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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들 Jan 23. 2020

인어공주 강아지를 보았다.

생명이 가지고 태어난 것 그대로를 지켜줄 수는 없는 걸까.

우리 집에는,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 집에는 올해 12살이 된 동생이 있다. 개동생이자 귀염둥이인 막내 ‘똘이’다. 똘이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에 와서 지금까지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어느 것 하나 스스로의 의지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인이자 누나로서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해주는 입장에서 항상 부족함을 느낄 정도로 똘이는 우리 가족에겐 큰 기쁨이자 위안인 생명체다.




우리 가족처럼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장면이 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앞에서 개와 목줄을 손에 쥔 주인이 사이 좋게 걸어오는 게 보이면, 폰을 보고 있다가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개의 종종거리는 발걸음을 귀엽게 바라보는 것. 이것만큼 평화롭고 절로 웃음이 나는 상황이 또 있을까?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다. 그만큼 개든 고양이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생명이 주는 기쁨과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하지만 어느 추운 겨울날, 이런 사랑스러운 존재들에게 잘못된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사랑을 주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서 가슴이 너무나도 아팠다.


내 앞에서 종종걸음 걷는 강아지가 오고 있다고 생각하면, 꺅!


불어나는 피하지방 덕에 춥지만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보고자 한 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있다. 근처에 시장이 있어서 산책할 겸 몇 번 구경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집을 나서면 자동으로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한다. 풍겨오는 호떡 부치는 기름 냄새, 빠알간 국물 떡볶이, 김 펄펄 나는 어묵 국물까지, 입에 침이 고여 다이어트에 되려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덕분에 주 2~3회의 산책 겸 운동이 꽤나 즐거운 일이 되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네를 돌다가 운동 메이트가 근처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기에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찼기에 하릴없이 손만 호호 불어가며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 아주머니와 두꺼운 패딩 조끼를 입은 귀여운 말티즈 한 마리가 산책하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강아지가 춥다며 커다란 패딩을 껴입고 뒤뚱거리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워서 계속해서 그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아지가 벤치 옆을 지나가는 순간, 스쳐가는 공기 속에서 왠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 자리에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이 없는데, 뭐가 없는지 잘 모르겠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리고 난 곧 그 이질감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강아지는 인어공주였던 것이다. 인어공주가 왕자를 사랑해서 다리를 얻는 대가로 마녀에게 목소리를 줘야 했듯, 주인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고 맛있는 간식과 따뜻한 옷을 선물 받지만 그 대가로 목소리를 잃게 된 것이다. 선천적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 이상, 주인이 성대수술을 시켰다고 생각될 정도로 강아지는 건강하고 활달했다. 그래서 더 안쓰러웠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오해한 것이길 바랄 정도로 활달하게 짖어대는 강아지가 안쓰러웠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다세대 주거지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층간소음 뿐만 아니라 반려견, 반려묘와 관련된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는 사실은, 요즘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또 공감할 것이다. 나의 개동생 똘이도 택배 아저씨나 검침원 등 낯선 사람이 오면 경계성으로 자주 짖는데, 부모님댁은 빌라이기 때문에 짖을 때마다 안아서 제일 끝방으로 데려가 진정할 때까지 안고 있는다. 이렇게 해도 위, 아래층으로 번질 소음 때문에 괴로울 이웃 주민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만 그 사랑이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가족의 가치관 덕에, 시끄럽다며 똘이를 때리거나 성대 수술을 시켜야 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수컷인 똘이는 요즘 개들은 어릴 때 무조건 시키고 본다는 중성화 수술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이 주인 자격으로 거둬 먹이고 키운다고 하더라도 생명이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을 함부로 빼앗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물론 병이 있어 신체 일부를 제거해야 하는 것과 같은 경우는 예외로 한다).




똘이를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던 중, 강아지와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건너편 벤치에 앉았다. 주인은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아주 상냥하고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로 받았고, 강아지는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던 강아지는 이내 뭐가 못마땅 했는지 입을 벌려 짖어댔고, 작은 생명이 입을 벌린 그 자리엔 공기 위에 뿌옇게 얹힌 뜨거운 입김만이 고요하게 출렁일 뿐이었다. 예쁘게 미용을 하고 따뜻한 패딩을 입은 하얀 강아지는 제 목소리가 제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도 않은지, 그렇게 한참을 허공에 대고 짖고 또 짖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존재와 전화를 마친 주인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은 후, 조금 덜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다시금 발길을 재촉했다. 때마침 화장실에 다녀온 운동 메이트가 추우니 어서 집에 가자며 발길을 서둘렀고, 나는 우릴 등지고 걸어가는 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흘끔흘끔 뒤돌아보며 여자의 작은 생명에 대한 비뚤어진 사랑이 끝끝내 더 큰 비극으로 끝나지만은 않길 애처롭게 바랐다. 그게 내가 인어공주 강아지에게 해줄 수 있는 아주, 아주 작고 유일한 한 가지였기에.


세상 모든 사랑스러운 생명들이 걱정 없이 향기로운 꽃밭에서 즐겁게 뛰어놀 수 있길  ©푸들 with 스튜디오 크로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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