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할래"
그림에 빠졌다. 우리 집의 액자가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내 그림으로 시작해서 아이 그림까지, 크고 작은 액자들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무엇을 그릴까, 어떤 색을 쓸까 생각하면 히쭉히쭉 웃음이 나온다. 스케치북을 꺼내서 과감하게 선을 그었다. 망설임 없이 색을 고르고 마음 가는 대로 종이를 가득 채웠다. 뭉쳐 있던 마음을 다 풀어놓은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즐겁게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다. 몇 달 전, 식물을 잘 그리고 싶어 세밀화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은 소위 ‘단호박’ 스타일로, 짧고 단호하게 그림을 알려 주었다.
“그거 아니시죠.” 등 뒤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4B 연필로 명암을 표현하다가 멈추었다. 꽃잎을 그리던 중이었다.
"여기가 밝아야 할까요, 어두워야 할까요?” 그녀의 질문이 시작되면 아는 것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밝기에 맞추어 연필을 바꾸고, 선 하나를 그려도 천천히 세심하고 곱게 그려야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그려야 할 것을, 나는 거칠고 빠르게 채워버린 거다. 선생님은 내 스케치북을 보며, 거친 선들이 모여 터실터실한 털 같다 했다.
아무래도 세밀화는 나와 맞지 않은 그림인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자유롭게, 즐겁게 그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조금 사그라들었을 때,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듣게 되었다.
“막 그리세요.” 강사님의 말에 난감해서,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내 안의 ‘피카소’를 발견하고 말았다. 크레파스, 물감, 사인펜 여러 도구가 보였다. 마음이 가는 색깔을 하나 골라, 동그라미를 그렸다. 보라색 동그라미 옆, 파란색 동그라미, 그 옆에 작은 빨간색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것을 큰 네모로 감쌌다. 마치 울타리처럼 말이다. 붓을 들어 물감으로 도화지를 채웠다. 서로 색이 섞이고, 얼룩덜룩해졌다.
아무 생각 없이 막 그린 그림이 그럴듯한 작품 같았다. 물감의 번짐도 실수가 아닌 멋있는 자국이 되었다.
굵고 거친 선과 부드럽고 말랑한 퍼짐이 어우러지는 동안, 어느새 머릿속은 고요하고 깨끗하게 비워졌다. 마음대로 그리기란, 오랜만에 느껴보는 산뜻한 힐링이었다.
낙서 같은 그림을 액자에 끼웠다. 그림 아래에 수줍게 적은 내 이름이 보였다. 뿌듯한 마음에 거실 식탁 위에 세워 놓았다.
내가 그림을 그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이도 덩달아 그리기 시작한 거다.
빨간색으로 선만 긋던 아이가, 여러 색을 쓰며 생각을 표현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바닷가의 조개들’, ‘우주’, ‘우리 집’ 작품이 탄생했다. ‘보물 상자’와 ‘고양이 가족’도 그렸다.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 마음속에 저렇게나 다양한 그림들이 잠자고 있었다니!
아이는 엄마 액자처럼 자기 그림도 끼워 달라 했다. 액자에 신나게 넣어 여기저기에 전시하듯 세워 놓았다. 순식간에 우리 집은 작은 미술관이 되었다. 내 그림과 아이 그림이 어우러져 집안 공기마저 경쾌해진 느낌이었다.
요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우리의 그림으로 아이가 주인공인 동화책을 만드는 것. 에코백에 멋있는 그림을 그려, 아끼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
매번 다른 그림 작품이 탄생했고, 액자도 꾸준히 늘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남편은 “예술만 할래?”라며 쓸쓸하고 허하게 웃었다. 그 표정을 기억했다가, 가방에 그려 제일 먼저 선물해주고 싶어졌다. (벌칙 가방인가요)
내 안의 잠자고 있던 ‘예술 세포’가 꿈틀거린다. 좀 늦게 깨어난 감이 있지만 뻔뻔하게 펼쳐 보려 한다. “예술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