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아침은 좀 어지러운가

- 유계영,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를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월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부은 얼굴로 "엄마, 학교 가기 싫어"하고 안기는 첫째와, 종종 거리며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둘째를 챙기면서 서둘러 아침을 준비했다. 화장실 안에서 들리는 신랑 씻는 소리, 둘째가 이것저것 건드리며 떨어트리는 소리, 첫째가 징징거리는 소리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아침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하, 지쳐'하고 내뱉고 있었다.


둘째 아이를 식탁의자에 앉히고, 식탁을 차리고 신랑과 첫째까지 식탁 앞에 앉고 나서야 미뤄둔 내 출근 준비를 했다. 갑작스러운 대전 출장이 잡혀 있는 날이었다. 출근해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바로 출발해야 하는 일정에 조금 예민해져 있었다. 평소와 같은 상황에서도 내 말투는 조금 삐딱하게 튀어나왔다.

어제 들었던 가방을 정리도 못한 채 다시 챙겨 들면서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던 책 더미 속에서 한 권을 골라 가방에 넣었다. 설거지도 하지 못한 채 종종거리며 두 아이를 데리고 나와 둘째는 어린이집에 첫째는 학교 앞에 내려주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속도를 내 출근을 했다.


꼭 출장을 가는 날이 아니더라도 워킹맘인 나의 아침은 대부분 평온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일찍 등교해야 하는 아이의 표정을 살피지도, 둘째 아이 등원 시 따뜻한 포옹도 우리의 아침에선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가족사진 속의 인물들이 앉거나 서 있다
매 순간 떠날 것을 다짐하는 앉은뱅이도 있다

나는 불행이 방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본다

한 사람이 아프면 너도나도 약을 먹었다
우리 모두의 것이 틀림없다

- <가족사진> 전문



'우리 모두의 것이 틀림없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차 안에서 여러 번 이 시를, 이 문장을 곱씹어 읽었다.

언제나 내게 시란, 쓴 사람의 의도보다 읽는 '나'의 해석이 앞선다.

아니, '해석'도 아닌 그냥 느낌.


우리의 아침 풍경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찡그린 나와, 당황한 듯 그런 나를 쳐다보는 세 사람의 표정이 담기지 않을까.

그럼에도 그 모든 게 '우리 모두의 것이 틀림없다'라고 단정한다. 역시 내 마음대로.



고백하자면,

시의 언어들을 해석하는 게(애써 해석해보자면) 쉽지 않았다.

지금의 '나'를 이야기하는 것도 같고 과거의 '나'를 이야기하는 것도 같고, 아니 과거도 지금도 건너뛴 아직 없는 미래의 '나'를 이야기하는 것도 같다.

그런데 그 미래의 '나'는 살아 있는 건가. 어쩌면 이미 과거에 사라져 버린 건 아닌가.

이미 사라져 버린 '나'가 미래에 다시 존재한다는 건, 나는 결국 아침을, 점심을, 늦은 밤의 연속되는 날들을 그냥 일상처럼 살아내고 있다는 건 아닐까.


나는 오늘 스푼 위의 흰죽을 조금만 핥았다
유리병에 갇힌 새들이 무당방울처럼 지저귀었다

나는 오늘 빈곤할수록 불룩해지는 주머니의 내부다
희박한 공기를 나눠 마시자
오늘의 사람들과 함께였다

꿈속에서도 숨이 차서 걷기만 했다
어젯밤 누가 흘린 장갑들은
바늘이 지나간 자리와 왼쪽과 오른쪽
교회의 첨탑에 무관심해지기로 했다

엉성한 솜씨의 어린이가 채색한 밤하늘처럼
언뜻 종말의 흰자위가 힐끗거렸다
나는 오늘 그것을 마주보았다

오늘의 나를 목격했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이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베개 위로 늘어뜨린 신발의 머리카락
내일 아침이면 지붕 끝에 묶여 있다

- <미래일기> 전문



어제의 하루가, 오늘의 하루가 내일 아침이면 사라져 버리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버틴다는 것도 희망한다는 것도 결국 지나가버리는 시간.


스탠드 불빛 아래서 아이들이 깨지 않기를 바라며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살금살금 책장을 넘기며 생각한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찾아올 평온하지 않을 오늘의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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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 저자 유계영 /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19.04.22.



덧붙임


실은, 시집 속에 실린 시들 중 좋았던 시는 따로 있었다.


<미래는 공처럼>


경쾌하고 즐거운 자, 그가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

울고 있는 사람의 어깨를 두세 번 치고

황급히 떠나는 자다

벗어둔 재킷도 깜빡하고 간 그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진지하게 가라앉고 있다

침대 아래 잠들어 있는 과거의 편선지들처럼


그림자놀이에는 그림자 빼고 다 있지

겨울의 풍경 속에서

겨울이 아닌 것만 그리워하는 사람들처럼

오늘의 그림자는 내일의 벽장 속에 잘 개어져 있으므로


손목이라는 벼랑에 앉아 젖은 날개를 말리는

캄캄한 메추라기


미래를 쥐어주면 반드시 미래로 던져버리는

오늘을 쪼고 있다


울고 있는 눈사람에게 옥수수수프를 내어주는 여름의 진심

죽음의 무더움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겠지

얼음에서 태어나 불구덩이 속으로

주룩주룩 걸어가는


경쾌하고 즐거운 자, 그는 미래를 공처럼 굴린다

침대 밑에 처박혀 잊혀질 때까지


미래는 잘 마른 날개를 펼치고 날아간다

한때 코의 목적을 꿈꾸었던

당근 꽁지만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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