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삶은 무난

- 문보영,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을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오늘은 어때?"
누군가 묻고
"오늘은 무난해."라고 대답하는 삶.
그런 삶에 감사하는 삶.
- <별똥별들> 중에서


하루를 기록하고, 한 주간의 가계부를 정리하고, 책을 읽고, 읽은 책의 리뷰를 쓰고, 무탈하게 오늘 하루도 잘 지내 준 두 아이에게 감사하고, 상사가 오래간만에 찡그린 얼굴을 하지 않고, 급하게 차려낸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깔깔거리며 밥을 먹는 그런 일상.

딱 그런 날들이면 가끔 슬프지만 자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욕심이 많았던 이십 대를 지나고, 욕망이 지나쳤던 삼십 대를 살아내고 나니

갑자기 툭, 어른이라도 된 것 같은 사십 대에 들어섰다.

욕심도 욕망도 아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서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은

마음이 풍족해진 듯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그럼에도 자주 원하는 건,

자주 필요한 건,

마음껏 상상하고 마음껏 망상하고 마음껏 널브러지고

마음껏 게을러질 수 있는 어떤 시간들.

당분간은 내게 허락될 것 같지 않은 어떤 시간들이다.


아주 잠깐 허락되는 찰나의 시간에 나는 대부분 읽거나 쓴다.

일기이거나 넋두리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글을 쓴다.

그제서야 온전히 무언가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그때 읽는 어떤 글도 소중하지 않은 글이 없다.

부럽지 않은 글이 없다.


시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대답을 구하다가, 시는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꼭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는 거냐고 다시 묻기에 지나치게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었다고 풀어서 설명하고 좀 후회했다.
- <애인은 있어도 없고, 없어도 없으므로> 중에서



고백하자.

아직 시인의 시집을 읽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나는 아직 시인의 시를 읽은 독자가 아니다.

문학상을 받은 시간의 수상소감에 반한 그래서 그 수상소감만 몇 번을 읽었으니 어쩌면 독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문보영 시인이 시보다 수상소감을, 일기를, 에세이를 좋아하는 그냥 독자.


시인의 글을 읽고 있으면서 어쩐지 시인의 시를 다 읽은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 시라고 말하는 시인의 글을 읽는다.


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우울증에 걸린 시인을 상상하며 읽고, 고시원 방에 몰래 숨어든 애인과 피자를 먹는 상상을 하며 읽고, 제주도를 여행하는 저자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읽는다.


나는 도망가고 싶었나 보다. 아픈 애인에게서. 누가 나를 이 시궁창에서 꺼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나에게서도 달아났다. 상습적으로.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나도 애인도 해변에 쓸려온 미역 줄기처럼 쓰리는 대로 살았다.

당시 일기에는 "뜨거운 물에 넣은 각얼음처럼, 어떤 사랑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는 거야."라고 적혀 있다. 무슨 맥락에서 쓴 문장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애인을 떠났고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층계참에 신발장이 있었다. 운동화에 누가 자꾸 과자나 사탕을 두고 도망가곤 했다. 사탕에서 발 냄새가 났다. 아니, 로맨틱하게 다시 말해보자. 발에서 사탕 냄새가 났다. '신발은 사탕을 담는 사탕 상자구나. 신발은 사랑이야.' 나는 생각 했다.

고시원에서 지내는 동안 많이 아팠다. 그래도 슬픔은 슬픔으로 대우받길 바랐다. 고통의 무가치를 견디는 쪽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강하고 정직한 길이라고 믿었다.
- <애인을 부잣집에 입양 보내고 싶을 때> 중에서



이십 대의 나는 끊임없이 연애를 했다.

헤어지지 않는 연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연애. 헤어진 채로 하는 연애,

술도 못 마시면서 술에 취한 척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에서 울먹이는 연애.

도도한 척 '너랑 헤어지면 그만이야'라고 내뱉고 전화기를 꺼버리는 나를 대견해 하던 연애.


