐다!’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선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보니 어제 분명히 완료 되었다고 했던 은행 업무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이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내 시간과 화가 난 내 마음만 생각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고객센터 상담사는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은행 직원들이 모든 부분에 있어 실수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고객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직접적으로 창구 직원에게 말씀 해주셔야 그때 조회와 처리 업무에 들어갑니다. 아마 고객님께서 원하시는 부분을 정확히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라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그럼 지금 제 잘못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다 제 탓인가요?”라는 말이 화난 음성과 함께 튀어나올 뻔 했다. 상담사의 조리 있는 설명과 합리적 추측보다는 눈 앞에 닥친 손해와 내 마음만 생각했기에 상대방에게 감정적 상처로 남을 법한 말을 쉽게 내던질 뻔 했던 것이다.


다행히 여러 차례의 통화 끝에 일은 원만하게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공기 중으로 소리가 뻗어 나가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에게 쉽게 화를 낼 뻔 했다는 사실이 주는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길을 걸으면서 서로 경쟁하듯 클락션을 울려대는 차들을 볼 때면 “요즘엔 사람들이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는 것 같아.”라고 말하거나, 유명 연예인, 공직자 혹은 인기 BJ들의 갑질 폭로 사건들이 터져나올 때면 “요즘 애들도 인터넷 방송이나 유튜브 많이 본다던데, 저런 거 보고 배우면 안 될텐데…”라며 혀를 끌끌 차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남의 허물은 크게 보면서 제 허물은 티끌 만큼도 못 본다고,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머리로는 이러지 말아야지,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자각 없이 쉽게 화를 내고, 쉽게 욱하고 쉽게 감정 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회 생활을 도 닦는 것처럼’이라는 모토 아래 살고 있지만, 이 모토를 마음에 잘 새기지 못한 탓에 혹시라도 잘못 흑화 했던 지난 날의 나로 인해 상처 받았던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을 빌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더불어 수양이 부족했던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오늘도 쉽게 화를 낼 뻔 했음을 깊이 반성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건 맞는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