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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Nov 28. 2022

새벽 찬 공기

오롯이 나

김연수 작가의  「시절 일기」에는 작가가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낯선 도시에서의 느낌을 쓴 부분이 있다. 

대우빌딩의 불빛도, 신문과 잡지를 사라는 외침도, 어묵 국물에서 피어나는 김도, 공회전하는 택시가 뿜어내는 매캐한 매연도, 서울에서 나는 영원히 여행자로 지내고 싶었다.

김연수, 「시절 일기」, 레제, 2019, p.124


이 대목을 읽는데 대학을 가기 위해 홀로 낯선 도시로 갔던 새벽이 떠올랐다. 내가 살던 곳에서 버스로 3~4시간을 가야 하는 곳으로 대학 면접을 보러 갔다. 가는 시간을 계산하고 첫 차를 탔다. 느지막이 해가 떠오르는 겨울이라 터미널까지 가는 길은 한밤중처럼 깜깜했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나처럼 이른 시간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터미널 한편에 잡지와 신문을 파는 매점 불빛만 환했다. 버스를 타고 얼마쯤 지나자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떠올랐다. 낯선 도시, 처음 가보는 캠퍼스 안에서 막막하고 조금은 슬펐다. 면접을 봐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어딘가에 숨어 있는 씩씩함과 발랄함을 간신히 끄집어냈다. 그래도 여전한 막막함이 하얀 입김처럼 뿜어 나왔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대학교 건물의 서늘함과, 그와 반대인 밝은 대학생들의 모습이다. 면접 순서를 대기할 때 내 눈에 신기하기만 한 대학생이 다가와 어디서 왔는지 묻고, 멀리서 왔다며 기특해했다. 후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응원에 긴장이 풀렸다. 면접장의 분위기는 부드러웠고, 교수님들의 질문에 신중하게 답했다. 면접은 순조로웠고, 교수님들은 미소를 지었다. 후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대학생의 응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학교를 다녔더라면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날이 어둑어둑한 추운 새벽이면 그날이 떠오르곤 한다. 새벽, 버스, 낯선 도시, 낯선 대학교, 낯선 이들. 곧 대학생이 될 거라는 희망에 부푼 나. 모든 게 낯설고 막막했던 그 시절의 새벽. 밤과 아침의 경계에서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 있는 나. 그 후로도 여러 번 새벽 공기를 마셔보았지만 그날처럼 차고 막막하지 않았다. 불안했던 청춘의 시간이 흘러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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