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게 두지 말자.
6살 무렵을 떠올리면, 단칸방과 욕조도 없이 세탁기가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욕실 그리고 작디 작은 부엌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엄마의 허리춤을 붙잡고 졸졸 쫓아다니던 아이에게 작은 반지하는 세상의 전부였다. 네 식구의 따뜻한 보금자리였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훨씬 전의 기억임에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면서 기억이 왜곡되는 것인지, 저마다 본인이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콕 집어내어 기억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대면하고도 누군가는 전에 없던 커다란 따스함을 느끼는 반면, 누군가는 그 순간을 떠올리면 몸서리를 친다.
6살짜리 아이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집과 33살의 두 아이의 엄마가 기억하는 집은 전혀 다른 이미지다. 아이에게는 세상의 전부이자 크나큰 공간으로, 엄마에게는 반지하에 방도 1칸 밖에 없고 부엌은 좁아 터질 지경인, 세상의 끝이자 절망 어린 공간이었다. 회사에서 퇴직하고 사업을 하기 위해 살던 집의 보증금을 빼서 투자를 하고, 보증금을 줄여 이사한 곳이 내 기억 속 첫 번째 집인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이전 집에서 쓰던 침대의 매트리스조차 들어가지 않아 버리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잘 수밖에 없었던, 창살 달린 창문 바깥으로 사람들의 신발만 보이는, 해도 잘 들지 않는 그런 집에 이사 들어가면서 엄마는 한참을 그리고 서럽게 몇 번을 울었다. 어린 나에게는 그 공간 조차 크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반지하에 단칸방은 단칸방이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가난은 시작되었고 또 예견 되었다.
기억 속 부모님의 모습에서 ‘돈’이라는 글자가 지워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게 월세를 내는 것도, 어찌저찌 2년 만에 겨우 반지하에서 탈출해 자가를 마련했지만 많은 대출금에 허덕여야 했던 것도, IMF 때문에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진 것도 다 ‘돈’ 때문이었다. 가난이 문으로 돌아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도망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서로와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되던 푸념도 시간이 지날수록 심한 감정 다툼으로 이어질 만큼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아니, 사실 많았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부모님을 떠올리면 ‘돈’이 절대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함께 떠오르듯, 내 삶에서도 ‘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는 같은 동네에서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았기 때문에 누가 더 낫고 아니고를 따질 것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중, 고등학교 때는 입고 다니는 패딩, 가방, 신발 브랜드에 따라 여유 있는 집안인지 아닌지 표가 났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좋은 친구들을 만난 덕에 지나친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은 달랐다. 강남 8학군에서 학교를 다녔다던가 외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대학은 한국으로 왔다던가 아버지가 중소기업 회장이라던가 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엄마의 하루 일당 만큼의 돈을 한 끼에 쓰는 사람들을 보며 지나친 박탈감을 느꼈다. 하루 일당이 모여 한 달 월급이 되고, 그걸로 네 식구가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형편의 사람들을 보며 열등감은 무럭무럭 자랐다. 설상가상 엄마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자가가 있다는 이유로 실제로는 빚을 갚느라 월급의 대부분을 써서 생활비가 부족함에도 나라로부터 그 어떠한 저소득층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심할 땐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3군데 다니면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쓰러질 뻔 하기도 했다. 아파도 일을 쉴 수 없었고, 힘들어도 장학금을 놓칠까봐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매 순간마다 그때 그때의 방식으로 가난과 전투를 벌였고, 나와 우리 가족은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이라는 문장을 읽은 적 있다. 20대 초, 중반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간 나는 가난하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가난한 사람 특유의 열등감과 조소를 마음껏 내비추고 살았다. ‘가난하다’는 바꿀 수 없는 진실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숨기기에 급급했으면서, 그로부터 피어난 부정적인 태도는 감추지 않고 부끄럽게도 널리 드러내 보이고 살았던 것이다. 말 그대로 ‘가난이 태도가 된 삶’이었다.
가수 슬리피는 티비에 나와 덤덤하게 이야기 했다. 본인은 가난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고, 지금도 가난하다고. 그래서 뭘 하려고 할 때도 항상 돈 걱정부터 하는 자신의 모습, 계획을 세울 때도 여유 있는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본인의 모습이 가난에서부터 비롯된 것 같아 싫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만약 우리집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살아오면서 더 많은 선택지가 내 앞에 펼쳐졌을 것이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시간에 쫓겨 급하게 무얼 골라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여유 있게 고심하고 택한 그 선택지 안에서 또다시 여유 있게 성공 가도를 향해 시간을 두고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나에게도, 30대를 바라보는 지금의 나에게도 여유는 가져보지 못한 선택지다. 그래서 지금도 불안에 시달린다. 갑자기 나나 부모님이 아파서 큰 돈이 들어가면 어쩌지, 당장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앞으로 언제까지 이 빡빡한 생활을 이어가야 할까와 같은 고민, 걱정, 불안, 불만이 내면에 항상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그나마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진 점이 있다면, 적어도 ‘가난이 태도가 되는 삶’을 살지는 말자고 다짐한 것이다. 가난은 부끄럽지 않다. 숨겨야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물론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경우에 따라서는 죄가 될 수 있지만-. 하지만 드러내놓고 가난으로 인해 생긴 비뚤어진 삶의 태도로써 세상을 대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돈이라는, 물질세계의 종이 쪼가리를 쥐고 있지 않은 것일 뿐,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까지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돈 때문에 괴로울 때가 많고, 돈으로만 가질 수 있는 ‘여유 있는 태도’를 무척이나 바란다. 하지만 당장 벼락 맞을 확률로 로또에 당첨될 수 없다면, 어느날 문득 누가 우리집 대문 앞에 돈가방을 휙- 하고 투척하고 가는 횡재를 바랄 수 없다면, 적어도 ‘돈’이 내 삶의 태도를 결정하게 두지는 말자. 괜히 배짱 좋게 한 번 깔보자면, 그깟 종이 쪼가리 몇 장이 내 인생과 나의 태도를 결정한다고 하면 두고두고 많이 억울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