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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Nov 26. 2022

식탁 위 달력

오롯이 나

시간이 화살같이 날아간다는 말이 점점 실감 난다. 우리 집 식탁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놓인 탁상달력이 이제 12월 한 장만 남았다. 남편이 작년 12월에 어느 보험 회사에서 받아온 것이다. 그 달력은 숫자가 크고 진하게 쓰여 있고, 날짜별로 적당한 크기의 칸이 잘 나뉘어 있어 마음에 든다.


빠르면 11월 말, 12월 초가 되면 내년도 달력을 미리 정리한다. 으레 새 달력은 올해 12월과 그다음 해 1월이 함께 들어있으므로 12월부터 내년도 달력이 식탁에 놓인다. 가족들 생일, 아버님 제사, 결혼기념일 등 가족 행사일을 빨간 볼펜으로 표시해 둔다. 부모님과 시어머니, 아버님 제사는 음력이므로 작은 음력 날짜를 손으로 세어가며 틀리지 않게 쓴다.


날짜와 요일, 기념일만 단정하게 쓰여 있는 시간은 딱 여기까지다. 매일 생기는 새로운 약속과 일정들로 달력은 금세 검은 글씨가 넘쳐난다. 피아노 학원 결재, 도서관 강좌 시간과 장소, 아이 체험학습, 수영복 준비하기, 옷 교환하기, 책 반납하기, 방학일, 개학일, 방학식, 개학식 같은 소소한 일들을 모두 달력에 적힌다. 이제 남편도 익숙해져서 자신의 휴가일, 출장 같은 일정들을 표시한다. 아이들도 책 사주기, 체험학습과 같이 자신들에게 기분 좋은 일정을 연필로 또박또박 쓴다. 


그렇게 네 가족의 일상과 꼭 해야 하는 일들로 숫자만 있었던 달력에 네 개의 글씨체로 적힌 글자들로 달력이 빼곡해진다. 식탁에 앉을 때마다 달력을 보며 일정을 확인하다 보니 깜박하는 일이 줄었다. 


단점이라면 아이들이 달력을 보고 자꾸만 일정을 보고 폭풍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00 여행 이렇게 적어두면 거기 가서 뭐 할 건지, 숙소는 어떤지, 뭘 먹을 건지 몇 달 후의 일정까지 묻는다. 간혹 달력에 쓰인 일정이 미뤄지거나 지켜지지 않으면 잔소리를 쏟아낸다.


올해의 달력이 할 일을 다하면 아쉬운 듯 첫 장부터 천천히 넘겨보며 올해를 되새겨본다. 올해도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바쁜 일들이 있었구나, 어디로 여행을 다녀왔구나. 정든 친구와 헤어지듯 쓰던 달력을 버리는 일은 아쉽다. 그래도 새 달력으로 새로운 해를 열어야 하므로 달력 종이를 하나하나 잘 뜯은 뒤 잘게 찢어 버린다.


벌써 12월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곧 또 새로운 해의 달력으로 바뀔 테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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