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가 아닌, 이뤄놓은 것이 아닌, ‘나’ 그 자체로 판단해주길
2019년 가을 무렵부터 끈질기게 괴롭혀오던 통증 때문에 3달 넘게 매주 이틀씩 꾸준히 병원을 다녔다. 꽤 큰 병원이라 의사도 여러 명이었고 간호사와 물리치료사도 꽤 많았다. 얼핏 봐도 병원 구성원이 15명 남짓 되는 듯 했다. 병원 관계자가 많은 만큼 환자도 많았고, 각 환자마다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담당의와 담당 물리치료사가 붙었다. 담당의는 기껏 해야 3분 만나면 참 오래 보는 사이었기에 짧은 면담 시간에 최대한 아픈 것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말해야 했다. 반면, 한 번 갈 때마다 최소 20분, 길면 30분까지도 옆에 함께 있는 물리치료사와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혹시 어떤 일 하세요?”
그녀는 아마 평일 낮에,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병원을 오가는 이 사람은 도대체 무얼 해먹고 사는 사람인지 궁금했던 듯 하다. 그녀의 가진 순수한 궁금증은 이해가 됐으나,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어디 가서 내 이야기, 특히 일에 관련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면 아무리 자세히 말한다고 해도 가까운 친구들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개인 사업(스튜디오 크로아상) 하고 한편으론 글을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원이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보니, 호기심이 동한 사람들이 하나씩 질문을 덧붙이다 보면 이해하기 힘든 영역까지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 설명하기가 참 애매해진다. 너무 전문적으로 말할 수도, 그렇다고 너무 대충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끝자락에 가서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화제를 돌리려 애쓰게 된다. 이런 내 모습이 스스로 민망하고 싫어서 직업, 일과 관련된 이야기는 의식적으로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는 대화 자리가 아닌, 단 둘만 있는 고요한 공간에서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쉽게 말을 돌릴 수도 없다. 어색함을 타파해보고자 나름 궁리를 해서 질문을 던진 상대방을 민망하게 만들 수 없다는 내면의 압박 때문이리라. 그래서 “아, 글 쓰는 일 하고 있어요.”라며 허허실실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내가 하는 일을 최대한 작게 작게 축소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면 좋았을 질문은 꼭 꼬리를 물고 다음 호기심을 데리고 온다.
“와, 정말요? 멋지세요! 어떤 글 쓰세요? 책? 드라마? 혹시 제가 아는 작품인가요? 유명한 작가님이신데 제가 못 알아본 걸까요?”
으아, 이건 아니다. 나보다도 앳되어 보이는 성실한 물리치료사의 기대감이 이 정도라니… 왠지 모르게 그녀의 기대를 저버린 인간이 되어버린 죄책감이 든다.
“아, 그건 아니고요. 웹진에 에세이 기고하고 개인적으로 글 쓰고… 이런 정도예요. 아직 책 한 권도 출간하지 못한 걸요? 그래서 내년 목표가 책 출간 하는 거예요.”
“그러시구나~ 나중에 책 나오게 되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꼭 읽어볼게요!”
활기찬 그녀의 답변에 왠지 모르게 어깨가 쪼그라든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어깨가 아파 치료 받고 있는 거라 더 쪼그라들면 안 되는데…
참 한국 사람들은 무례한 건지 순수한 건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어떨 때는 너무 무례한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해서, 마치 5살, 6살 짜리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가 순수하게 본인의 궁금증에서 피어난 질문을 생각 없이 마구 뱉어내는 것과 같은 모양새를 보인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그들은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이루어 놓은 것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과 내가 그만큼 친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런 질문들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글 쓰는 게 언제부터 재미있었어?”, “글을 쓴다니, 정말 멋있다! 글을 써서 네가 이루고 싶은 건 뭐야?”라던지 “글의 주제는 보통 뭐야? 어떤 것들에 대해 쓰니?” 등 나와 내 글 자체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사회적 지위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지, 이걸로 밥은 벌어먹고 사는 것인지, 책 한 권이라도 출간해본 경험이 있는 ‘진짜배기’ 작가인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또한 그들에게 어렵지 않게, 고민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내 직업은 작가야.”라고. 한국 사람들에게 “저는 글을 쓰는 작가예요.”라고 하면, 이름부터 물어보고 본인이 아는 유명 작가들 리스트에 있는 이름인지, 본인이 읽어본 책 중에 내가 쓴 책이 있는지부터 물어댄다. 그리고 내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실망했지만 그렇지 않은 척 어설프게 연기하는 눈빛을 쏘아댄다. 하지만 달라진 공기의 흐름이 민감하게 읽히는 당사자로서는 씁쓸하기 짝이 없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글을 쓰고 있을 때 누군가 “지금 뭐 해?”라고 물어오면, “작품 활동 하고 있어.”라고 대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책을 꼭 한 권 내야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는 활동을 해야만 떳떳하게 나에 대해서 털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있어 보이는’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한 권 못 썼어도, 사람들 앞에서 잘난 듯 강연 한 번 못 했어도 매일 열심히 글을 쓰며 살고 있고, 이렇게 사는 게 좋다. 그렇기에 글 쓰는 행위에 대해 누가 물었을 때, “그냥~ 글 조금 쓰고 있어.”라고 말하며 나의 일을 겸손 떨듯 축소하는 것이 이젠 싫다. 당당하게 “작품 활동 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졌고, 이렇게 말하며 살게 되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적도, 유명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본 적도 없지만 글 쓰며 살고 있으면 그게 작가지, 무엇이 작가이겠느냐는 마인드다.
떠올려본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한다는 명목 하에 누군가에게 잘못된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는지, 그 사람 자체에 대해 알아가기 전에 그 사람이 가지고 있고 이뤄놓은 것들에 대해 먼저 관심을 표하지는 않았는지, 이 모든 것들이 무례함을 통해 이루어지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예민하지 행동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던 순간들에 나의 곁에 있던 선의의 피해자들에게 이 글을 빌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