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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Aug 23. 2019

댄싱 'Queen'

움츠러들어 있던 나를 깨우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숨이 헉헉 차오른다. 얼굴은 빨개지고 팔과 다리는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어라? 너무 즐겁잖아!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아"

말이 절로 나오는 강렬한 운동. 몸에서 땀이 나올 수 있음을 알게 해준, 기특한 그 이름은 바로 '줌바댄스' 다.



이때까지 나의 인생은 운동과 인연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땀 흘리며 움직이기보다 독하게 굶는 방법을 택했다. 학창 시절, 체육 실기 점수가 내신을 망칠 정도랄까. 한마디로 운동을 싫어하고도 못하는 사람이다.

한번은 요가에 도전했다가 포기한 적이 있었다. TV에 나온 여자 연예인이 말하기를, 요가를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다스렸단다.  '바로 저거야' 싶어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물론 호흡법과 관절 스트레칭으로, 눈곱만큼 더 유연해졌을지도 모른다.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었다는 것. 마음의 평화, 천천히 나의 기운을 느끼기란 자꾸 시계를 힐끔거리며 끝나는 시간을 확인하게 되었다.

'좋다는 운동이 나에게는 더 없이 지루하고 적막한상대라니!' 모두다 잘 따라하는 동작을, 혼자 낑낑거리며 헤맨 것도  포기 이유에 한몫했을 거다. 그런 내가 답답하고 소심해 보일 때, 갑자기 훅 가슴을 강타한 운동이 줌바댄스였다.



나에게는 타고난 몸치에 박치라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수강 등록을 하기까지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빠른 리듬의 음악을 사랑하지만, 흐느적거리는 대형 풍선처럼 몸이 따로 노는 상상을 하니 끔찍했다.  오죽하면 이런 날 아는 친구들은  "네가 키가 커서 어설퍼 보이는 거야." 라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친구들아, 키 때문이 아니라 햇빛에 바짝 말린 수건 마냥 뻣뻣한 몸이 문제야.



등록 마지막 날, 비장한 각오로 접수를 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오래 뜸을 들였을까. 대단한 용기를 냈다는 생각에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퇴근하는 남편을 붙잡고 드디어 줌바댄스에 등록했다고 하니 "뭐? 아줌마댄스?" 라며 되묻는다.

줌. 바. 댄. 스 라고 분명하게 다시 한번 말했다. 그는 깔깔거리며 웃는 얼굴로, 빨리 재미있는 굴욕 에피소드를 듣고 싶다 했다. 첫 수업. 정말 굴욕이었다.




교실은 3층,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는 것조차도 숨이 헉헉 차오른다.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적막한 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이다가 굳게 닫힌 문을 힘껏 열었다.  '끼익' 소리와 함께 모여있는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한꺼번에 확 터졌다.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딘 느낌이었다. 운동화를 쭈뼛쭈뼛 갈아 신고, 멀쩡한 끈을 괜히 풀어서 단단하게 고쳐 묶고 있었다.

나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온 분이시죠? 이름이?"

'반장' 이라는 그녀의 출석체크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질문 세례에 답하며 신입신고를 하던 중, 문이 불쑥 열렸다. 뭉쳐있던 그들은 자기만의 자리를 찾아 뿔뿔히 흩어지고 있었다.



줌바 선생님의 등장만으로, 왁자지껄한 시장통 교실은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그녀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강렬한 오렌지 색의 반삭 머리, 배가 드러나는 짧은 탑 아래로 탄탄한 근육이 돋보였다. 레깅스의 라인을 따라 말갈기를 연상하는 작은 술들이, 몸이 흔들릴 때마다 사정없이 흔들려 동작을 화려하게 만들어 주었다. 몇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범상치 않은 아우라였다.

"오늘 열심히 안 하면 모두 집에 못 갑니다."

낮고 굵은 목소리가 교실 바닥에 천천히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당장 집에 가고 싶어졌다. 이때 쾅쾅 울리는 경쾌한 음악이 흘렀고, 내 발 어색하게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처음 오신 분은 앞줄로 가세요."

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못 들은 척 슬금슬금 뒷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 등을 떠밀었고 첫날부터 선생님과의 거리 10cm로 출발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가관이었다. 허옇고 긴 오징어가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꼴이란, 웃겨서 실실 웃다가 묵직한 시선을 뒤늦게 알아챘다. 선생님이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걸.

힘이 넘치는 손짓으로 허리와 허벅지를 가리키며

"더더!" 외치는 모습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음악 장르가 라틴, 힙합, 가요 등으로 바뀌면서 흥이 올랐다. 진지한 눈빛으로 버벅거리며 동작을 따라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달아오른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졌다. 맨 앞줄에서 선생님과 밀착하여, 열정적인 몸부림을 했던 모습이 떠올라서 말이다. 재빠르게 겉옷과 가방을 챙겨서 나오는데, "엄청 열심히 하시네요" "재미있으신가 봐요" 란 말들이 들리더라. 다 봤네. 봤어! 란 생각에 후들거리는 다리로 단숨에 계단을 내려왔다.




화요일, 목요일 빼먹지 않고 줌바댄스를 가다 보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수업 전날부터 설레서 몸이 간질간질 기다려졌다. 누군가가 나의 몸개그를 볼까 걱정했다면, 수업 시간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빠져들어 두려움이 사그라들었다.

나를 위해 선물한 하늘색 운동화를 신고, 한 시간동안 오로지 리듬에 몸을 맡겨 온몸을 흔들고 비틀고 돌린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잘 하나 못 하나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머릿속의 잡생각은 잠시 날려 버리고, 나에게 집중하는 법.

서른여섯 살, 이제야 그 방법을 배워나간다.

이 시간만큼은 흥을 올리기 위해 넣은 기합이 '악악' 까마귀 소리더라도, 웨이브가 아닌 그냥 몸짓이라도 다 괜찮아. 흘린 땀에 뿌듯해하고, 몸이 터질 듯한 열기를 그대로 느끼며 움츠러들어 있던 나를 깨운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쿵쿵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음악소리가 내 귀를 자극한다. 현란한 색의 운동복을 입고, 온몸을 흔들며 '살아있음' 을 느끼고픈 동지들이 보인다.

오늘도 땀과 희열이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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