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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Dec 20. 2022

급식실에서 밥 먹다 왜 울어?

Ennio Morricone의 'Gabriel's Oboe'-넬라판타지아

첫 학교 어리바리한 신규 시절 내가 맡은 업무는 '음악교육'. 교육대학에서 음악과를 나왔다는 이유 하나였다. 이 업무로 말할 것 같으면 음악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모두 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같은 행사에서 애국가 지휘, 음악실 정돈, 악기 구입, 합창부 지도 등등.


그때 한창 유행하였던 것이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급식실에 음악을 틀어주는 것이었다.(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화장실에 들어가면 센서가 작동해서 신나는 동요가 나온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급식실에서 조용하고 우아하게 급식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한 것일 게다.


음악이 흐르는 급식실을 위해 고성능 엠프와 스피커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할 일은...... 음악을 틀 CD를 구입하는 일이다. 클래식, 동요, 국악, 영화 ost, 뉴에이지까지 다양한 장르로 몇십 개의 CD를 구입해서 비치했다. 다음은 선곡. 장르가 겹치지 않게 날마다 다른 음악을 틀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급식실에 전광판이 설치되었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용도는 곡의 제목과 작곡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전광판을 도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막막했는데 알고 보니 리모컨에 있는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눌러 문자를 쓰듯 글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글자를 왼쪽부터 나오게 할 건지, 반짝이게 할 건지, 점점 커지게 할 건지 등과 같은 다양한 옵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날마다 급식실에 음악을 틀고, 전광판을 입력하며 음악이 흐르는 급식실을 만들었다.


급식실에 음악이 흐르려면 당연히 아이들이 조용히 해야 한다. 그러나 한 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초등학생이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식사 일리 만무했다. 음악과 스테인리스 식판이 부딪치는 소리가 겹쳐지며 더욱 소란스러워지곤 했다.



급식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몇 되지 않았고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햇살이 길게 비춰 들어오던 날이었다. 오늘따라 조용하다고 생각하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때 흐르던 곡이 'Gabriel's Oboe'였다. Gabriel's Oboe에 가사를 붙인 '넬라판타지아'로 유명세를 탄 곡이기도 하다. 목관악기 특유의 깊은 울림과 깨끗한 소리의 오보에로 연주된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순간 먹던 밥이 목에 콱 얹히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맑은 날 소나기를 만난 것마냥  당황스러웠다. 사연 많은 여자가  청승맞게 급식실에서 울었다고 소문 날까 싶어 얼른 눈물을 수습했다. 알 수 없는 뭉클거림이 계속되었고 한 번 뛰기 시작한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빈 공간에 음악이 꽉 채워졌다.


그 이후로 이 곡을 들을 때면 급식실에서 곡을 듣다 갑자기 눈물이 나왔던 20대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봐도 뚜렷한 이유는 모르겠다.


예상치 못한 장소와 만난 뜻밖의 아름다움이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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