나의 애인(들)은 늘 나보다 더 도도했다.

그래서 나는 늘 먼저 슬펐다.


작가의 글은 그때의 나를 자꾸 불러들였다. 이제 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나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이십 대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글들이었다. 슬프지 않으면서 슬퍼지는 글. 평범한 것 같으면서 자꾸 정곡을 찌르는 글.


내가 읽은 시인의 글들이 아직 읽지 않은 시인의 시들이 그냥 좋다고 말하면 안 될 것 없으니까 그냥 그렇다고 말한다(적는다).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은 반만 참이다. 시간은 독이고 시간은 약이기 때문에. 시간은 양날의 칼같이 무서운 놈이다. 뱀에 물렸을 때는 시간이 약이 아니다. 방치는 독이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다.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방치하면 시간이 상처를 곪게 한다. 병원을 가고 약을 처방받아야 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운동해라, 샤워해라, 라는 말은 방금 뱀에게 물린 사람에게 운동하면 나을 거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중략)

돌이켜보면 우울증은 3년 전에도 찾아왔었다. 지금의 나라면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그게 우울증인지도 몰랐으므로 극복일기만 1년간 스물 다섯 권을 썼다. 치료를 못 받은 덕에 필력만 늘었다. 열다섯 권쯤 썼을 때부터 나는 다음 문장을 중얼거리게 된다.

오늘의 슬픔은 무난. 오늘의 슬픔은 무난. 다행인 편.
- <오늘의 슬픔은 무난> 중에서


때론 시인의 글이 그냥 시로 읽힌다.

의미를 감춘 듯한 문장, 날 것 그대로 드러낸 듯한 문장,

시집 속에 한 편의 시로 들어 있어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글들. 어쩌면 그래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게 사는 거 같아서, 우울증에 걸려 약을 처방받는다고 말하고, 애인과 헤어져 슬프다고 고백하고, 가끔은 외울 것도 같은 그 세계가(시인이 살아가는 세계가) 궁금해졌다.

(이건 뭐,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사람 같잖아).


물메기(시인의 친구다)는 근처에 가보고 싶은 베이커리가 있다고 했다. 골목을 두 번 꺾으면 나온다고 했다.
"확실해?"
"응, 확실해."
물메기가 답했다.

확실하다니. 확실 때문에 확신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확신, 하니 믿음이 떠오르고 믿음, 하니 믿음 저글링이 떠오른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다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겠지. 사랑은 확실할 수가 없으니까 사실의 영역이 될 수 없고, 그래서 계속해서 믿어줘야 하고 믿음 당해야 하고, 믿음을 던지고 믿음에 맞고 믿음으로 저글링하고 믿음과 뒹굴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믿음은 노동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체력이 안 되는걸?

물메기와 나는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얼그레이 잼이 있었다. 언제 한번 맛보고는 베이커리에 갈 때마다 찾았는데 번번이 찾지 못한 것이다. 얼그레이 잼 덕분에 문득 행복했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오셔서 행복인지 못 알아뵀다. 그래서 악수를 하려고 했는데 웬일인지 내 악수를 받아주셨다. 그래서 악수를 한 김에 내 오른손과 행복의 왼손을 수갑으로 채웠다. 같이 걸었다. 그런데 어느덧 혼자 걷고 있었다. 행복은 손목이 너무 가늘어 수갑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 <행복은 손목이 너무 가늘어 수갑이 빠져버렸다> 중에서



오늘의 슬픔은 무난.

오늘의 절망은 무난.

오늘의 희망은 무난.

그러니 그냥 오늘 하루는 무난.

그런데 문득 나는 지금,

괜찮지 않은 것 같다. 무난한 삶을 살 때는 그게 감사한 줄 모르고 염치도 없이 자꾸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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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 저자 문보영 / 출판 쌤앤파커스 / 발매2019.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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